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내선 탄소중립·해외선 LNG 확대”…아시아 시민사회서 비판

태국 방콕서 항의 퍼포먼스 열고 한국대사관에 요구서한 전달
한국 공적금융의 해외 가스 사업 지원 중단·재생에너지 전환 투자 요구

아시아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의 동남아시아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확대를 비판하며 공적금융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한국이 국내에서는 탄소중립을 내세우면서 해외에서는 가스 의존을 높이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아시아 시민단체 연대체 ‘돈트가스아시아(Don’t Gas Asia)’와 지역 협력단체들은 지난 8일 태국 방콕 예술문화센터(BACC)와 주태국 한국대사관 앞에서 항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지난 8일 태국 방콕에서 아시아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국의 동남아시아 LNG 사업 확대와 공적금융 지원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Don’t Gas Asia

아티비스트 네트워크(Artivist Network)가 지역 협력단체들과 함께 주최한 이번 퍼포먼스는 한국 사극 형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동남아 가스 인프라 확장에 관여하는 것으로 지목한 한국 기업과 공기업, 공적금융기관의 현황을 적은 대형 두루마리를 펼쳤다. 이어 한국을 상징하는 인물에게 책임을 묻는 재판 장면을 연출했다.

◇ 동남아 가스 사업 1600억 달러 규모…한국 공적금융 지원 비판

주최 측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LNG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으로 가스 의존에 따른 위험이 커졌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가스 인프라 확장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가 인용한 글로벌에너지모니터(Global Energy Monitor)의 지난 9월 분석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에서는 약 106GW 규모의 가스발전 설비와 연간 7000만 톤 규모의 LNG 수입 설비가 개발 중이다. 전체 사업 규모는 약 1600억 달러(약 213조8200억 원)로 추산됐다. 개발 중인 LNG 수입 설비 용량도 2024년 이후 약 50%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단체 측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공적금융기관은 2017년부터 2024년까지 해외 가스 인프라에 연평균 약 57억 달러(약 7조6200억 원)를 지원했다. 주최 측은 한국이 탄소중립을 약속했음에도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화석연료 사업에 공적금융을 많이 제공하는 국가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태국에서는 포스코이앤씨가 라용주 매립지에 건설 중인 ‘걸프 MTP LNG 터미널’이 주요 사례로 거론됐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해 6월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건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소개됐다. 현지 어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하루 어획량은 과거 100kg에서 2kg으로 줄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남부발전, 한화에너지가 지분 60%를 보유한 23억 달러(약 3조800억 원) 규모의 ‘하이랑 LNG 발전사업’이 지목됐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전체 지분 가운데 40%를 한국 공기업이 보유하고 있으며, 착공식 이후 약 4년이 지났지만 실제 공사가 시작됐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단체가 인용한 사업 타당성 조사 분석에서는 베트남전력공사가 이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구매하는 데 연간 최대 10억 달러(약 1조3400억 원)를 지불할 수 있으며, 전력단가는 베트남 주요 석탄화력발전소 평균보다 약 70% 높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 밖에도 한국수출입은행과 금융 지원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으로 소개된 GS에너지의 베트남 롱안 LNG 발전사업과 SK이노베이션의 꾸인랍 LNG 발전사업이 거론됐다. 주최 측은 SK이노베이션이 지난 5월 꾸인랍 사업 착공식을 열었다고 전했다.

지난 8일 태국 방콕에서 아시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동남아시아 가스 인프라 사업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Don’t Gas Asia

◇ “지역 주민 생계 위협”…한국대사관에 요구서한 전달

아시아 부채·개발 민중운동(APMDD)과 돈트가스아시아 캠페인의 리디 낙필은 “한국은 국내에서는 청정에너지를 약속하면서 공적금융과 공기업을 통해 동남아시아를 수십 년간 비싸고 가격 변동성이 큰 화석연료에 묶어두고 있다”며 “LNG 설비 확대는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보다 국제 공급 충격과 가격 급등에 대한 취약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한국이 해외 가스 개발에 대한 금융 지원을 중단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재생에너지 전환에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방글라데시 환경단체 워터키퍼스 방글라데시(Waterkeepers Bangladesh)의 샤리프 자밀은 한국의 공적금융이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남아시아의 가스 사업 확대에도 관여하고 있다며, 에너지 비용 상승과 연안 주민들의 생계 피해를 우려했다.

태국 라용 지역 어민이자 EEC 워치 그룹(EEC Watch Group) 소속인 팟 깐차웡은 매립 사업에 앞서 지역사회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LNG 수입 터미널이 더 늘어나고, 바다에 지어야 할 가스 시설이 더 늘어나고, 드나드는 LNG 선박이 더 많아질수록 어민들은 어장을 잃고 있다”며 “한국 금융기관은 이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어민들이 어장을 잃고 연안 생태계가 파괴되는 데 돈을 대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국제 환경단체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의 마키코 아리마는 한국이 일본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스 사업에 공적금융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국가 중 하나라며, LNG 수입 설비 확대가 공급 차질과 가격 급등에 대한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최 측은 한국 정부에 동남아 가스 인프라 개발 지원 중단과 한국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의 향후 가스 인프라 사업 금융 중단을 요구했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남부발전 등 공기업의 관련 사업 철수, 공적 자본의 재생에너지 전환 투자도 요구사항에 포함됐다. 참가자들은 퍼포먼스를 마친 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식 요구서한을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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