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제구호개발 NGO ‘피스윈즈재팬’ 오니시 겐스케 대표
22년간 해외 분쟁 지역서 구호·개발 활동… 한때는 연매출 50억 CEO
‘재팬플랫폼’ 설립, 유기견을 구호견으로 키우는 등 혁신 활동 이어가
일본 북서부 지방의 오카야마 공항. 이용객이 적어 활주로가 하나뿐이다. 이곳에서 다시 차로 2시간가량 굽은 산길을 달려 도착한 시골 마을 ‘진세키코겐쵸’. 인적이 드물고 인구 절반이 초고령이라 일본 정부가 한때 ’30년 내 없어질 수 있는 지자체’로 꼽았던 곳이다. 지난달 27일, 현지에서 만난 주인공은 일본 토종 국제구호개발 NGO ‘피스윈즈재팬’의 오니시 겐스케(大西健丞·49·사진) 대표. 피스윈즈재팬은 5년 전부터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 지역 소득을 전년 대비 20% 증가시키는 등 변화를 만들어 지난 6월 일본 대표 경제지 ‘닛케이’가 혁신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단체나 기업에 수여하는 ‘닛케이 소셜이니셔티브 시상식(NIKKEI Social Initiative Award)’에서 대상을 받았다. 정부도 방치한 시골 마을을 이 NGO는 어떻게 변화시킨 것일까.
1996년 피스윈즈재팬을 설립한 오니시 대표는 22년간 이라크 등 해외 분쟁 지역에서 구호·개발 활동을 해온 ‘베테랑’이다. 이뿐 아니다. 한때 개인 사업으로 연매출을 50억원씩 내며 쌓은 자본과 비즈니스 감각을 그대로 비영리단체에 이식, 끊임없이 변화들을 시도하는 ‘괴짜 혁신가’이기도 하다. 그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를 거두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오니시 대표는 NGO의 혁신을 몸소 보여준 ‘산증인’이다. “1999년 코소보와 동티모르 내전 당시 일본 정부의 개발원조(ODA) 기금이 세계 최대라고 했지만, 모두 유엔 기구 등 영미 대규모 NGO들에 건너갈 뿐 자국의 작은 NGO들엔 지원이 전혀 없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들과 정부를 참여시켜 재난 지원 기금과 자원을 모으고, 이것을 구호 단체들에 ‘직접’ 전달하는 ‘재팬플랫폼’을 만들었죠.”
모두 안 될 거라 예측했지만 일본 최대 마트 체인점 ‘이온 그룹’의 오카다 다쿠야 회장이 취지에 동감해 함께 나서며, 소니·도요타 등 대기업과 일본경제실천연합회(經團聯)는 물론 여러 정부 부처가 재팬플랫폼에 동참했다. 이제는 작년 기준 800억원에 이르는 재난 기금을 마련·분배해, 일본 내 47개 구호 단체들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한다. 특히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에게 각각 실질적인 역할을 부여해 목소리를 내게끔 하는 것은 물론 언론을 옵서버(감시자)로 둬, 정부-기업-NGO가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마련했다. 재팬플랫폼으로 일본 NGO 생태계가 규모뿐 아니라 질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다 2011년, 관동대지진은 오니시 대표의 생각을 바꿨다. ‘해외로 나가는 것만이 국제 구호단체의 답이 아니다’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대규모 구호 활동과 마을 재건 사업을 하며, 해외 재난 현장에서의 경험들이 국내 지역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실감했죠.”
이후 그는 이전부터 가족들과 요양 차 머물던 진세키코겐쵸를 낙점, 첫 실험을 시작했다. 무너져가는 지역을 살리고, 국제구호개발에 대한 관심도 끌어내려는 시도였다.
첫 아이디어는 유기견을 구조견으로 키우는 ‘피스완코(강아지)재팬 프로젝트’. 5년 전만 해도 진세키코겐쵸가 있는 히로시마현에서는 한 해 8300마리의 유기견과 유기묘를 독가스실에서 죽이는 등 전국 최악의 상황이었다. 피스윈즈재팬은 이 살처분 직전의 유기견을 데려와 구조견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평균 3~4년간 공을 들였다. 방치됐던 임야 1만여 평을 활용, 일본 최대 규모의 유기견 보호소 및 구조견 훈련소로 만들어 개방도 했다.
파급력은 상당했다. 오니시 대표는 “구조견 ‘유메노스케’는 나보다 더 유명한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유메노스케가 2014년 히로시마 산사태, 지난해는 네팔 지진 등 현장에 투입돼 맹활약 하며 ‘사람이 죽이려던 유기견이 사람을 살린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단체엔 3개월 새 30억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폭발적 관심 덕분에 히로시마현에선 이제 유기 동물의 살처분이 전면 중단됐다. 기부금으로 유기견의 상태에 따라 단계별로 돌보는 건물 4동이 생겼고, 수의사와 트레이너 등 전문 직원도 25명으로 늘었다. 오니시 대표는 “현재 구조견 다섯 마리가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투입된다”며 “시설 내 약 650마리의 보호견도 체계적인 훈련을 지속하고, 동시에 새 가족이 생길 수 있도록 양도 센터도 함께 운영한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오니시 대표는 도쿄에 있던 단체 본부를 이곳으로 옮겨 왔다. 지역 인근에 구조 훈련장을 만들고, 폐업 위기에 몰렸던 지역 헬리콥터 조종사들을 고용해 헬기도 직접 운행한다. 그는 “헬기로 평소엔 환자를 이송하고 국내외 재난이 발생하면 빠르게 현장에 출동한다”며 “지난 4월, 일본 최남단 구마모토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우리 단체가 헬기를 타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기부나 거주하도록 하려면, 한 번이라도 와 봐야 해요. 그래서 관광 사업 콘텐츠를 만들고 마을을 정비 중이죠.”
오니시 대표는 8년 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속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즈키 대표와 정부에서 개발사업으로 없애려던 히로시마현 해안 마을 ‘토모노우라’ 이야기를 애니매이션 ‘벼랑 위의 포뇨’로 만들어 마을을 지켜낸 바 있다. 최근엔 진세키코겐쵸에 8만평의 자연체험 농장은 물론, 여기서 헬기로 10여분 거리의 섬 ‘토요시마’에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섬을 직접 방문해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미술관을 열기도 했다.
오니시 대표는 “분단 상태인 한국에 전시 상황 등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바로 한국 NGO”라며 “한국 국제구호개발 단체들 역시 국내에 거점을 두고 역량을 쌓아갈 필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한·일 비영리단체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극제’이자 위급할 때 최우선으로 달려갈 ‘동료 활동가’이길 바란다”며 “언젠가 양국 단체들이 함께 국제개발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청년 인재를 키우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히로시마현=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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