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기다리고 있어
이 책은 “스물여섯, 나는 아침에 홈리스가 되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고 검소하게 살았지만 결국 비정규직 파견 사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은 갑작스런 해고로 한순간에 홈리스가 된다. 소설은 ‘빈곤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한 청년이 극빈곤층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실제 극심한 가난을 경험했고 이를 글로 녹여냈다. 청년 빈곤과 이를 대하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드러내는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이다.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1만3800원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공원, 벽화, 지하철 엘리베이터…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느끼는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낸 시민의 숨은 노력을 한 권에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시민들이 만든 도시 풍경’의 대표 사례는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서울광장이다. 지난 2004년 서울광장이 만들어진 데는 2002년 월드컵의 광장 중심 응원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보다 한참 전인 1996년부터 서울 한복판에 광장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 조례를 바꾸자는 운동을 해온 시민들이 있었다. 이 밖에도 지체장애인들의 오랜 노력으로 도로의 턱이 사라지고 저상버스가 운영되기 시작한 사연 등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시민들의 노력이 잘 정리돼 있다.
최성용 지음, 동아시아, 1만6000원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은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일어난 모든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뜻의 영미의 법리다. 가해자는 상대방의 머리를 한 대 쳤을 뿐인데, 피해자가 계란 껍질처럼 얇은 두개골을 가진 사람이라 그 일로 사망에 이르렀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성폭력 피해자이면서 그 경험을 이겨낸 ‘생존자’인 저자는 모든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도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대중이나 재판·수사 관계자들이 성폭력 범죄의 정도와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보다 정확한 폭력의 증거’와 ‘확실한 거부 의사 표현’ 등 ‘피해자다움’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리 리 지음, 송예슬 옮김, 카라칼, 1만8500원
임계장 이야기
공기업 사무직을 정년 퇴임한 저자가 생계를 위해 시급제 파견 노동을 시작하면서 써낸 3년간의 노동일기. 경비원, 주차 도우미, 청소부 등 닥치는대로 일하며 나이 어린 고객이나 정규직 직원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한 경험과 갑작스러운 해고로 겪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을 담았다. 저자는 스스로를 ‘임계장’으로 부른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갑자기 쓰러졌지만 누구도 임계장의 건강을 걱정해주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가 있을 뿐이었다. 팍팍하고 서글픈 현실이지만 작가는 임계장으로 사는 하루하루를 담담한 문체로 써 냈다. 그 건조한 말투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인들의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조정진 지음, 후마니타스, 1만5000원
홈, 프라이드 홈
지난 2015년 설립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띵동)은 가정과 학교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돕는 비영리단체다. 물리적·신체적 폭력과 혐오 섞인 시선으로 고통 받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며 이들에게 법률·심리 상담 등 각종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한 띵동의 활동 역사가 정리돼 있다. 띵동 소속으로 심리상담 지원 활동에 참여해온 저자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 무엇이든 탐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부록에는 상담 가이드라인과 관련 용어 설명이 실려 있어 청소년 성소수자의 현실을 이해를 돕는다. 관련 활동가들은 실무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
우승연 지음, 아모르문디, 1만5000원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