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투자 규모 37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하는 호주 북부 티모르해 바로사(Barossa) 가스전 시추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호주 연방법원이 시추 승인을 취소해달라는 티위(Tiwi) 제도 원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다. 피고인 호주 에너지 기업 산토스의 패소가 확정됨에 따라 시추 작업은 무기한 중단됐다. 현재 가스전 개발 공정률은 약 46~47%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사업에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각각 3억3000만달러(약 47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두 기관의 합산 투자액은 전체 투자 규모의 약 18% 수준이다.
19일 수은 관계자는 더나은미래와 한 통화에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시추 작업이 일부 중단됐으나, 개발 재개를 위한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사업이 완전히 어그러진 게 아니고, 가스전 개발의 필요성도 충분하다고 판단해 일단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철회 의사는 없느냐는 질문에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운 사안”이라며 답을 미뤘다.
바로사 가스전은 천연가스 약 7000만t이 매장된 대형 해상 가스전이다. 티위 제도에서 약 140㎞ 떨어져 있으며 송유관은 티위 제도 바로 옆을 지나도록 설계됐다. 지난 6월 티위 제도 주민들은 가스전이 해양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음에도 관련 기업이나 연방정부로부터 제대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며 시추 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산토스 측은 티위 제도 원주민으로 구성된 토지 위원회와 사업을 논의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합의에 이르는 데는 실패했다고 판단해 바로사 가스전 시추 작업에 대한 중단 명령을 내렸다. 산토스는 항소를 검토 중이다.
바로사 가스전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SK E&S와 일본 발전회사 제라(JERA)도 각각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지분율은 산토스 50%, SK E&S 37.5%, 제라 12.5%다. SK E&S 관계자는 “2012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해 매장량 평가, 설계 작업, 인허가 승인 등 사전 준비를 해왔다”고 말했다. SK E&S는 2025년 상반기 첫 가스 생산을 시작해 20년 동안 연간 130만t의 LNG를 국내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3월 SK E&S는 가스전 사업 보유 지분 37.5%에 해당하는 14억달러(약 2조40억원)를 사업비로 조달하겠다는 최종투자의사결정(FID)을 선언했다.
SK E&S 관계자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대규모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자본은 국내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을 필수적으로 한다. SK E&S는 기업 자체 보유 자본과 수은, 무보 등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을 통해 사업비를 확보했다. 수은과 무보는 이번 프로젝트에 각각 3억3000만달러, 도합 6억6000만달러(약 95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 투자를 승인했다. 이는 SK가 조달해야 하는 사업비의 47%가량을 차지한다.
SK E&S는 지난해 5월 CCS(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활용해 천연가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저탄소 LNG’를 생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생산·액화·수송·기화·소비 등 바로사 가스전 사업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1350만t에 달한다”며 “이 가운데 CCS 기술을 통해 포집할 수 있는 양은 210만t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바로사 가스전이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이자 국내외 환경 단체, 연구기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바로사 가스전에 CCS 기술을 도입하면 관련 기업들은 수익성, 실효성 논란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바로사 가스전의 온실가스 배출량 문제 등을 지적했다. 이에 이인호 무보 사장은 “국제 환경 권고와 호주 국내법을 모두 검토하고 나서 투자를 결정했다”면서 “현재 제기되는 우려를 감안해 투자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은 “수은과 무보는 투자 승인 과정만 거쳤고, 아직 자금을 실질적으로 지급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계약에 따른 위약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에도 투자 철회는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추세인데, 공적 금융기관이 가스전 개발에 거액을 지원하는 건 국제적 흐름을 거스르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