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수)

“‘취업난’ 르완다 청년들, 3년 만에 사장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엄소희 키자미테이블 대표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레스토랑 ‘키자미테이블’은 올해부터 현지 청년들의 손으로 운영된다. 엄소희(39) 키자미테이블 대표가 르완다 청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2018년 9월 매장을 연 지 3년 만이다. 엄 대표가 고용했던 직원 8명은 지난해 12월 현지에 독립 법인을 설립하고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받았다.

엄 대표는 르완다 매장을 ‘청년 독립매장 1호’라고 표현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매장의 존폐를 고민해왔는데, 직원들이 본래 목표였던 독립 운영에 나서면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했다.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된 건 아니다. 최근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으로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현지 직원들은 다시 매장 문을 열었다.

3개월간 르완다 법인 설립을 돕고 한국으로 돌아온 엄소희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는 “악조건 속에서도 굳이 독립의 길을 결정한 건 직원들의 강한 의지 덕분”이라며 “귀국 후에도 직원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안부를 나누는데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우리는 느리지만 매일 성장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엄소희 대표는 르완다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돕는 레스토랑 '키자미테이블'을 운영한 지 3년 만에 경영권을 현지 청년들에게 이양했다. '키자미(kijamii)'는 아프리카 남동부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사회적인(social)'이라는 뜻이다. /키자미테이블 제공
엄소희 대표는 르완다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돕는 레스토랑 ‘키자미테이블’을 운영한 지 3년 만에 경영권을 현지 청년들에게 이양했다. ‘키자미(kijamii)’는 아프리카 남동부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사회적인(social)’이라는 뜻이다. /키자미테이블 제공

“표면적인 비즈니스 구조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키자미테이블의 업무 중 절반은 직업 훈련에 집중돼 있어요. 직무 역량을 높이기 위한 훈련은 단순히 기술뿐 아니라 진로 이해, 분야 이해, 업무 이해 등을 포함해요. 사업보고서에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지만요.”

엄소희 대표의 르완다 청년 자립 프로젝트는 10년 전 해외봉사 시절 만난 또래 청년들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르완다 청년들의 관심사는 취업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청년 실업이 문제지만 그래도 채용 시장이 돌아가고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그런데 르완다의 경우 돌파구가 없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현지 청년들에게 직무 교육을 지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교육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일자리 부족으로 아예 기회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소규모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꿨다”면서 “이때 같은 고민을 하던 공동 창업자 유현정 셰프를 만나 현지식으로 비즈니스와 직업훈련을 동시에 하는 르완다 매장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한국인이 베이커리 매장을 운영하던 목이 좋은 곳에 매장을 냈다. 임차료가 월 2000달러(약 240만원)에 이를 정도로 현지 물가 대비 높았지만 직원을 17명이나 고용할 정도로 매출이 뒷받침됐다. 월급은 경력에 따라 180~200달러를 지급했다. 현지 풀타임 교사의 월급이 100~150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꽤 높은 편이다.

르완다의 외식업 시장은 유럽풍의 고급 레스토랑과 열악한 환경의 현지식 식당으로 양극화돼 있다. 이 때문에 중간 지대를 개척한 키자미테이블은 정치인과 외국 대사를 비롯해 연예인들이 인증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매장 시작할 때부터 키자미테이블의 목표를 분명히 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돈 벌려고 만든 게 아니라 매장을 잘 성장시켜서 현지 직원들에게 사업권을 넘기고 제2, 제3의 키자미테이블을 만들고 싶다고요. 그렇게 구성원들이 ‘원팀’으로 똘똘 뭉쳤어요.”

개장 첫해에 월매출 60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여윳돈이 생기면 고용을 늘려 갔다. 엄 대표가 이처럼 고용에 목맨 이유는 르완다의 심각한 청년 실업 때문이다. 그는 “매장을 처음 열 때 리모델링 공사를 2개월 정도 했는데 대학생들이 이력서를 들고 찾아왔다”면서 “채용 공고도 내지 않았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150명 넘는 이력서가 쌓였다”고 했다. 르완다에서도 한국처럼 온라인 채용 사이트를 통해 구인·구직이 이뤄진다. 그런데 채용 시장이 워낙 경직돼 있다 보니 구직자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일자리를 구하는 실정이다.

지난 2018년 르완다 매장에서 근무한 직원들과 엄소희(첫째 줄 맨 왼쪽) 대표. /키자미테이블 제공
지난 2018년 르완다 매장에서 근무한 직원들과 엄소희(첫째 줄 맨 왼쪽) 대표. /키자미테이블 제공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르완다 정부는 이동을 제한하는 록다운 조치를 걸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저녁에는 아예 통행금지를 시키는 바람에 매출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엄 대표는 “청년 고용이라는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고 없이 급여를 70% 수준으로 줄이면서 빠듯하게 운영했다”면서 “크게 성공해서 두둑이 자산을 물려주면 좋았겠지만 부채를 남기지 않고 키자미테이블이라는 평판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신규 매출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식품 가공 제품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달 20일에는 르완다 수제 과일잼을 한국에 정식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엄 대표는 “르완다 당국에 제품을 등록하고 식약청 승인에만 3개월, 이후 한국에서 정밀 검역과 통관 절차를 거쳐 유통을 시작했다”면서 “수익금 일부는 르완다 직업훈련학교의 실습 운영 지원비로 쓰인다”고 했다.

그는 귀국 후에도 현지 청년들의 자립을 위한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다. “잠재력을 가시적인 능력으로 내보일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모색하는 것, 그 방향 안에서 추가적인 ‘청년 독립매장’을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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