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독립될 때까지…’제2고향’ 한국서 이웃 도우며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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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利주민] 데이비드 킹 비아프라 공동체 한국지부 대표

지난 7일 경기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만난 데이비드 킹씨는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 NGO 단체와의 관계도 바뀌었다”며 “예전엔 우리가 일방적으로 생계 지원이나 한국어 교육 등 도움을 받았지만, 요즘엔 우리가 기획한 봉사활동의 적임자를 단체가 찾아주는 식이 됐다”고 자랑했다. 데이비드가 대표로 있는 IPOB 한국지부는 NGO 단체 글로벌호프·동두천 엑소더스 등과 함께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동두천=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나이지리아에 있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한국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으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데이비드 킹(49)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이다. 국제법상 나이지리아인이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을 나이지리아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소수민족 ‘이보족’으로 태어난 그의 조국은 ‘비아프라’다. 스스로를 비아프라의 독립을 위해 항쟁하는 ‘독립군’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비아프라가 지켜야 할 조국이라면 한국은 ‘그와 가족을 지켜주는 삶의 터전’이다. 비아프라인 아내, 21개월 된 아들과 함께 사는 집에는 커다란 비아프라 국기와 같은 크기의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코로나 19로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이 힘든 상황에 놓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데이비드를 포함한 동두천 지역 비아프라인 10여 명이 봉사활동에 나선 것도 한국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이들은 지난 4월 7일 마스크와 손 소독제 기부를 시작으로 헌혈, 독거노인 집 청소, 식사 제공 등 취약계층을 위한 봉사 활동 등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7일 경기 동두천시 보산동 자택에서 만난 데이비드는 “한국에 사는 이상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돕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웃었다.

“형, 절대 고향에 오지 마” 동생이 남긴 유언

그가 한국에 온 건 지난 2003년. 올해로 한국 생활만 18년째다. “처음엔 한국에 정착할 생각이 아니었어요. 돈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죠. 비아프라인들은 나이지리아에서 경제활동이 막혀 있거든요. 한국에서 지내면서 비아프라 사람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지 않는다, 비아프라 출신 정치인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등의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어요. 돌아가기 어렵겠구나 생각했죠.” 현재 그는 난민 지위 인정 소송 중이다. 2심 고등법원에서 난민 인정 판결이 내려졌지만, 법무부가 불복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데이비드의 가족도 박해를 피해가진 못했다. 지난 2014년, 9살 아래 남동생이 비아프라 공동체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나이지리아 정부 관리에게 끌려갔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날 새벽,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동생 눈을 가리고 개처럼 끌고 갔다고 해요. 모진 고문을 받은 동생은 살아남기 위해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고 집으로 돌려보내졌지만, 며칠 못 가 결국 죽었어요. 의사는 독가스가 체내에 주입됐다고 했죠. 동생이 죽기 전 잠시 통화했는데, 그때 동생이 ‘형, 절대 돌아오지 마. 바로 살해당할 거야’라고 했어요.” 이 일로 충격받은 데이비드의 어머니는 얼마 못 가 사망했고, 아버지는 실명했다.

이때부터 데이비드는 본격적으로 비아프라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2014년 비아프라 공동체 결사 단체인 ‘IPOB(Indigenous People of Biafra)’ 출범 당시 한국 대표 자리에 올랐다. 현재 경기를 비롯해 서울·광주 등 전국에 IPOB 회원이 100여 명 있다. 이들의 첫째 원칙은 ‘좋은 시민이 될 것’이다.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우리가 만약 지금 사는 나라에서 거부당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고마운 마음과, 쫓겨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IPOB는 ‘문제를 일으켜선 안 된다’고 강조해요. 국가 지부 아래 있는 각 지역 지부가 매월 회의를 하는데, 주 안건은 회원의 안전 확인과 불법 행위 여부 점검이에요. 의심 사례가 있으면 우리 스스로 경찰에 신고합니다. ‘비아프라 공동체는 범죄 제로 구역이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기 때문이죠.”

한국은 고마운 나라…좋은 시민 될 것

가족의 죽음이나 비아프라의 독립 이야기를 할 때 데이비드는 가슴에 무언가 치받히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국 생활 이야기를 꺼내자 금세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고향은 그립지만 한국 생활도 참 좋다”고 했다. “인삼주도 만들 줄 알고, 한국 드라마도 보고요. 생활이 힘들진 않은지 살펴주는 사람도 많아서 ‘잘살자’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한국은 참 좋은 나라예요.”

지난 5월 10일엔 어버이날을 맞아 동네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르신들이 외로워한다는 얘길 듣고 비아프라 사람들에게 연락했어요. 조금씩 돈을 걷어 삼계탕 300인분을 산 뒤 어르신들 집을 방문했어요. 혼자 사는 할아버지 한 분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씀하셨어요. 저희 사정을 듣고는 ‘당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겠다’며 축복의 말씀도 해주셨죠. 정말 크게 위로가 됐어요. 무슨 말씀 하시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요(웃음).”

2년째 난민 인정 소송 중인 데이비드는 현재 직업이 없다. 그는 “돈은 없지만 청소도 할 수 있고 헌혈도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독립된 조국 비아프라를 만들 겁니다. 그날이 오기 전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겠죠. 그때까지 제 삶의 터전이 될 ‘제2의 고향’ 한국에서 힘닿는 데까지 이웃을 도우며 살겠습니다.”

[동두천=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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