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전국 병원 유랑하는 장애 아동 30만명

[더나은미래-푸르메재단] 장애, 이제는 사회가 책임질때 <上>

국내 아동 전문 재활병원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 뿐

외래 진료도 2년 대기해야
낮은 의료 수가 측정으로 대부분 경영 압박 겪어

“원래 엄청 ‘까불이’였어요. 형아보다 애교도 많고요.”

김이수(가명·34)씨에겐 아들 민재(가명·4)가 까불거리며 낄낄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래보다 볼살이 통통했던 아이가 살이 쭉쭉 빠졌다. 뇌종양이었다. 수술을 받고 완치한 줄 알았는데 암이 재발했다. 왼쪽 마비도 함께 왔다. 지난해 봄까지도 뛰어다녔던 아이는 이제 휠체어에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민재는 올해 5월부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세브란스에서 재수술과 입원치료를 마친 뒤, 재활 치료가 시급해 곧장 이곳으로 연결됐다. 김씨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병원 내 환자 대부분은 1년 이상 기다렸던 사람들이기 때문. 물론 김씨에게도 ‘병원 유랑’이 먼 미래는 아니다. 당장 3개월 입원 치료가 끝나는 8월이면 병원을 옮겨야 하기 때문. 다른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병원에 모인 엄마들의 일과는 다른 병원에 전화해 자리가 있는지 묻는 걸로 시작하고 끝난다.

“3개월간 하루에 몇 차례씩 재활 치료를 받으니까 전보다 좋아진 게 눈에 보이거든요. 마비가 온 뒤 양쪽 팔다리에 힘이 없었는데 나아졌어요. 엄마들은 불안하거든요. 치료를 조금이라도 쉬면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고, 또 계속 받으면 좀 더 괜찮아질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병원마다 대기자가 워낙 많아 3개월 정도밖에 머물지 못하니 아쉽죠.”

김씨의 집은 대구. 아이 재수술과 함께 서울에 온 지도 6개월이 됐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학교가 끝나면 공부방에 간다. 저녁밥은 김씨의 친정엄마가 챙긴다. 금전적인 부분도 점점 압박이다. “큰아들이 잘 표현은 안 하는데, 힘들어하는 게 느껴져서 마음에 걸려요. 민재의 경우 수중 재활 치료나 언어 치료도 필요한데, 그런 건 전부 비급여여서 부담이 크거든요. 남편 월급 절반 정도가 고스란히 치료로 들어갑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전국을 유랑하는 장애 아동 30만명

전국 장애아동 약 30만명. 김씨 같은 이들이 오늘도 병원들을 헤매지만, 아동을 재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서 아동 전문 재활병원은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이 유일하다. 서울 등 주요 대도시에 있는 대학병원이나 권역재활병원에도 어린이 재활병동을 갖춘 곳이 있지만 병상 수가 매우 적고, 성인 중심으로 운영된다. 어린이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일본엔 202곳, 독일엔 140곳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암담한 상황인 셈.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전국을 유랑하는 ‘재활 난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병원은 들어오고 싶은 이들로 넘쳐난다. 현재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의 대기자 수는 외래와 낮병동, 입원 환자를 합쳐 1000여 명. 외래 진료의 경우 지금 신청해도 2년은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어린이재활병원에서는 ‘환자를 받으면 받을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는 것. 지난해 28억5000만원 적자. 올해는 48억원 적자를 예상한다. 환자가 늘수록 적자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종현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 부원장은 “아동 재활은 기계로 대체하거나 말로만 설명할 수가 없고, 치료사가 1대1로 붙어서 치료해야 하고 난이도도 높아 인건비 비중이 워낙 높은데, 의료 수가는 워낙 낮게 책정되어 있다 보니 병원에선 경영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린이재활병원, 민간 운영 어려운 구조 “국가 예산 투입해야”

국내에 어린이재활병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경영난을 겪다 문을 닫거나 의원급으로 규모를 축소했다. 2006년 경기 분당에 90 병상 규모로 개원했던 어린이재활병원 보바스어린이병원 역시, 적자 누적으로 2014년 29병상, 의원급으로 축소했다. 2008년 경기 부천에서 문을 연 꾸러기병원 역시 경영난을 겪다 성인 위주 재활요양병원으로 바뀌었다. 보바스 어린이병원장이었던 신종현 부원장은 “병상 90개 규모를 운영할 때 매년 10억~12억원 적자가 났는데, 같은 법인이 성인병원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보존해서 근근이 유지했다”며 “민간에서 어린이재활병원을 하는 건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권역별로 확충하겠다는 내용도 100대 국정 과제로 포함됐다. 재활병원이 부족해 전국을 떠도는 ‘재활 난민’ 부모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전문가들은 “아동재활병원은 정부가 운영비를 보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임윤명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공약으로 권역별로 성인재활병원이 5곳 설립됐지만, 정부에서 건물과 의료 장비만 지원했던 까닭에 적자 운영이라 잘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아동재활병원은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라는 걸 감안할 때, 성인재활병원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례나 법을 통해 ‘운영비를 정부가 보장한다는 것’을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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