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10 캠페인’ 통해 문화 정착
유산 10% 기부, 상속세 10% 감면
기부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에선 유산 기부가 대표적인 기부 유형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관련 통계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국내 사정과 달리 매년 기부 현황을 집계하고 향후 모금 규모까지 예측한다.
유산 기부 전문 연구단체 ‘레거시 포어사이트(Legacy Foresight)’에 따르면, 영국의 유산 기부 규모는 1990년 기준 8억 파운드(약 1조2800억원)에서 2020년 30억 파운드(약 4조8200억원)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연간 평균 성장률은 4.5% 수준이다. 유산 기부 건수로 살펴보면, 같은 기간 7만5000건에서 약 50% 증가한 11만2000건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유산 기부 규모는 지난 30년간 두 배 정도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향후 10년 전망은 더 밝다. 레거시 포어사이트는 베이비붐 세대의 기부 동향과 자산 가격 변화 등을 분석해 2030년 한 해 동안 영국 자선단체에서 총 14만6000건의 유산 기부 서약을 통해 50억 파운드(약 8조400억원)를 모금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영국에서 유산 기부로 모금 활동을 벌이는 자선단체는 1만 곳이 넘는다. 영국 자선단체협의회인 ‘리멤버 채리티(Remember a Charity)’가 지난 2020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유산 기부가 전체 모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6%로 집계됐다. 자선단체 대표 1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약 65%가 유산 기부를 단체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자선단체의 30%는 한 해 재정의 약 30%를 유산 기부로 마련했다고 응답했고, 재정의 절반 이상을 유산 기부로 마련한 단체도 11%로 조사됐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영국암연구소(Cancer Research UK)는 20년 전부터 변호사 네트워크를 통해 유산 기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클레어 무어 영국암연구소 이사는 “유산 기부 모금액이 전체 재정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면서 “삶의 어느 시점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유산을 내놓는 기부자가 없었다면 연구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에 유산 기부 문화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건 유산 기부 캠페인 ‘레거시10(Legacy10)’ 영향이 크다. 레거시10은 영국인 10%의 유산 10% 기부를 목표로 2011년 11월에 시작됐다. 민간 자선단체의 구호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정·재계 인사들의 대거 참여와 정부 차원의 조세 감면 혜택도 유산기부 문화 정착에 한몫했다. 영국 정부는 유산 10%를 기부하면 상속세의 10%를 감면해 최대 상속세 비율을 기존 40%에서 36% 수준으로 낮추는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유산 기부를 독려하기 위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9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상속 재산의 10%를 초과해 기부하는 경우 상속세의 10%를 감면하는 내용이 담겼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유산 기부에 대한 인식이 낮고 세제 혜택도 없는 상황이라 해외처럼 기부문화 확산에 큰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의 유산 기부 비율은 0.5%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기부를 독려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이 뒤따른다면 점진적으로 유산 기부 규모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