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총장·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아동 지원, 투자로 지속가능성 높인다
글로벌에서 ‘아동 관점 투자(Child Lens Investing, CLI)’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이에 발맞춘 펀드가 출범한다. 지난 21일,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와 임팩트 투자 전문기관 임팩트스퀘어는 ‘아동 관점 투자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첫 아동 관점 투자 펀드인 ‘임팩트 포 칠드런 펀드(Impact for Children Fund)’ 추진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아동 친화적 기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확대하고, 지속 가능한 아동 지원 모델을 구축하는 데 뜻을 모았다.
아동 관점 투자는 2023년 유니세프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유니세프는 ‘아동 관점 투자 프레임워크(Child Lens Investing Framework)’ 보고서를 통해 “아동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극대화하고 해악을 최소화하는 투자 접근법”이라고 개념을 정리했다.
◇ 아동을 위한 투자, 왜 필요한가
이러한 개념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경제적 기회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크라이티리언 연구소(Criterion Institute)의 ‘어린이의 미래에 대한 투자(Investing in the Future of Children)’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30%가 어린이이며, 2030년까지 21억 명이 새로 태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모자 보건 시장은 연평균 13.7%, 아동 교육 시장은 2029년까지 13.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으로도 아동 관점 투자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칠드런스 인베스트먼트 펀드 파운데이션(Children’s Investment Fund Foundation, CIFF)’이다. 대형 자산운용사의 수익 일부를 기부받아 운영되는 이 재단은 지금까지 약 17억900만 달러(약 2조4500억 원)를 아동 학대 예방, 교육, 보건, 위생, 기후 변화 대응 등에 투자했다.
국내 첫 아동 관점 투자 펀드인 ‘임팩트 포 칠드런 펀드(Impact for Children Fund)’는 총 50억 원 규모로 조성되며, 지속 가능한 환경, 건강, 교육 등의 분야에서 아동 친화적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및 소셜벤처를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재무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아동 보호와 지원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투자 대상 기업 선별과 아동 관점 투자 전략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임팩트스퀘어는 국내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 기관으로서 펀드 운용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 발굴을 담당한다. 이번 협력을 통해 두 기관은 아동 친화적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및 소셜벤처를 지원할 계획이다.
협약식이 열린 지난 21일, 더나은미래는 두 기관의 수장을 만나 이번 협력의 의미와 기대를 들어봤다.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만난 정태영 총장과 도현명 대표는 “임팩트와 재무적 성과 창출 모두 기대할 만한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 비영리 단체와 임팩트 투자, 새로운 협력 모델
― ‘아동 관점 투자’라는 개념이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데, 이번 펀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태영=세이브더칠드런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서비스와 지원 방안을 고민해 왔다. 해외 NGO들이 자체 벤처 펀드를 조성해 아동 지원 생태계를 확장하는 사례를 보며, 한국에서도 이를 도입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기부금이 일회성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을 위한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창출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다만, 국내에서 사회복지 법인이 직접 투자하는 것은 법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와 협업하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다. 그 결과, 임팩트스퀘어와 손잡고 펀드를 기획하게 됐다.
도현명=유니세프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처음 ‘아동 관점 투자’를 접했다. 그 때, 세이브더칠드런 글로벌 벤처스(Save the Children Global Ventures)에서 이미 투자를 실행하고 있는 사례로 언급됐다. 글로벌 차원에서 적용되고 있으니,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도 관심이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있었는데, 마침 세이브더칠드런 측도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국내 다른 비영리 조직들과도 이야기를 꽤 나눠봤었는데, ‘투자’라는 단어에 대한 일부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주요 보직자들이 투자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서인지, 논의가 비교적 수월했다(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총장은 대우증권과 대신증권에서 30여 년간 금융업에 몸담았던 전문가이며, 김희권 ESG사업부문 부문장 역시 유진증권과 미래에셋에서 투자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세이브더칠드런 글로벌은 자회사인 ‘글로벌 벤처스(Global Ventures)’를 통해 다양한 아동 복지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의료 기술 스타트업 ‘씽크MD(ThinkMD)’가 있다. 이 기업은 인터넷 연결 여부와 관계없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활용해 보건분야 종사자가 모성과 아동의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2024년 2월 기준 10개국 이상에서 1980만 건의 건강 진단이 이루어졌으며, 294건의 중요한 질병 및 위험 요인을 확인했다. 또한, 870만 명에 달하는 아동·청소년, 신생아, 임산부가 이 시스템을 통해 진단을 받았다.
― 해외 비영리 재단의 임팩트 투자 사례를 한국에서도 도입한다는 의미인가. 국내에도 비영리 재단의 임팩트 투자 사례가 일부 있는데, 이번 펀드의 구체적인 차별점은 무엇인가.
도현명=글로벌처럼 비영리에서 자회사를 만들어 투자를 하는 구조는 어렵다. 한국에는 사회복지법인의 직접 출자를 막고 있는 규정이 있고, 재단법인에서 임팩트 투자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 투자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있다. 스타트업은 ‘속도’가 생명이기에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임팩트 포 칠드런 펀드’는 외부 펀드를 조성해 투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규제는 따르면서도 의사결정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비영리 기관이 주도하는 최초의 아동 관련 투자 펀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태영=일반적인 투자자들과 달리, 우리는 아동의 관점에서 투자 결정을 내린다. 기존 시장에서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수익성이 낮아 외면받기 쉬운데, 우리는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또한, 비영리 기관과 임팩트 투자 기관이 협력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 기존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장기적으로는 ‘아동’이라는 키워드에 관심 있는 다양한 조직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펀드 운용 과정에서, 두 기관의 구체적인 역할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태영=세이브더칠드런은 100년 이상 축적된 아동 영역의 전문성으로 ‘아동 관점 렌즈’를 설계하고, 투자 대상 기업 선별을 위해 자문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장난감 회사에 투자한다면, 아동 안전에 유해한 소재는 없는지, 아동 노동은 발생하지 않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투자 받은 스타트업들이 세이브더칠드런의 사업과 연계되어 시너지를 창출하고, 필요한 네트워크를 제공받는 등 성장을 위한 다방면의 지원도 제공할 계획이다.
도현명=임팩트스퀘어는 임팩트 투자 전문성으로 펀드를 실제 운용하는 역할을 맡는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설계한 아동 관점 렌즈로 기업을 심사하고, 투자 후에는 기업의 성장을 관리한다. 임팩트스퀘어가 가진 투자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펀드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투자 받은 스타트업들에게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 관련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할 예정이다.
―이번 펀드에서 투자할 기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나.
도현명=주요 투자 대상은 초기 단계(Seed, Pre-A~SeriesA) 기업 40%이고, 성장 단계(Series A~SeriesB) 기업 60%이다. 투자 영역은 우선순위와 후순위로 나뉘는데, 환경, 건강, 교육 분야가 우선 투자 대상이며, 장애 아동이나 위기청소년을 지원하는 스타트업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다. 안정적인 수익이 기대되는 기업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초기 스타트업을 적절히 조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함으로써, 성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이다.
정태영=아동 친화적 기술과 사업 모델을 갖춘 스타트업이나 소셜벤처들이 ‘아동 관점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도록 설명 자료를 제작하고, 관련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역량 있는 기업들을 발굴한 후, 판별 체크리스트를 적용해 아동 관점 투자 기준에 적합한지 면밀히 심사할 계획이다. 체크리스트에는 기후변화 대응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아동 돌봄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등의 항목이 포함된다.
―국내에서 비영리 조직이나 공익법인의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 어떤 과제가 남아 있나.
정태영=비영리 조직은 투자와 무관하다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비영리 단체의 본질적인 역할이며, 투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영리 부문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투자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1호 펀드가 성과를 내면, 관련 규제도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도현명=현재 국내 사회복지법인은 기업으로부터 일정 비율 이상의 기부를 받는 것이 제한되며, 투자 활동이 고유 목적 사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손실이 발생하면 감사나 법적 책임 문제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제약이 해소돼야 비영리 단체가 적극적으로 ‘공익 목적의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익법인의 투자 활동을 가장 크게 가로막는 규제는 일명 ‘5%룰’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이상(성실공익법인은 10%) 보유하면 초과분에 대해 상속·증여세가 부과된다. 1994년 도입된 이 조치는 기업 재단을 통한 그룹 지배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초과분에 최고 60%의 세금이 부과되면서 오히려 공익재단의 사회공헌 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임팩트 포 칠드런 펀드’ 출자를 위한 계획과 기대는.
도현명=지난해 말부터 투자 유치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만나 논의를 시작했다. 인사 발령 시즌이 지나면서 다시 기업 및 기관들과 협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해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위축됐지만,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취약한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정태영=‘임팩트 포 칠드런 펀드’는 기부와 투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개인과 기업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기업과 고액 기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환영한다. 이 펀드를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기업이 제공하는 아동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확장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세이브더칠드런과 임팩트스퀘어가 신뢰를 바탕으로 더 폭넓은 사업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진행 =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정리 =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