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약 15개의 시민단체가 결성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모든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등록이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출생신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신고’라는 이름의 캠페인이었다. 활동가들은 열띤 토론 끝에 캠페인 이름을 정한 후, 가장 적절한 이름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출생등록은 다른 모든 권리를 누리기 위한 첫 단추다. 출생등록이 되지 않으면 법률상의 신분 증명이 어려워진다.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에서도 누락돼 학교에 보내지 않더라도 확인하기 어렵다. 출생등록이 되지 않으면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의료 혜택에서도 배제된다.
현재 우리나라 가족관계등록법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 일임하고 있다. 또 부모가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감독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출생등록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혼인 중 출생한 자녀는 법률상 남편의 자녀로 추정되기 때문에 실제 부(父)를 기재해 출생신고 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혼부의 출생신고도 모(母)의 개인 정보 일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쉽지 않다. 한국 국적이 없는 아동은 출생신고 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다. 가족관계등록법상의 출생신고는 원칙적으로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인에 대해서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다수의 국제 인권 조약 기구가 우리 정부에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아동에게는 ‘출생등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한국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이 지체 없이 출생등록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큰 변화는 없었다. 미혼부도 출생신고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이법’이 만들어졌지만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 중 한 가지라도 알고 있다면 신고가 거부되기 일쑤였다. 출생신고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경우에는 검사 또는 지자체장이 출생신고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구제 사례는 거의 없다.
최근 대법원 결정은 미혼부의 출생신고 범위를 확대 해석하면서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법원은 “출생신고가 거부되거나 지나치게 지체되는 것은 아동에게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출생등록될 권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다. 국적국에 대한 출생신고가 지나치게 지연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누락 없는 보편적 출생등록을 위해서는 출생국에서의 출생등록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국에서도 본국의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이 본국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사례, 체류 자격이 없어 대사관에서 출생등록을 거부하는 사례들이 꾸준히 목격된다. 대법원이 설명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은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이 누려야 할 권리임을 알아야 한다.
[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더나은미래 ‘모두의 칼럼’은 장애·환경·아동·노동 등 공익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