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4일
‘개인 희생’에만 기댄 시민운동 변화 필요 “활동가가 즐거워야 세상 바꿀 수 있죠”
‘개인 희생’에만 기댄 시민운동 변화 필요 “활동가가 즐거워야 세상 바꿀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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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활동가 눈으로 본 시민운동

시민사회 내부에서 청년 활동가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전국 활동가 26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활동가의 평균 나이와 경력은 각각 43.4세와 10.5년이고, 20대 활동가는 7.4%에 불과했다. 청년도 할 말은 있다. 지난 2016년 11월부터 운영된 페이스북 페이지 ‘시민사회 대나무숲’이 대표적이다. 20~30대 저연차로 추정되는 활동가들이 과중한 업무, 불합리한 의사결정 과정 등 다양한 어려움을 이곳에서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조직 내부 소통의 어려움’을 꼽는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여성·환경·기본소득 분야에서 활동하는 20~30대 공익 활동가 3명과 청년의 눈으로 본 시민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3일 서울시 불광동 서울청년허브에서 진행된 좌담에는 유지연(29) 그린피스 시민참여 캠페이너,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으로 활동한 조혜민(30) 정의당 대변인,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운영위원인 백희원(32) 서울시 청년허브 연구협력실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활동 경력은 각각 3년(유지연), 5년(조혜민), 9년(백희원). 활동 분야와 소속 조직은 다르지만 ‘시민운동가’라는 공통점 하나로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유지연 그린피스 시민참여 캠페이너, 백희원 서울시 청년허브 연구협력실장,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前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 지난 3일 좌담회에 참석한 이들은 “2030세대와 그 이하 세대들은 시민운동에도 대의나 조직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느슨한 연대와 수평적인 협력, 개인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활동가 희생에 기댄 시민운동은 ‘지속 불가능’

―어떤 계기로 시민운동을 하게 됐나.

조혜민(조)=내가 행복하고 싶어서다. 내겐 여성이란 정체성이 가장 중요해서 여성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성 단체를 선택했다.

백희원(백)=마찬가지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환경·주거·빈곤·성차별 등 다양한 문제가 있는 사회에서 행복해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꿔보자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유지연(유)=난 두 분에 비해 계산적인 선택을 했다(웃음). 공익 분야 일은 하고 싶은데,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긴 싫어서 국제 환경단체를 선택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공익 활동을 선택했다는 얘긴가?

조=’이기적인 이타심’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활동가에게 희생만 강조해선 안 된다. 장기적인 운동의 성과 측면에서도 활동가의 행복은 중요하다. 사회를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불행하면 어떤 시민이 그 운동에 설득되겠나.

백=백 퍼센트 동의한다. 예전엔 ‘민주화’처럼 전 사회를 휩쓴 하나의 의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제가 없는 시대다. 요즘 청년층은 사회문제 해결엔 나서더라도 환경·성차별·교육 등 개인이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한 후 성향이 맞는 사람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흐름이 강하다.

유=일반 시민도 마찬가지다. 과거 시민운동은 집회나 정책 제안 등 딱딱한 일이 주였지만, 지금은 마라톤이나 축제 등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에 더 많이 호응한다. 즐겁게 세상을 바꾸자는 게 ‘대세’가 됐다고 느낀다.

―희생과 사명감, 공동체를 중시하는 선배 세대와는 마찰이 있을 같은데.

백=많다(웃음). 예를 들어 디자인 작업이 필요해지면 청년들은 “예산 얼마 있을까요” 하는데 선배들은 “부탁할 사람 없느냐”고 한다. 무료 봉사를 거부하면 “연대할 줄 모른다”고 비난한다. 그걸 보며 청년 활동가들끼리 “연대의 다른 말은 ‘온몸에 힘주고 배신감 참기’라고 한다(웃음). 연대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는 뜻인데, 그건 연대가 아니다. 느리게 가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게 우리 식 연대다.

조=그동안 많은 동료가 시민사회를 떠나는 걸 봤다. 모두 똑같이 “이 일을 하면 급여가 낮고, 일도 많은 건 각오했지만, 조직이 그걸 당연시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 청년들은 선배들이 말해온 ‘사람 존중’ 등 가치를 배우고 이 분야에 들어왔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내가 성장하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외치던 조직과 선배들이 나의 기본적인 권리에도 관심이 없으면 떠나게 된다.

유=시민사회의 ‘공동체’ 문화도 청년들에겐 불편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쿨하게’ 일만 하는 관계가 될 순 없을까. 꼭 뒤풀이하고, 사적으로 친하게 지내야 ‘연대한다’고 생각하는 문화도 부담스럽다.

느슨한 연대, 더 넓은 환대, 다양한 실험, 행복한 개인

이들은 이젠 “시민운동의 성과도 다르게 측정할 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는 방식이 바뀌고 있으니, 기존 시민사회 조직의 회원 수나 기부금 증가나 캠페인의 주목도 등 ‘조직 중심’의 성과 평가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 시민단체에 속하거나 후원하지 않고 사회 변화에 참여하는 청년이 많은데, 이들을 포용할 방법을 찾아야 시민운동도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운동의 성과도 다르게 측정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조=예를 들면 어떤 단체에서 캠페인을 진행했고 화제는 됐지만 그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너무 소진돼서 다시는 이런 일 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면 그 행사를 실패로 봐야 한다는 거다. 개인을 갈아 넣은 단체 하나가 살아남아서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강남역 살인 사건·미투 운동 등을 거치며 수많은 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다. 시민의 목소리가 모여 우리 사회의 중요 국면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이끌어냈느냐, 거기서 시민사회·단체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백=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의 활동을 예로 들면, 6개월이나 시간을 들여 조직 내 성 평등 약속문을 만들었다.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만드는 큰일을 해내진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구성원 간 신뢰감이 깊어졌고 많은 청년 단체로도 확대됐다. 우리 내부에서는 큰 성과로 평가하지만, 기존 시민운동 문법에서는 크게 인정받기 어렵다.

―사회를 바꾸는 방법은 변했는데, 청년이 내는 성과나 목소리가 주류가 되지 못한 이유는.

유=시민사회 전체적으로, “수평적 토론과 청년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여전히 의사결정은 4050 선배 활동가들이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연차가 낮아서인지, 내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백=선배들이 의사결정 권한을 ‘활동의 효율성’을 이유로 후배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두기보다는 “내가 그 기관에 아는 사람 있으니 연락하면 빠르다”는 식으로 일하는 방식과 자원을 독점하니 청년들이 낄 자리가 없다.

조=나는 25세 때 여세연 사무국장직을 맡았다. 하니까 되더라. “저 회의는 중요한 자리야”라고 말하지 말고, 젊은 활동가가 그 회의에 참여해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면 역량은 생긴다.

―앞으로 시민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유=청소년이나 영리 기업 등 기존 시민사회 외부의 사람들과 더 열린 태도로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시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트렌드를 민첩하게 읽고 소통해야 한다.

조=선배들이 지켜온 ‘동료애’라는 전통은 물려받되 활동가가 노동권과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일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백=느슨한 공동체와 연대의 단점은 ‘기동력과 파급력이 낮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여러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하며 ‘느슨하지만, 파급력도 큰’ 운동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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