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허브] 긴급 위기 가정 1534가구 구한 ‘희망풍차 금고’… 복지 사각지대를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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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작년 한 해 27억 투입
소외계층 3176명 경제위기 벗어나
올해는 33억 규모 진행 중
수혜자 정서지원 돕기 위한 희망컨설턴트 교육도 운영

“두 달 전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희귀질환을 앓으며 홀로 사는 남성이었는데, 방 보증금을 낼 돈도 없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이틀 뒤 봉사원들과 함께 그분 집을 방문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도움을 드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죠.”

①희귀질환에 걸렸던 강정석씨는 긴급지원 희망풍차 금고의 지원을 받으며 주거환경 개선비 60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②최경숙(왼쪽) 적십자 봉사회 종로지구협의회 회장이 결연 가정을 방문해 수혜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③위기 가정 구성원이 긴급지원을 신청하면 적십자는 내부 심사를 거쳐 최대 1500만원의 지원금을 무상 지급한다. ④긴급지원을 받은 노숙인 출신의 이상태씨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대한적십자사 제공·문상호 기자
①희귀질환에 걸렸던 강정석씨는 긴급지원 희망풍차 금고의 지원을 받으며 주거환경 개선비 60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②최경숙(왼쪽) 적십자 봉사회 종로지구협의회 회장이 결연 가정을 방문해 수혜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③위기 가정 구성원이 긴급지원을 신청하면 적십자는 내부 심사를 거쳐 최대 1500만원의 지원금을 무상 지급한다. ④긴급지원을 받은 노숙인 출신의 이상태씨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대한적십자사 제공·문상호 기자

상가와 아파트가 빼곡한 서울 강남구 일원동 거리를 거닐며 이현숙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 서초·강남 희망나눔봉사센터장이 입을 열었다. 몇 분쯤 꾸준히 길을 걷자, 단독주택들 사이에서 6평 크기의 낡은 반지하 원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정석(45·가명)씨가 홀로 생활하는 곳이다. 피트니스 강사로 일하던 그는 작년 10월 다리에 힘이 없고 몸이 뻣뻣해지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소뇌가 퇴화하는 희귀질환 ‘소뇌위축증’이었다. 갑자기 닥친 불치병은 강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 걸을 수도 없었고, 수시로 말을 더듬거나 이야기하던 내용을 순간적으로 기억 못 하는 증상도 찾아왔다. 일자리를 잃자 우울증도 찾아왔다. “매일 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신체적 고통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아내와 아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반년 뒤인 지난 4월 이혼하고 자립하기로 결심했죠.”

홀로서기가 쉽지는 않았다. 월세 방 보증금 400만원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 구청에 장애등급과 긴급복지자금지원을 신청했지만, “적어도 몇 달은 기다려야 지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만 전해들었다. 방황하던 강씨의 손을 잡아준 것은 적십자의 ‘긴급지원 희망풍차 금고’였다. 5월 중순, 강씨의 사연이 접수되자 적십자 직원들은 곧바로 일원동을 방문한 뒤 회의를 열어 주거비 지원을 결정했다.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봉사원 2명은 강씨와 결연을 하였고 이후 매주 원룸을 찾고 있다.

강씨는 현재 적십자에서 마련해준 600만원으로 월세 보증금도 내고, 조립형 옷장 등 간단한 가정용품도 몇 개 구입했다. 강씨는 “마치 사막을 헤매다가 시원한 물을 받은 느낌”이라면서 “앞으로 하루하루 건강히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미소 지었다.

◇1534가구의 위기를 해소해준 ‘긴급지원 희망풍차 금고’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2월), 경기도 광주시 세 가족 자살 사건(3월)…. 올 초 대한민국은 지속된 경제난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이 목숨을 끊은 ‘생계형 사고’로 시끌시끌했다. 정부와 국회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지원 종합대책’을 확정하고 긴급지원 대상자의 소득 기준을 최저생계비의 250%로 완화하는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올해 책정된 긴급 복지예산 499억원이 5개월 만에 거의 다 소진될 정도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회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적십자는 실직, 가족해체, 질병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위기 가정을 발굴하고 신속한 비용 지원으로 문제를 해소하는 ‘긴급지원 희망풍차 금고’와 ‘희망풍차 콜센터’를 2013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박선영 적십자 사회봉사팀장은 “경제·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소외계층은 작은 문제만 발생해도 삶 전체가 크게 불안정해진다”며 “이들이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사회에 안전하게 복귀할 기회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위기 가정 구성원이 전국 14개 적십자 지사와 SNS, 헌혈의집 등을 통해 긴급지원을 신청하면 적십자는 내부 심사를 거쳐 기초생계비, 의료비, 교육비, 주거환경 개선비 등 최대 2000만원을 무상 지급한다. 부산의 신발공장에서 일하다 7년 전 일자리를 잃고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이상태(57)씨도 긴급 지원을 받아 지난달 임시로 거주할 방을 구하고 적십자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씨는 “자활 사업을 신청하려고 관공서를 방문해도 ‘노숙인 아저씨가 왜 여기에 왔느냐’는 공무원들의 반응을 접하기가 일쑤였는데, 적십자 봉사원들은 편견 없이 신청을 받아줘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총 27억2753만원을 투입한 결과, 1534가구 3176명의 소외계층이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정주 적십자 나눔기획팀장은 “작년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33억원 이상의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라면서 “지원금 지급은 최대한 빠르고, 수혜 기준은 최대한 포괄적으로 설정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상_그래픽_NPO_대한적십자사활동_2014

◇체계화된 교육 받으며 전문 봉사인력으로 성장하는 4만7000명 봉사원

한편 적십자는 긴급 자금 지원에서 더 나아가 수혜자의 사회·심리적 상황에 맞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희망 컨설턴트’ 교육도 열고 있다. 희망풍차 결연에 참가하는 봉사원들은 결연 프로그램의 가치, 응급처치, 가정보건 등의 프로그램을 수강한 후 희망 컨설턴트로 활동할 수 있다. 최경숙(58) 적십자 봉사회 종로지구협의회 회장은 올해 초 쌀과 김치를 배달하기 위해 한 가정을 방문했다가 수혜자가 “자살하고 싶다”고 외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노인 분들이 심리적으로 힘들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교육받은 내용이 떠올랐어요. 우선 어르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경청하면서 동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해 극단적 상황을 막을 수 있었죠.”

작년 한 해 9276명의 결연 봉사원이 교육을 수료했으며, 현재 4만7000여명의 봉사원이 희망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수혜자들의 심리·정신건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심리사회적 지지(Psychosocial Support)’ 교육과정도 도입됐다. 박선영 팀장은 “앞으로는 위기 가정 발굴부터 심리 상담이 가능한 봉사원도 따로 육성해 전문적인 정서 지원을 병행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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