‘시민자산화 시범사업 1호’ 소셜벤처 빌드 우영승 대표
경기 시흥시의 월곶지구. 한때는 다리 건너 인천 소래포구에 대항할 관광지로 개발되며 기대를 모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포구의 기능도, 관광지의 활기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어판장과 조개구이집 등이 빠져나가고 놀이공원 부지가 방치되면서 1만6000명 인구는 섬처럼 고립됐다. 모텔촌과 횟집 상권, 아파트가 모두 섞인 동네. 이곳에서 지역에 숨은 ‘기회’를 길어 올리는 청년들이 있다. 주민에게 필요한 공간을 주민의 자산으로 만드는 ‘시민자산화’를 전국 최초 지자체 시범사업으로 추진 중인 예비사회적기업 ‘빌드(BUILD)’ 이야기다.
우영승(26) 빌드 대표는 지난 2016년 9월 주식회사를 설립, 월곶에 양식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1호점)와 북플라워카페 ‘월곶동꽃한송이'(2호점)를 열었다. 지난 8월엔 키즈카페 ‘바이아이’ (3호점)를 오픈했다. 우 대표는 “대학생 연합 사회적기업 동아리 ‘SEN’의 대표 시절 우연히 만난 시흥시 주무관이 시의 청년정책 자문위원을 제안하면서 시흥시와 인연을 맺게 됐다”면서 “시흥에 대해 분석을 하면서 이 도시가 가진 잠재력(potential)에 반하게 됐다”며 웃었다. “타 도시보다 개발이 덜된 대신, 생활권별로 고유한 매력과 특성이 잘 남아 있는 편입니다. 그중에서도 바다가 보이는 월곶지구의 멋진 조망이나 48%에 달하는 육아 인구, 발달한 지역 커뮤니티 등을 기회로 봤어요.”
우 대표는 “서울에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커피 맛이 좋은 곳’ ‘수다 떨기 좋은 곳’ 등 선택의 폭이 넓은데 월곶 안에는 꽃집과 서점, 양식 레스토랑 등이 하나도 없었다”며 “공실률만 30%에 달하는 지역의 빈 공간들을 변화시켜 아이와 엄마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월곶맘을 초대합니다’와 같은 행사를 열어 지역 엄마들을 초청해 유대관계를 쌓았고, 지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했다. 덕분에 2016년 말 1호점이 오픈할 때엔 이미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나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부동산 전문가, 요리사 등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 7명이 십시일반 자금을 마련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공사 비용이 부족해 건물 철거를 직접 하고, 구성원들이 직접 꽃집과 카페를 운영하고 요리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우영승 대표를 비롯해 부대표와 팀장 등이 시흥으로 아예 이사를 왔다. 현재 1호점의 월평균 매출은 3000만원. 지역에 있는 다른 음식점의 2배 수준이다. 꽃집과 서점, 카페를 합쳐놓은 2호점도 주말엔 하루 방문자가 200명을 넘을 만큼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다.
빌드의 성장 뒤에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다. 2호점과 3호점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각각 5000만원, 700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빌드는 매장 오픈 전부터 시작했던 커뮤니티 사업과 창업교육 등 지역 인적자원 투자도 지속하고 있다. 여기서 탄생한 엄마들의 정기 모임 ‘월화수(월곶맘들의 화려한 수요일)’는 빌드의 공간에서 플리마켓을 주최해 미혼모 가정에 수익금을 기부하고, ‘월곶 지도’를 만드는 등 자발적으로 크고 작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시민자산화 1호’ 모델인 ‘바이아이’의 오픈은 시흥시도 힘을 보탰다. 시가 1층 50여 평의 공간을 매입해 시세 절반 수준(월 100만원)으로 임대해준 것. 빌드와 시흥시는 지난해 12월 시민자산화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시흥시 내의 낙후된 지역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자산을 주민의 품에 돌려주자는 것. 우영승 대표는 “임대 기간이 끝나고 시가 건물을 지역에 판매할 근거 조례가 생기면, 각 매장을 별도 법인화해 주민들이 이를 공동 소유하며 수익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빌드의 사업계획서엔 ‘도시재생’이란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요. 도시재생은 결과일 뿐, 사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빌드는 지역 내 벤처기업을 만들어내고, 부동산, 시민자산화, 커뮤니티, 교육, 물류 등을 통해 ‘판’을 만들어가는 ‘로컬 에이전시(Local agency)’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공간 세 개로 지역 전체가 바뀐 것은 아니니, 앞으로 10년은 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판을 깔면, 누군가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보다 적은 리스크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빌드는 또다시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현재 직영 중인 세 매장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고, 시흥에서 재배된 농산품을 각 가정에 배송하는 유통 서비스(가제 ‘팜닷’)를 론칭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유통서비스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소셜벤처 성장지원사업인 ‘Scale up’에 선정돼 추진되고 있다. 통상 5단계에 달하는 유통 과정을 대폭 줄여 소비자가를 낮추고, 질 좋은 제품 유통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우영승 대표는 “시흥의 ‘호조벌’이 유명한 쌀 생산지이고, 겨울 딸기나 양봉협동조합의 꿀도 재배된다”며 “특품 위주의 계약 재배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질 좋은 시흥시의 농산품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흥=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hon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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