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일)

자원봉사자가 모여 창고를 카페로…”티베트 어린이들의 록빠(rogpa: 친구, 돕는 이)가 되고 싶어요”

록빠 2호점 ‘사직동 그 가게’

봄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를 따라 손님들이 앉아 있다. 토스트와 음료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은 기자가 들어서자 하던 얘기를 멈추곤 인사를 건넨다. 환한 웃음에 이끌려 얼떨결에 손님들 무리에 앉게 되었는데 이방인이라는 느낌은 저만치 사라진다. 카페에선 인도의 다람살라에 사는 티베트 여성들이 수공예로 제작한 스카프나 지갑을 비롯한 다양한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사직동의 카페 ‘사직동 그 가게’다.

고대권기자_사진_록빠_수공예품_2011‘사직동 그 가게’에는 사연이 있다. 사직동 그 가게의 모태는 인도의 다람살라에 있는 록빠(rogpa.com) 1호점이다. 다람살라에는 달라이 라마가 세운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고 티베트의 난민들이 티베트의 정신문화와 언어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객이 다람살라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특히 이곳에 위치한 록빠 1호점은 인도를 찾는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록빠(rogpa)는 ‘친구’, ‘돕는 이’라는 뜻이다.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난민의 아이들을 돌보며 자원봉사를 하던 한국인 빼마씨가 남편과 함께 탁아소를 건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빼마씨는 엄마들, 특히 싱글맘들에게 일자리가 있어야 제대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성작업장을 만들었다. 여성작업장에 재봉틀을 놓고 9명의 엄마들이 지갑이나 스카프를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공부를 한다. 2005년 이후 지금까지 록빠는 어린이 도서관을 짓고 지역 페스티벌을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고 이것은 모두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의 봉사활동과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사직동 그 가게도 같은 맥락이다. 여성작업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빼마씨가 고민을 털어놓자 록빠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한국인들과 이들의 친구 30명이 뭉쳤다. 이들은 십시일반 1125만원을 만들어 서울 사직동에 록빠 2호점을 내고 이름을 ‘사직동 그 가게’라고 붙였다.

‘사직동 그 가게’는 원래 문방구점의 창고 자리다. 오랫동안 문방구점을 지키던 주인 할머니가 창고를 싼값에 대여해줬다. 곧이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내놓아 카페를 꾸몄다. 카페에 있는 의자와 탁자는 봉사자들이 채집한 가구의 목재들을 재활용해 직접 만들었다. 손바느질을 하는 디자이너가 커튼을 만들어줬고 바리스타를 하는 이가 커피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이 모여 메뉴 개발을 같이 하는 사이 재능기부를 원하는 뮤지션들이 찾아와 사직동 그 가게 옆 주차장에서 5번에 걸쳐 ‘멜로디잔치’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리가 잡힌 사직동 그 가게는 매니저 2명과 자원봉사자 12명이 운영하고 있다. 매니저들은 일주일에 3일씩 나오고 자원봉사자들은 휴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다른 날들의 반나절씩을 사직동 그 가게에서 보낸다. 사직동 그 가게에서 난 수익은 록빠 1호점에 보내져 티베트 난민 아이들의 교육에 사용된다. 사직동 그 가게에서 판매하는 수공예품을 사면 이 돈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에게 전달된다. 수공예품의 가격은 다양하지만 모두 한땀 한땀 티베트 여성 장인들의 정성이 담겼음에는 틀림없다.

사직동 그 가게는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면 갈 수 있다. 사직동주민센터를 마주 보고 우회전을 하면 나오는 양갈래 길에서 매동초등학교 방향으로 조금 걸어 가면‘문방구점이 있을 것 같은 자리에’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사직동 그 가게는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면 갈 수 있다. 사직동주민센터를 마주 보고 우회전을 하면 나오는 양갈래 길에서 매동초등학교 방향으로 조금 걸어 가면‘문방구점이 있을 것 같은 자리에’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사직동 그 가게에서는 티베트 어린이 도서관에 보낼 책이나 물품을 기증받기도 한다. 현지에서는 옷도 필요하고 아이들의 음악 교육에 사용할 악기도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보낼 기증품이 모였지만 배송비가 많이 들어 고민하고 있을 때 인도에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여행자가 찾아와 기증품들을 배낭에 담아 인도를 향해 떠났다고 한다. 이후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여성작업장의 물품을 사직동 그 가게로 배달해주고, 인도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사직동 그 가게에 들러 기증품을 받아 인도로 배달해주곤 한다. 사직동 그 가게의 오픈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남지연 매니저는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어찌 된 일인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직동 그 가게는 돈을 들이지도 않고 사업을 크게 벌일 생각도 없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찾아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하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즐기고 간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지금의 사직동 그 가게를 만들었다. 요즘은 양평 두물머리에 텃밭을 키우자는 작목모임도 생겼고, 재능기부 강사의 힘을 빌려 수공예 워크숍도 한다.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티베트 난민 돕기 장터도 하고 페스티벌도 연다. 한국에선 사직동 그 가게처럼 ‘록빠 2호점’을 통해 다람살라의 록빠를 지원하지만, 유럽의 여행자들은 자신들의 생일에 록빠 후원하기라는 주제로 파티를 벌여 파티에서 기증받은 물품과 모금 받은 돈을 록빠에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록빠와 티베트 난민들을 돕고 있다.

여행자들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봄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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