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연맹을 방패막이 삼고, 소비자에 책임 전가… 그린워싱에도 유형이 있다

겉으로만 친환경 외치는 ‘그린워싱’
연맹·연합 뒤에 숨거나 데이터 일부 공개
친환경 경영 목표 선언하고도 거듭 수정

그린워싱. /셔터스톡

EU(유럽연합)이 기업들의 ‘가짜 친환경’ 행위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EU 전문매체 유락티브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근거 없는 친환경 제품에 대한 제재를 담은 새 법안 초안을 마련했고 조만간 공식화할 예정이다. EU 집행위는 제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그린워싱(green washing)과 같은 상업 관행에 대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린워싱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세탁을 뜻하는 ‘워싱(washing)’이 합쳐진 말로,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홍보하는 등 기업 이미지를 거짓으로 각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거나, 환경 관련 데이터를 거짓으로 조작한 경우 모두 그린워싱에 해당한다. 개념의 범주가 넓다 보니 기업의 친환경 논란은 대부분 그린워싱으로 일컬어진다. 최근 글로벌 싱크탱크 플래닛트래커(Planet Tracker)는 지난 11일 그린워싱 사례를 유형별로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기업들의 워싱 사례가 급증하고, 다양해지면서 그린워싱 유형을 명확하게 구분해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플래닛트래커 보고서에 언급된 그린워싱 6개 유형과 사례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린크라우딩(green crowding) = 그린크라우딩은 개별 기업이 연맹·연합 등 ‘군중(crowd)’ 속에 들어가 비친환경 활동을 숨기는 것을 뜻한다. 미국 플라스틱폐기물제거연합(AEPW)에는 엑손모빌, 셸과 같은 대형 석유기업과 베리, 실드에어 등 포장·용기 회사, 펩시코와 P&G를 포함한 소비재 회사 등이 가입돼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SKC가 있다. 문제는 AEWP 회원사 대부분이 미국화학협회(ACC) 소속이라는 점이다. ACC는 미국에서 플라스틱세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등 플라스틱 관련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단체다. AEPW의 목표도 비판을 받는다. AEPW는 2019년 출범 당시 5년간 플라스틱 1500만t을 줄이겠다고 선언했지만 2021년 기준 목표 달성량은 3만4000t(약 0.2%)에 불과하다.

그린라이팅(green lighting) = 그린라이팅은 회사가 브랜드 혹은 제품을 환경적인 측면에서 과대 홍보하는 워싱 유형이다. 일례로 지난 2021년 프랑스 에너지화학기업 토탈(Total)이 사명을 ‘토탈에너지스(Total Energies)’로 변경했을 때, 트위트에 사명 변경과 함께 ‘#MoreEnergiesLessEmissions’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토탈에너지가 사명 변경 전보다 에너지는 많이 생산하지만, 탄소 배출량은 줄인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제는 토탈에너지가 에너지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205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량을 늘린다는 점이다. 이에 유럽 소비자 불공정 위원회는 해당 해시태그가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사용 금지를 촉구했다.

그린시프팅(green shifting) = 그린시프팅은 기업이 환경 파괴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고 하는 속셈이다. 소비자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비친환경 제품을 많이 생산할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대는 것이다. 엑손모빌은 자사 발간 보고서에서 ‘화석연료’와 같은 단어를 ‘소비자’ ‘수요’ ‘에너지 효율성’ 등의 키워드와 함께 배치했다.

그린라벨링(green labelling) = 기업 홍보·마케터 담당자들은 제품과 브랜드를 설명할 때 ‘친환경’ ‘지속가능성’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기 부적합한 제품에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그린라벨링이라고 한다. 지난 2019년 생활용품기업 에스씨존슨(SC Johnson)은 100% 재활용 가능한 ‘해양 플라스틱(ocean plastic)’ 물병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양 플라스틱’이라는 표현을 ‘해양 바운드 플라스틱(ocean bound plastic)’으로 변경했다. 바다뿐 아니라 강이나 호수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폐기물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린린싱(green rinsing) = 그린린싱은 회사가 ESG 목표를 정기적으로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플래닛트래커에 따르면, 콜라를 만드는 펩시코는 지난 5년간 공병 재활용 목표를 세 번 변경했고, 코카콜라는 두 번 목표를 거듭 수정했다. 약속했던 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자 목표치를 계속 낮춘 것이다.

그린허싱(green hushing) = 그린허싱은 기업이 투자자, 조사기관 등 이해관계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감추는 행위를 의미한다. 플래닛트래커는 한 조사를 인용해 글로벌 기업 경영진 1200명 중 약 300명은 자사의 기후변화 대응 데이터 전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환경 관련 데이터를 친환경적으로 조작하는 것도 그린허싱에 해당한다. 지난 2015년 폭스바겐이 차량 배출가스 저감장치에 불법 소프트웨어(SW)를 설치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조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디젤 게이트’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폭스바겐은 배상금 147억달러(약 16조7000억원)를 물어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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