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수)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이 자립할 때까지 동행합니다”

[인터뷰]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

‘러빙핸즈’는 한 명의 성인 멘토가 한 명의 아동·청소년 멘티를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멘토링하는 국내 최장기 멘토링 단체다. 18시간의 멘토 양성 교육 과정을 이수한 멘토들은 거주지역 주변에 있는 한부모 혹은 조손 가정의 아동·청소년을 지원한다. 멘토링은 멘티가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지속한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초록리본도서관’에서 박현홍(54) 대표를 만났다. 러빙핸즈가 운영하는 초록리본도서관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다. 박 대표는 “정서적인 지지가 결여된 한부모·조손 가정 아이들에게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돼주는 것, 그것이 러빙핸즈가 멘토링 과정을 진행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초록리본도서관에서 만난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는 “정서적 결핍을 느끼는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에게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돼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박찬우 청년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초록리본도서관에서 만난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는 “정서적 결핍을 느끼는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에게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돼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박찬우 청년기자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의 정서적 공백을 채운다

-도서관이 안락하고 예쁘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도서관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초록리본도서관은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잘 놀고, 잘 먹고, 잘 읽을 수 있는 쉼터다. 러빙핸즈 멘토와 멘티들이 원활한 멘토링을 진행하기 위해선 안정적이고 자율적인 공간이 필요해 도서관을 만들게 됐다. 물론 이용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외부에는 멘토링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는지?

“외부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공간이 있으면 더 효과적으로 멘토링을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러빙핸즈 멘티라고 하면 한부모, 조손 가정이라고 낙인 찍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러빙핸즈 멘티’ 대신 ‘초록리본도서관 회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기도 했다.”

-러빙핸즈 운영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지?

“아직 우리나라 복지 서비스는 공급자(후원자) 중심의 서비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장학금, 지원금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후원자 중심의 복지 서비스에 아쉬움을 느끼고,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즉 친밀감과 유대감의 형성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인 멘토와 아동 청소년 멘티의 장기적인 1:1 멘토링 과정을 시작하게 됐다.”

-지원 대상을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으로 한 이유가 있는지?

“한부모, 조손 가정 아동·청소년들은 가정으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게 됐다. 성장기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정서적 안정, 유대감을 멘토로부터 얻으며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게 목표다.”

-멘토와 멘티를 선정하는 기준이나 방식은?

“멘티를 선정할 때는 우선 관공서나 동사무소에 등록된 가족 형태가 중요하다. 주민등록상 한부모, 조손 가정이어야 한다. 멘토의 경우 러빙핸즈에서 실시하는 멘토 양성 과정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이 끝나면 멘토가 거주하는 지역 근처에 사는 아동·청소년을 멘토와 매칭한다. 멘토와 멘티의 거주지역이 가까워야 활동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류만 보고 지원 아동을 선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최근 개인정보 보호가 이전보다 강화되면서 멘티 선정이 매우 어려워졌다. 주변 관공서에 공문을 보내고 협조 요청을 해봐도 개인정보 관련 내용이라 협조받기가 어렵다. 힘들게 추천을 받아 멘티 선정을 했는데, 막상 아이들이 멘토링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 받았던 상담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불 안에 꽁꽁 숨어 있던 아이를 세상 밖으로

-구체적인 멘토링 내용이 궁금한데?

“가장 기본적인 멘토링은 같이 밥을 먹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러빙핸즈 밥토링’이라고 부른다(웃음). 성인 멘토와 아동·청소년 멘티가 매칭되면 처음에는 같이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기본적인 친밀감과 유대감이 어느 정도 쌓이면 멘토와 멘티가 함께 의논해 하고 싶은 활동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멘토와 멘티가 모두 운동을 좋아한다면 같이 배드민턴을 하거나 농구를 할 수 있다. 러빙핸즈는 멘토링 활동에 따로 제한을 두지 않는다. 멘토와 멘티가 서로 원하는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우리 멘토링의 핵심이다.”

-커리큘럼은 따로 없다는 건가?

“러빙핸즈는 유연한 멘토링을 지향하기 때문에 틀에 박힌 커리큘럼이나 미리 정해진 교육과정이 별도로 없다. 하지만 이는 멘토한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유 공간을 만들어 멘토들이 서로 활동 일지를 공유하고,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아동·청소년들의 얘기를 듣고, 서로 케이스를 공유하면서 멘토들은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러빙핸즈 멘토링을 통해 변한 아동이 있다면?

“4년 전부터 멘토링을 진행한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멘토링을 시작하기 전 이 아이는 집 밖은커녕 방 안 침대에서 이불을 돌돌 만 채 얼굴만 내밀고 생활했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멘토링을 진행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멘토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아이의 집까지 찾아가서 직접 사온 간식거리들을 수차례 전달했다. 그러자 아이도 마음이 조금은 열렸는지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현재 아이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데, 이제는 먼저 멘토에게 하고 싶은 활동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지속적인 관계가 이 아이를 변화시킨 것이다.”

-러빙핸즈를 운영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은?

“아동·청소년 멘티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멘토링 과정을 이어 나가 성인이 되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 정말 뿌듯하다. 지금까지 멘토링 과정에 참여한 500여명의 아동 중 모든 과정을 수료한 아동은 약 240명이다. 거의 절반 가까이 되는 수준인데, 이 아이들이 우리의 멘토링 과정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평생 갈 수 있는 친구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다. 우리의 취지와 미션에 공감하고 힘을 보태 주는 후원자들에게도 감사하다.”

박찬우 청년기자(청세담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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