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대유행 사태는 최근 아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질병은 국경을 넘어 무차별적으로 퍼졌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평등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남긴 경제적 타격과 사회적 소외는 특히 사회 취약계층에 큰 고통을 주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며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심각한 빈부 격차와 노인 빈곤 문제를 겪고 있다.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비영리단체 등 이른바 ‘소셜섹터’로 불리는 이들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장하며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왔다.
국제 사회도 한국 소셜섹터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7월 홍콩에 있는 아시아 지역 공익 활동 연구 단체인 ‘아시아필란트로피소사이어티센터(Centre for Asian Philanthropy and Society·이하 CAPS)’가 발표한 ‘공익활동환경평가지수(Doing Good Index)’에서 한국은 홍콩, 일본과 함께 2순위 그룹인 ‘비교적 잘하는 편’(Doing Better)에 속한 것으로 평가됐다. 공익활동평가지수는 아시아 18개국의 공익 활동 환경을 ‘잘하고 있음(Doing Well)’부터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Not Doing Enough)’의 네 단계로 구분하는 지수로, 지난 2018년부터 발표하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 한국은 ‘잘하고 있음’으로 평가된 싱가포르나 대만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는 코로나19 위기에 맞서 국제 사회에서 비교적 신속하고 현명한 대응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한국의 공익 활동 환경을 점검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에 사회 문제의 최전선에서 공익 활동을 이어가는 소셜섹터의 발전을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언한다.
첫째, ▲규제 ▲세금제도 ▲조달정책 등 소셜섹터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분야는 규제다. 이번 공익활동평가지수에서 발표한 아시아 지역 비영리단체, 소셜벤처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한 개의 공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최대 43개의 지자체와 정부 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과 일본이 평균 세 곳 정도의 정부 기관을 상대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국내 기관의 77%는 “기부·사회공헌 등 소셜섹터와 관련된 법률이 까다로워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법률은 특히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 큰 영향을 준다. 심각하면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조직의 명운을 가르는 ‘딜 킬러(Deal-killer)’가 될 수 있다. 관련 법률과 관련 행정 절차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간소화하거나 이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기업들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셜섹터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 ‘현금 지원’을 늘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공익활동평가지수 설문에 따르면, 국내 소셜섹터 조직 55%가 영리 기업으로부터 현금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는 전체 예산의 16%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현금 지원 이외에도 기업이 소셜섹터를 지원할 방법은 많다. 대표적인 게 기업이 가진 기술이나 인재를 공유해 소셜섹터 기관의 질적 성장을 돕는 일이다. ▲재무 ▲회계 ▲IT ▲임팩트 측정 ▲마케팅 등 분야가 대표적이다. 영리 기업이 보유한 인재들이 소셜섹터를 돕도록 독려한다면 그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한국 비영리단체가 기업 출신 자원봉사자와 협업한 경험은 3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시아 평균인 51%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영리 출신 전문가들의 비영리 이사회 참여율도 낮다. 비영리 이사회 10인 중 평균 2명이 영리 기업 활동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소셜섹터 종사자들이 스스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더욱 투명해져야 하며 더 높은 잣대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또 자신이 하는 일을 대중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임팩트 측정과 스토리텔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소셜섹터 조직 간 연대와 협력도 중요하다.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주도 아래 90여개의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임팩트투자사 등 임팩트 지향 조직들이 함께 설립한 협의체 ‘임팩트얼라이언스’ 가 대표적 사례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나타나기에, 정부나 기업 등 특정 분야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소셜섹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주면 소셜섹터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경계를 넘어선 ‘슬기로운 협력’을 기대한다.
정경선 루트임팩트 최고상상책임자 겸 HGI 의장 l 루스 샤피로 아시아필란트로피소사이어티센터(CAPS) 대표
*CAPS가 발표한 공익활동평가지수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