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Mentory)’
“교육 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면서 농어촌 아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스무살 넘으면 도시로 떠나겠다’고 했어요. 고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였죠.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독립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두렵고 막막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
권기효(33) 멘토리 대표는 소외된 농어촌 아이들에 주목했다. 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엄마 집밥 먹으며” 살아갈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싶었다. 2016년 그는 대학생 멘토들과 함께 농어촌 청소년들에게 멘토링을 제공하는 ‘멘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NGO 출신, 카이스트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 네 명이 모여 팀을 꾸렸고, 올해는 교육부 산하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등록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권기효 대표와 대학생 멘토들은 지난 7월 충남 보령을 첫 시작으로, 인천 강화, 강원 영월 등 7개 지역 22개교 청소년들을 만났다. 멘토는 농어촌 출신이 30%, 나머지는 수도권 및 기타 지역 출신으로 모집한다. 농어촌과 수도권 출신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아이들이 직접 보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멘토링을 통해 아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도 목표다. 멘토링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은 멘토와 함께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해 성과를 내보는 경험을 한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리(理)모델링’ 프로젝트는 지역에 숨은 이야기나 특산품 등 상품화할 아이템을 발굴하고, 멘토 및 지역기업 등과 연계해 실제 생산해보는 프로젝트다.
“강원도 영월군에 ‘효자열녀마을’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한 집 건너 효자비, 열녀비를 받아 자부심이 강한 마을인데, 임진왜란도 겪지 않은 깊은 산 속 마을이라 조선시대부터 써온 장독이 아직 남아 있어요. 영월 아이들이 효자열녀마을의 이야기를 찾아냈고, 마을에서 생산하는 고추장과 된장에 이런 이야기를 담아 내년 5월 크라우드펀딩을 열 예정입니다.”
권기효 대표는 “지역에는 농산품뿐 아니라 숨어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포장’이 하나도 안돼 있다”며 “아이들이 대학생 멘토나 슬로워크(slowalk) 등 기업 멘토들과 함께 브랜딩과 패키징을 다시해 지역의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어내는 ‘스토리메이커’가 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프로그램은 일회성으로 그치기 쉽다”며 “아이들이 고안한 상품을 지역기업이 생산하고 학교협동조합이 운영권을 갖고 운영하는 식으로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마을 곳곳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보통이 아닌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교사용 화장실은 깨끗한데 학생용 화장실은 냄새가 난다’ ‘교실 문은 나무문에 문고리도 고장나 불편하다’ 등 생활 속 불편사항을 찾고, 학교에 이를 고쳐줄 것을 요구하는 식이다. 권 대표는 “체인지메이커 교육이라고 해서 ‘도농(都農) 간 격차’나 ‘사회문제’ 등을 아이들에게 들이대면 버거워 한다”며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하며 성취감을 얻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멘토링에 참여한 보령시 학생 50명 중 5명은 “우리끼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계속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권 대표는 “지금도 다섯 아이들이 지역에서 ‘문제찾기’를 계속 하고 있으며, 멘토리 멘토들은 2주에 한 번 보령으로 내려가 피드백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멘토리의 출발엔 ‘협동조합’이란 틀이 전략적 기반이 됐다. 권기효 대표는 “농어촌에서 ‘협동조합’이라고 우리를 소개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년들이 좋은 일 하려고 모였구나’하고 바로 아신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중에서도 비영리로 분류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라 지자체 사업 위탁이 가능한 것도 큰 힘이었다. 멘토리는 지자체 교육 사업을 위탁받는 형태로 학교들과 원활하게 연계돼 일하고 있다. 조합원은 현재 93명. 과거 멘토리를 다녀간 대학생 멘토들과 학교 선생님, 멘토리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권 대표는 “조합원들이 1인1표제로 의견을 내면서 실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뜻이 맞는 사람들을 늘려가기도 좋은 형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부에서도 멘토리를 주목하고 있다. 멘토리는 KT&G ‘상상 스타트업 캠프’ 1기, 강원랜드희망재단 공모사업, 아산나눔재단 ‘파트너십 온’ 등에 선발돼 크고 작은 지원을 받았다. 지난 5월엔 기획재정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하고 신협사회공헌재단이 후원하는 ‘청년협동조합 창업 지원사업’ 3기 지원팀에 뽑혀 1000만원의 후원금과 초기 사업화 지원 등을 받았다. 이후엔 서대문구 가좌동의 ‘금모래신협’ 지점과 매칭돼 ‘협동조합 선배’로부터 멘토링을 받기도 했다.
멘토리는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강화에선 지역재생의 일환으로, 청소년들이 지역 내 공간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농어촌과 도시 아이들은 자질 면에서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농어촌 아이들도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멘토리와 함께 한 청소년들이 색다른 경험을 하고, 또 이를 본 주위 아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hon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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