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미소캠페인
지구IN 난민촌 아동사진치료&전시회
‘지구IN’ 한국 청년 네명 방콕 난민촌 ‘매솟’ 찾아가 아이들에게 사진·그림 가르쳐
그림 속에는 성폭력 등 트라우마의 흔적 담겨 작품 속에는 성장·희망 표현도…
“웬 미친놈이 학교 가는 사내애에게 / 황산을 끼얹었다 / 푸른 잎새 넘실거리는 보리밭에서 / 깜부기를 뽑을 때처럼 / 삶은 난감한 것이다.”
시인 이성복은 ‘삶은 난감한 것’이라고 했다. 그 시각 그 자리에 그 아이가 있었고 같은 시각 같은 곳에 미친놈이 황산을 들고 서 있었다. 원인은 있되 이유는 없고 가혹한 결과만 남아 있더라도 삶은 삶이니, 삶은 난감하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왠지 이 시를 떠올렸다. 사진 속의 아이는 노란 천을 뒤집어쓴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흑백 사진에 오일 파스텔로 색을 칠한 작품 속 아이의 얼굴엔 파스텔의 질감 속으로 파고든 긁힌 자국들이 선명하다. 파스텔은 코를 지웠다. 빨갛게 번진 입술을 살짝 벌린 아이의 입은 이제 막 말을 시작하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을 끝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아픔과 괴로움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외부인은 그저 삶이란 난감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방콕의 북서쪽, 버스를 타고 9시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매솟’에서 만난 아이라고 했다. 매솟은 므이강을 사이에 두고 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한 도시다. 미얀마 정부군의 탄압을 받은 소수민족 중 일부가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므이강을 넘어 매솟에 살림을 차렸다. 민족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가고 타국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다 보니 난민 커뮤니티가 생겼다. 그러나 법적으로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이 사람들은 미얀마법, 태국법, 국제법 어느 것으로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동에 관한 권리협약에 따라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는 있지만,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순간 그 보호도 끝이 납니다.”
문신기, 이다혜, 오승건, 이상아 네 명은 ‘지구IN’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9개월간 두 번에 걸쳐 이곳 매솟의 난민 아이들의 학교에서 사진과 그림을 가르쳤다. 아이들의 학교 일과가 끝난 시간에 카메라 4대와 오일파스텔을 들고 학교에 찾아갔다. 처음엔 12명이 그다음엔 60명이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이들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흑백사진을 찍게 하고, 그 위에 색을 칠하게 했다. “아이들이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림을 가르치는 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카메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조작법만 익히고 그냥 찍으면 되니까요.”
사진 속에는 다양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기존의 사진 문법에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난민커뮤니티의 삶 속으로 파고든 사진들이 나왔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찍히면서 조작법과 구도를 잡는 법을 스스로 깨쳤어요.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흑백으로 출력한 후 오일 파스텔을 쥐여주었죠. 아이들은 자기 마음이 가는 곳에 색을 입혔습니다. 때로는 글도 쓰고요. 그러자 전에 보지 못한 결과물들이 나왔습니다.”
난민커뮤니티에는 은밀하거나 노골적인 폭력들이 있다. 난민 사이의 폭력도 있고, 가정폭력도 있고 성폭력도 있다. 아이들의 사진과 그림 속에는 그런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이 담겨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난민으로서 아픔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긍정적인 감정들도 묻어 나왔다. 비록 좁은 곳이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자유롭게 내뿜는 에너지가 찬란한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닫혀 있는 공간과 감정만을 표현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다행스럽게도 착각이었다.
그리고 작품 속에는 아이들의 성장도 기록되었다. 처음에는 꽃만 찍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의 다른 것들도 찍기 시작했다. 오일 파스텔을 쥐여줘도 연필로 사진을 긁어대기만 하던 아이가 다양한 색깔의 파스텔을 사용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29세, 31세의 88만원 세대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매솟까지 가서 이런 작업을 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카메라 넉 대 중 두 대가 고장 났다. 예술을 전공한 이들이 작품작업을 위해 사용하던 카메라들이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다만 아이들의 손에 쥐여줄 수 있는 낮은 사양의 카메라라도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다. 카메라와 그림을 좋아하는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좋지만 난민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구상을 했다.
“아이들이 찍고 그린 작품을 한국에 가져와서 보여주고 판매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우리가 돈이 없어 기부는 못하지만 대신 팔아주고 수익금을 아이들의 커뮤니티에 보내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뜻은 좋았지만 사회초년생들이 벌이기에는 힘든 일이었는데 국제구호단체인 ‘더프라미스’가 전시회 후원을 나섰다. 지구IN과 더프라미스는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청담동의 ‘갤러리 엠(GalleryEm)’에서 매솟의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을 모아 ‘MY First Camera(내 생애 첫 카메라)’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의 수익금은 난민커뮤니티 성폭력 피해아동 후원과 더프라미스의 교육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