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민 제보 캠페인 ‘매의 눈을 빌립니다'(이하 매의 눈) 결과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매의 눈은 지난 한 해 체벌을 ‘사랑의 매’ 등으로 미화한 방송, 라디오, 신문, 광고물 등 미디어를 대상으로 시민 제보 캠페인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1년간 제보 23건을 받아 25곳에 시정 요구를 했으며 이 가운데 9곳에서 문제된 표현을 바로잡거나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매의 눈’은 다양한 매체에서 ‘문제적 표현’들을 잡아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지난 10월 회초리를 쓰는 훈장과 순간 겁을 먹은 아이들을 비추며 ‘회초리 하나로 완벽정리’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제보자는 “출연한 부모가 아이에게 ‘회초리 맞을 짓’이라는 표현을 써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고 지적했다. SBS ‘미운 오리 새끼’에서도 가수 김건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내보내며 “매를 통해 전해지는 엄마의 사랑”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제보자는 “예능이니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체벌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탈락한 사람 사랑의 매 한번 갑니까?’라고 자막을 띄운 JTBC ‘아는 형님’, 출연자가 자녀에게 회초리를 든다고 발언할 때마다 ‘사랑의 매’라고 자막을 내보낸 tvN ‘인생술집’ 등도 지적을 받았다.
정치권도 ‘매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 민심’을 “자식 잘 되라고 회초리를 든 어머니”에 비유했다. 원유철 의원도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부모의 회초리’에 빗댔다. 또 지난 8월 23일엔 천정배 의원이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당대표 출마를 비판하며 ‘사랑의 회초리’를 언급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각 당 의원실에 모두 주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온라인 쇼핑몰도 시정 요구를 받았다. 회초리를 쳐보니 여전히 ‘사랑의 매’가 뜬다고 밝힌 한 제보자는 “제품 이름을 아예 ‘사랑의 회초리’라고 붙여 놓았으니 구매하는 사람이 이건 사랑의 회초리니까 다른 걸로 체벌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썼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상품 제작 업체와 판매 업체 28곳 가운데 14곳에 이메일과 우편으로 항의 및 시정 요구 공문을 전달했다. 반려동물용 체벌 도구를 판매하는 14곳에 대해서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에 협조 요청을 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항의한 온라인 쇼핑몰 가운데 3곳은 “‘사랑의 회초리’ 또는 ‘사랑의 매’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려라’. 부적절한 표현들은 초등학교 1~2학년용 낱말퍼즐 책에서도 발견됐다. 제보자는 “체벌함으로써 자녀를 사랑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내용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시정요구에 대해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을 인정하며 재판 인쇄 때 해당 속담과 삽화를 다른 것으로 바꾸겠다”고 답했다.
웹사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이버 지식 백과는 체벌을 용인하는 ‘우리 아이 나쁜 버릇 바로잡기’라는 책을 소개했다. 블로그 글도 걸렸다. 자신을 아동발달센터 원장이라고 밝힌 블로거는 “매는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에만”이라는 조건 아래 사용 방법을 알려줬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네이버 지식백과 고객센터에 시정 요청을 했고 현재 해당 페이지와 블로그 글은 삭제된 상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매의 눈을 빌립니다’ 결과 보고서에서 “한국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은 위법”이라며 “어느 미디어에서도 가정 폭력을 ‘집안 싸움’이라고 부르지 않듯 공공연하게 체벌을 ‘사랑의 매’로 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은정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장은 “체벌은 아이를 사랑해야 할 바로 그 사람이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폭력은 괜찮다’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사랑의 매와 같은 표현은 체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유포, 강화한다”고 말했다. 결과 보고서는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2017년 시민이 ‘매’의 눈으로 찾은 체벌 옹호 표현 보고서 내려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