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목)

수해로 터전 잃은지 한 달,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지…

[Cover Story] 구례 어느 농장주의 이야기

일러스트=나소연

나는 김정현입니다.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고 전남 구례 양정마을에서 소를 키우고 있어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60두나 되는 소를 키우고 있었어요. 양정마을에서 소를 가장 많이 키우는 농가가 우리 집이었습니다. 그날, 끔찍한 물난리가 나기 전까지는요.

지난달 8일 새벽, 아버지와 나는 폭우로 불어나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근심에 잠겨 있었어요. 생전 처음 겪는 사나운 비에 우리 농장 근처에 있는 둑이 넘치기 직전이었어요. 섬진강댐과 주암댐을 방류한다는 안내문자가 왔고, 잠시 후 둑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아버지와 함께 농장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물이 무릎까지 들어와 있었어요. 소를 대피시키려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물은 허리까지 차올랐어요. 이러다 사람이 죽겠다 싶어 도망치듯 농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이미 축사 지붕이 물에 잠겨 있었어요. 우리 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키우던 소 100두가 죽거나 유실됐어요. 어떤 놈은 지붕에 올라가 죽어 있었고, 어떤 놈은 축사 기둥 사이에 머리가 끼인 채 매달려 죽어 있었어요. 슬펐느냐고요?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요. 여기저기 엉겨 있는 사체들을 확인하고 처리했던 닷새간의 기억. 그게 또렷하지가 않아요. 억지로 정신을 차린 건 살아남은 소 때문이에요. 임신한 소가 있었는데 물난리 겪고 바로 조산을 했어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가망이 없어 보였죠.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허약해요. 다른 소들도 상태가 안 좋아요. 물에 빠졌다가 폐렴을 얻은 소도 있고, 외상이 심한 소도 있어요. 마을에서는 지금도 하루 두세 마리씩 소가 죽어나가고 있어요.

양정마을은 구례에서도 홍수 피해가 가장 크고 복구는 가장 더딘 지역이에요. 마을 전체가 완전히 잠겨버렸으니까요. 어르신들은 대부분 축사 옆에 집을 짓고 사시는데 이번 수해로 축사뿐 아니라 집도 잃었어요. 지붕까지 흙탕물이 찼던 집안을 정리하고, 도배와 장판, 창문과 문짝까지 새로 해야 하는데 아직 멀었어요. 집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어르신도 있어요. 남아있는 소를 돌보려면 축사 근처를 떠날 수가 없어요.

양정마을에서는 축산농가 44가구가 1500두 넘는 소를 키우고 있었어요. 이 중 520여 두가 죽었어요. 우리 농장 피해액은 9억원 정도예요. 큰 소 한 마리가 보통 600만~700만원인데 100두를 잃었으니 소 피해 금액만 최소 6억원이에요. 축사가 붕괴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소한테 먹이는 풀이 있는데 얼마 전에 1억원어치를 사서 쌓아뒀어요. 그것도 다 떠내려갔어요. 포클레인, 스키로더 같은 중장비는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죠. 다른 분들도 사정은 비슷해요. 은행 대출까지 있는 경우도 많아요. 사료나 장비를 사다 보면 빚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대출받아 들여놓은 물건들은 모조리 물에 떠내려갔는데, 빚은 그대로 남아있어요. 어르신들은 ‘죽을 때까지 일해도 이 빚 다 못 갚고 갈 것 같다’고 하세요.

이번 수해는 자연재난이기도 하지만 인재(人災)예요. 한국수자원공사는 집중호우 예보가 있었는데도 댐 수위 조절을 안 하고 있다가 수위가 갑자기 올라가니까 한꺼번에 많은 양을 방류해 우리 마을을 물에 잠기게 만들었어요. 수자원공사는 인재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보상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요.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규정에 따라 농가가 받는 보상금은 큰 소 한 마리당 80만원씩이에요. 가구당 받을 수 있는 보상 한도도 정해져 있어요. 소 잃은 것과 축사 무너진 것, 다 합쳐서 한도가 5000만원이에요. 피해액이 수억이든 수십억이든 농가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최대 5000만원이라고 해요.

수해 한 달, 우리는 조금씩 삶을 복구해나가고 있어요. 구례 주민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입은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돕고 있어요. 장사를 하다가도 틈만 나면 남의 집에 가서 닦아주고 쓸어주며 무너진 터전을 일으켜 세우고 있어요. 주민 대표들은 이재민 가정을 집집이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어요. 구례에 들이닥친 이례적인 자연재난, 허술한 재난 대응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 그리고 그걸 극복해가는 우리의 이야기는 기록으로 남겨지게 될 거예요.

정리=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구례 수해 이재민 김정현씨와의 인터뷰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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