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2년 전부터 사내 캠페인 ‘30·5·1’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30분은 재능있는 여성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5분은 여성 동료의 성과를 축하하고 ▲1분은 성과를 올린 여성에 대해 다른 동료와 이야기할 것을 권장하는 캠페인이다. 각 구성원이 일주일에 36분을 투자해 여성 동료의 발전과 성장을 지원, 궁극적으로 고위직 여성 수를 늘린다는 취지다. JP모건의 여성 직원 비율은 49%에 이르지만, 중간 관리자 이상 직급의 여성은 26%에 불과한 상황에서 나온 방책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일 발표한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국내 여성 관리자 비율은 22.3%에 그친다. 구성원 1000명 이상 민간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1.5%다. 공공기관, 지방공사·공단은 각각 7.1%, 0.5%에 불과하다.
여성 비율이 높은 비영리 업계는 어떨까. 더나은미래는 지난달 22일 주요 모금단체 20곳을 대상으로 여성 직원 수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이중 정보 공개에 응한 16곳의 현황을 분석했다. 4년 전 같은 조사에서 모금단체 17곳을 조사한 결과, 전체 직원 중 여성은 67%였고 중간 관리자는 46%, 상급 관리자는 39% 수준이었다. 이번 두 번째 조사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소폭 증가했지만, 직급이 높을수록 여성 비율이 감소하는 경향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단체를 이끄는 대표자 중에 여성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여초’ 비영리단체, 여성 관리자 비율은?
16개 단체의 여성 직원 비율은 69.3%다. 국내 주요 기업에 비해 약 3배나 높은 수치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50개 주요 기업의 여성 직원 비율은 24%다. 여성 비율이 높은 편으로 꼽히는 유통상사, 금융권, 식품 업종의 비율도 각각 53.9%, 49.2%, 43.5%로 비영리단체보다 적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가면서 비율은 역전된다. 관리자급에서는 여성이 줄어든다. 일반 직원 중 여성 비율은 73.2%지만 중간 관리자에서는 59.2%, 상급 관리자에서는 47.9%로 감소한다. 중간 관리자는 팀장급, 상급 관리자는 부서장·본부장·사무국장이 해당한다.
단체별로는 국경없는의사회(100%), 아름다운재단(75%), 세이브더칠드런(69.7%), 옥스팜(62.5%) 순으로 여성 관리자 비율이 높았다(중간·상급 관리자를 합친 비율). 국경없는의사회는 중간·상급 관리자 9명이 모두 여성이었다. 아름다운재단도 중간·상급 각각 75%가 여성으로 구성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중간 관리자는 65.2%, 상급 관리자는 82.6%로 상급에서 오히려 여성 비율이 높았다. 옥스팜코리아도 마찬가지로 각각 57.1%, 100%가 여성이었다.
한국해비타트(27.3%), 희망친구 기아대책(35.9%), 한국컴패션(38.9%), 월드비전(41.7%)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한국해비타트의 경우 전체 직원 중 40%가 여성이다. 여성 중간 관리자는 33.3%지만 상급 관리자에는 여성이 없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여성 중간관리자 비율이 42.9%였으나 여성 상급 관리자는 27.8%로 뚝 떨어졌다. 한국컴패션은 여성 중간 관리자와 상급 관리자 비율이 각각 38.5%, 40%였다. 월드비전은 일반 직원은 75.2%가 여성이지만 여성 중간 관리자 비율은 44.4%, 상급 관리자는 35.3%로 줄었다.
여성 대표자, 16곳 중 1곳에 불과
비영리단체의 ‘유리천장’은 최상위 직급 바로 아래서 가장 단단하다. 이사장, 회장, 대표 등 단체의 리더는 대부분이 남성이다. 조사단체 16곳 중 15곳이 남성 리더였고, 여성 대표가 이끄는 단체는 옥스팜코리아 단 1곳뿐이었다.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영리 분야는 업무 강도가 높은데 처우는 영리 부문보다 열악하다”며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워 근속 연수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이 여성 리더의 부재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영리 업계에서도 최고위 직급의 성별 다양성 확충을 위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용희 한국비영리학회장은 “북유럽 등 복지 선진국 NGO에는 여성 직원이 많은 만큼 여성 대표도 많다”며 “비영리단체에 여성 지도자가 많아지려면 여성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상위 직책으로 올라갈 수 있는 조직 구조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봉주 교수는 “여성이 상급 관리직에서 나아가 이사, 대표 등 최고위직에서도 활약할 수 있도록 여성 이사 할당제 등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상급 관리자급부터 여성 비율을 확충하려는 움직임은 확인됐다. 굿피플인터내셔널은 중간 관리자 8명 중 4명(50%), 상급 관리자 5명 중 2명(40%)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더나은미래 조사에서 상급 관리자 모두 남성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임하영 굿피플 인사기획팀장은 “관리자급 경력직을 뽑을 때 면접관들이 성별 다양성 보장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낮은 연차부터 조직에서 실무를 하면서 차근차근 전문성을 쌓은 사람이 관리자가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면서 “현재 일반 직원 10명 중 6명은 여성인 만큼, 앞으로 여성 관리직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조사에 참여한 단체는 ▲국경없는의사회(총 인원 28명) ▲굿네이버스(929명) ▲굿피플인터내셔널(66명) ▲희망친구 기아대책(167명) ▲밀알복지재단(149명) ▲바보의나눔(25명) ▲사회복지공동모금회(330명)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503명) ▲아름다운가게(327명) ▲아름다운재단(71명) ▲옥스팜코리아(23명) ▲월드비전(586명) ▲유니세프한국위원회(77명) ▲초록우산어린이재단(914명) ▲한국컴패션(112명) ▲한국해비타트(65명) 등 16곳이다. ▲대한적십자사 ▲아이들과미래재단 ▲홀트아동복지회 ▲희망을나누는사람들 등 4곳은 미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