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새활용展 업사이클링 제품 3인 3색 인터뷰
“와, 이런 것도 재활용이 된다고?”
폐 우산은 파우치가 되고, 버려진 청바지 원단은 모자가 됐다. 전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진열된 제품을 요리조리 살피며 연신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제 2의 생명’을 얻은 제품에서 원래 소재를 상상하긴 힘들었다.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새활용展’ 현장. ‘새활용’은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우리말 순화어다. 단순환 재활용을 의미하는 리사이클(recycle)과는 달리, 기존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서울새활용展’은 버려지거나 폐기물로 분류되는 소재로 만든 실용적인 제품들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행사다. ‘새활용’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듯, 온갖 종류의 제품들이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낙과(태풍 등으로 인해 채집 전에 떨어진 과일)를 활용한 케이터링(식사·다과) 서비스, 폐 목재를 활용한 가구, 의류업체에서 기존의 제품들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원단으로 만든 옷들까지. 버려지고도 남을 소재가 새롭게 태어났다. 새활용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뛰어든 세 곳의 업사이클 브랜드를 만났다.
◇화분으로 전하는 연탄의 온기… ‘지구인랩’
“폐 연탄을 새롭게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2015년 겨울, 연탄 봉사를 나갔던 김영준(24)씨의 눈에 ‘폐 연탄’이 들어왔다. 다 태운 연탄이 쓰레기가 되어 길 곳곳에 널려있었다. 연탄을 나눠준 뒤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될까. 호기심이 생겼다. “알아보니 연탄재는 지자체에서 수거하지 않으면 종량제봉투를 사서 버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들 중 절반이 정부 지원을 받을 정도로 열악하다 보니, 돈 주고 봉투 사는 대신 길가에 버리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연탄재를 활용해서 뭔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고민하게 됐죠.”
연탄재를 파쇄해 다시 굳혀 만들어낸 화분, 지구인랩의 첫 제품 ‘온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용도는 변했지만 연탄의 온기를 전하고자 붙인 이름이었다. 바닥에 뚫린 구멍까지도 연탄을 닮았다.
‘지속 가능한 제품’에 대한 고민도 더해졌다. 다 쓰고 버려져도 쓰레기가 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업사이클링으로 잠깐 새로운 수명을 준다고 해도, 언젠가 다시 버려져서 쓰레기가 된다면 ‘업사이클’ 가치에 맞지가 않잖아요. 지구에 해가 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고정시키기 힘든 연탄재 성분에 강도를 더해 줄 경화제가 필요했다. 구하기 쉽고 저렴한 합성 경화제 대신 5개월 간의 수소문 끝에 친환경 재료를 찾았다. 여러 번의 배합 실험으로 최적의 강도와 두께, 배합 비율도 치밀하게 연구했다. 언제 깨져도 잘게 부숴 ‘비료’로 쓸 수 있는 ‘무한 사용’ 화분의 탄생이었다. 연탄재를 수거해 파쇄하고 굳혀서 거친 표면을 다듬기까지, ‘온기’의 모든 공정은 손 작업으로 이뤄진다.
지구인랩의 표어는 ‘지구를 위한 디자인, 우리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EARTH, DESIGN FOR US)’이다. 제품 수익금의 일부는 연탄은행에 기부한다. 내년 1월에는 연탄 자원봉사도 나갈 계획이다. “아직 대학교 학생이라 작업과 일을 병행해 피곤하다”는 김씨는 “그래도 원하는 일을 만들어 하고 있어서 재미있고 뿌듯하다”고 했다. 지구를 실험실로 삼아 계속 새로운 소재를 찾고 싶다는 지구인랩. 그들의 다음 연구가 기대된다.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를 꿈꿉니다, ‘이스트 인디고’
패션 창업을 꿈꾸던 장슬아(30)·함민규(26) 대표는 견학 차 방문한 의류공장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냄새도 나고 환경에도 유해하다는 청바지 워싱 염료가 심각하게 버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기만 할 때는 알지 못했던, 의류 공정과정에서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패션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이 지금의 ‘이스트 인디고’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스트 인디고에서는 버려지는 청바지를 업사이클링해 가방이나 모자, 인테리어소품 등을 제작한다. 안 입는 청바지를 기부 받거나, 유행이 지나 구제 청바지로도 판매되지 않는 것들이 ‘새로운 원단’이 된다.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에서도 한 청바지 브랜드가 몇 년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고가였는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입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유행이 지난 지금은 입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유행도 유행이지만, 엄청난 환경 비용을 치르고 만들어진 청바지가 버려지는 게 아까웠어요.” (장슬아 대표)
일반적으로 청바지는 인위적인 워싱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청바지 한 벌당 사용되는 물의 양은 1,500리터. 각종 화학약품을 이용한 공정과정까지 거치면 물 낭비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최근 리바이스와 같은 브랜드가 새로운 워싱 공법을 개발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제품에 대한 반응은 심상치 않다. 정식적으로 판매하는 온라인 매장 외에도 SNS등에서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끊이지 않는 것. “10,20대와 같은 젊은 층 뿐만이 아니라 40대 이상의 고객 분들도 직접 사무실에 찾아와서 제품을 구매하기도 해요. 다들 버려지거나 못쓰는 청바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워하죠.”
이스트 인디고는 내년부터 신진 디자이너 편집숍 에이랜드에도 입점한다. 에이랜드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위한 편집숍으로 많은 이들이 입점하기를 바라는 곳이다. “‘업사이클링’ 브랜드도 좋지만,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단순히 업사이클링이란 이유만으로 선택 받기보다는 패션브랜드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요. 새 원단이 아니기 때문에 꺼리는 분들도 디자인만 괜찮다면 얼마든지 구입하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비 올 때만 우산을 쓰나요? 폐 우산 업사이클링 브랜드 ‘큐클리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아끼던 우산이 망가졌다. 당시 가방 디자이너였던 우연정(30)씨는 버리기 아까운 디자인의 우산 천으로 작은 파우치를 만들었다. 영업·기획 MD였던 남자친구 이윤호(30)씨는 직업적인 감으로 가능성을 봤다. 폐 우산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브랜드 ‘큐클리프’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때부터는 온갖 버려진 우산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버려진 우산 중에 패턴이나 색상이 좋은 원단들이 많아서 충분히 재활용될 가치가 있다고 봤어요. 버스정류장이나 길가에 버려진 괜찮은 우산을 구할 때마다 바로 샘플 작업을 해봤는데,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우연정 대표)
폐 우산 원단의 장점은 가벼움. 생활방수도 가능하다. 캔버스 같은 면 재질이나 가죽 제품과는 달리 물에 닿아도 툭툭 털기만 하면 끝이다. 휴대도 간편하고 활용 가치도 높다.
현재 큐클리프는 재활용센터 한 곳에서 폐 우산 천을 받아온다. 직접 센터로 가서 우산 뼈대를 일일이 해체한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태워졌을 우산들이 새롭게 태어났다. 이들은 “더 많은 재활용 센터에서 폐 우산 천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폐 우산은 소각되거든요. 그런데 우산 원단 재질이 대부분 폴리에스테르인데, 소각 시에 환경오염이 심각하죠.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업사이클 업체의 고민 중 하나가 재료 수거인데, 내년에 생기는 ‘새활용 플라자’의 ‘소재은행’을 통해 조금이나마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우연정 대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멀쩡한 걸로 만들어도 잘 안 되는데 그게 되겠냐’는 분들도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업사이클링에 대한 교육과 인식 제고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윤호 공동대표)
큐클리프(CUECLYP)라는 이름은 업사이클(UPCYCLE)의 철자를 재배열해 만들었다. “‘소각 대신 소생하는 두 번째 쓸모’가 저희의 슬로건입니다. 대량 생산되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에게 재활용한 제품의 새로운 가치를 전해주고 싶어요.”
조용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청세담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