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Cover Story] [사회적 기업 2.0시대가 왔다] ① 세계 사회적 기업은 진화 중_일본의 사회적 기업 ‘고토랩’ 르포

빈방 개조해 여행객에게 내줬다… 버려진 마을, 활력이 찾아왔다
‘잠자는 쪽방’ 2000여개 호스텔로 만들어 제공
값싼 숙박비로 고객 유치 고령화로 물들었던 마을
어느새 여행객들로 북적
“사회적 기업 수익을 지역문제 해결에 재투자 지속가능 시스템 필요”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인증사회적 기업(644개)과 예비사회적기업(1324개)을 포함한 사회적 기업 수는 2000개에 달한다(2011년 기준). 고용인원도 3만4000명으로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적 기업이 취약계층 고용과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다 보니 질적인 성장은 미흡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사회문제를 비즈니스 방식으로 해결하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사회적 기업 2.0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편집자주

일본의 사회적 기업 ‘고토랩’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와 직원 6명이 운영한다. 이들은 ‘NPO 사나기타치 프로젝트’와 지역주민, 40여명의 자원봉사자 등과 힘을 합쳐 요코하마시의 슬럼화된 우범지대를 변화시키고 있다. /사진제공=고토랩
일본의 사회적 기업 ‘고토랩’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와 직원 6명이 운영한다. 이들은 ‘NPO 사나기타치 프로젝트’와 지역주민, 40여명의 자원봉사자 등과 힘을 합쳐 요코하마시의 슬럼화된 우범지대를 변화시키고 있다. /사진제공=고토랩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지하철로 1시간30분가량 걸리는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 고토부키 지역. 지난 17일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휠체어에 탄 노인 몇 명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쭉 들어선 5층 높이의 건물 사이로 편의점에서 산 먹거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걸어가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가 어디냐”는 질문에 한 할아버지가 자세히 길 안내를 해줬다.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라고 적힌 건물 1층의 안내데스크에 들어서자 30대 청년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건물 한쪽 벽면에는 이곳을 다녀간 수백명의 즉석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고토부키 지역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인 ‘고토랩(Koto lab)’ 오카베 도모히코(岡部友彦·35) 대표. 일본 최고 명문대인 도쿄대 건축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5년부터 7년째 이 지역을 바꾸는 데 올인한 청년 사회적 기업가다.

원래 이곳에서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려 했던 그는 NPO 활동을 하는 이들과 교류하면서 지역문제를 직접 들여다보게 됐다. 1950~60년대 요코하마 항만의 부두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쪽방촌으로 한때 인구가 6만명에 달할 정도로 활기 넘치던 고토부키 지역은 1980년 말부터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인구는 6500명까지 줄어들었고, 그나마 절반은 60세 이상의 노인이었고 80%는 생활보호 대상자였다.

“가장 무서운 건 고령화였어요.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게 급선무였죠. 수익을 내는 사업을 해야만 지속 가능하게 지역문제를 풀 수 있다고 고민하던 중 ‘빈방 개조’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한일 월드컵 당시 이 근처에 축구장이 있었는데 숙소가 없어 젊은이들이 고생했다는 걸 듣고 아이디어를 낸 거죠.”

당시 이곳엔 120개의 숙소 건물에 있는 8000여 쪽방 중 2000여개가 비어 있었다. 집주인을 설득, 오랫동안 방치된 빈방을 개조해 젊은 여행객들이 머물 수 있는 호스텔로 쓰도록 했다. 건물 수리비용은 집주인이 내고, 오카베씨는 청소와 홍보·고객 관리 등 운영을 맡았다. 수익은 주인과 절반씩 나눠갖도록 했다.

1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 안네데스크에 붙어 있는 사진.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여행객들의 즉석 사진 수백장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2 고토부키 지역의 건물의 빈방을 개조해 호스텔로 만든 내부의 모습. 3 고토랩은 ‘자립 조건부 아파트 임대사업’도 진행하고 있는데, 아티스트에게 의뢰해 아파트를 전면 리모델링해 2년 조건부로 임대하는 사업이다. 2년 안에 생활보호를 탈출하면 이후에도 계속 살 수 있는 조건이다. /사진제공=고토랩
1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 안네데스크에 붙어 있는 사진.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여행객들의 즉석 사진 수백장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2 고토부키 지역의 건물의 빈방을 개조해 호스텔로 만든 내부의 모습. 3 고토랩은 ‘자립 조건부 아파트 임대사업’도 진행하고 있는데, 아티스트에게 의뢰해 아파트를 전면 리모델링해 2년 조건부로 임대하는 사업이다. 2년 안에 생활보호를 탈출하면 이후에도 계속 살 수 있는 조건이다. /사진제공=고토랩

성인 1명이 눕기에 적당한 200×300㎝ 쪽방의 1인당 숙박비는 3000엔 정도. 평균 5000~6000엔이 넘는 일반 숙소보다 훨씬 저렴하다. 2005년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그해 5월 홍콩에서 첫 번째 방문 요청을 받았다. 현재 직원 6명이 빈방 40개를 운영하는데, 1년 매출은 2000엔(약 2억9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여행객 숙소만 시작했지만, 점차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다양한 사업도 함께한다. 일본 명문대인 게이오대와 파트너십을 맺고, 이곳의 빈 사무실 공간을 개조해 법학부 학생들의 ‘현장실습 교육장’으로 사용한다. 오카베씨는 “대학에서 배우는 전문지식을 사회에 응용해볼 수 있는 기회나 장소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 지역이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니만큼 생생한 교재로 활용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학생 40여명은 테마별 연구 주제를 갖고 한 달에 한 번 이곳을 방문, 연구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쓴다.

그는 학생들이 오지 않는 시간엔 이곳을 지역 주민의 문화센터로 활용, 댄스교실과 요가교실 등으로 쓰도록 임대해주고 있다. 오카베씨는 “릿쿄대학에서 함께하기로 했고 몇몇 대학에서 문의하는 등 반응이 좋다”며 “이런 활동은 수익을 창출하면서 젊은이들을 지역에 많이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오카베씨는 최근 ‘자립 조건부 아파트 임대사업’도 시작했다. 건축학도인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아티스트에게 의뢰해 아파트 내부를 전면 리모델링한 후 2년짜리 조건부 임대 계약을 맺는 것이다. ‘2년 안에 생활보호를 받지 않고 자립한다면 이후에도 계속 살 수 있다’는 조건이다. 깨끗하고 멋진 집에 계속 살기 위해선 자립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일반 기업은 1000원짜리 휴대폰을 만들어 5만원에 팔아 4만9000원의 수익을 내는 형식이라면, 사회적 기업은 이 수익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재투자합니다. 국가나 지방 정부가 세금으로 해결할 복지문제를 우리 같은 사회적 기업의 활동이 돕고 있는 셈이죠. 만약 세금이 100만원에서 80만원으로 줄었다면 나머지 20만원을 이런 사회적 기업을 위한 프로젝트에 재투자하는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파트 임대사업을 통해 얼마나 자립이 가능한지 수치를 파악한 후 관련 법을 제안할 겁니다.”

‘고토랩’은 젊은이들을 지역에 끌어들이는 사업과 함께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통한 자립’ 프로젝트도 한다. 일본 이동통신업체 NTT도코모와 파트너십을 맺고, 근처 관광지의 자전거 임대센터에서 자전거 유지·보수업무를 이 지역의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맡긴다. 오카베씨는 “생활보호를 받는 분들은 일을 안 해도 살 수가 있는데, 이분들에게 어떤 동기를 부여해 자립을 유도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이분들은 젊은이들이나 사회와 교류하는 게 너무 좋아 힘들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걸 터득했고, 돈 이외의 가치를 느끼는 틀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지역의 대표적인 비영리 조직인 ‘NPO 사나기타치 프로젝트’와도 협력, 마을 활성화사업도 한다. 퇴락한 지역 이미지 변화를 위해 거리와 건물의 옥상에 화단을 가꾸고 벤치를 제작하는 등 ‘1평짜리 평상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호스텔에서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회화수업, 아티스트들의 예술수업 등을 진행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버려진 유권자’로 인식하는 정치 인식을 바꾸기 위해 2006년엔 투표율 올리기 선거 캠페인까지 진행했다. 오카베씨는 “이곳에도 6500개의 투표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마을 곳곳에 알록달록한 포스터를 붙여 신문과 방송에 많이 보도됐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주변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7년 전 그가 처음 방문했을 당시 고토부키 지역은 거리 곳곳에 널브러진 노숙자, 지린내로 진동하는 거리, 술에 취한 노숙자들이 저지르는 범죄 등으로 인해 경찰도 치안을 포기한 우범지대였다. 하지만 오카베씨는 “예전에는 밤에 퇴근하는 여성들이 이 거리가 무서워 아예 지나질 않고 멀리 돌아가곤 했는데, 지금은 여성들이 많이 다닌다”며 “마을 전체가 깨끗해졌다”고 했다. 지난해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사고의 여파가 있긴 하지만, 이곳 거리엔 이제 외국인 여행자와 국내 여행자, 아티스트 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사회적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과 파트너십”이라고 했다.

“2008년 무렵 운영하던 숙소가 80개에서 40개로 줄면서 수입도 절반으로 줄어서 힘들었어요.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사업에도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죠. 사회적 기업도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놓으면 기회가 찾아오고 기회를 잘 활용하면 됩니다. 또 사회적 기업은 협력과 파트너십이 중요합니다. 저는 숙소주인들과 수익을 나누기도 하지만, 리스크도 나눕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위해 공헌을 할 마음을 갖느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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