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요, 내일모레 구십인데 그만 눈물이 나서 엉엉 울었어요. 고마운 마음을 대체 어떻게 전해야 할지….”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혼자 사는 심일남(85)씨는 지난 13일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담당 사회복지사의 전화를 받고 문을 열자 큼직한 박스가 보였다. 라면과 즉석밥 등 간편조리식품과 손 세정제, 면 마스크, 건강기능식품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옆에 놓인 비닐봉지 안에는 갓 만든 닭간장조림, 얼갈이배추무침, 오이무침 등 신선한 반찬이 담겨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 달 넘게 집 밖을 거의 나서지 못했던 심씨는 이날 오랜만에 밥 다운 밥을 먹었다. 심씨는 “바이러스가 너무 무섭고 허리도 아파서 그동안 가까운 마트조차 갈 수 없었다”며 “늙은이가 끼니를 제대로 못 챙길 것을 걱정해 반찬을 가져다준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고 말했다.
심씨는 보건의료전문 비영리단체 글로벌케어가 대구에서 진행하는 ‘복지 사각지대 건강돌봄 프로젝트’의 수혜자 가운데 한 명이다. 글로벌케어는 독거노인·기초생활수급자·조손가정 등 취약계층 600가구를 대상으로 지난 13일부터 매주 화·금요일에 반찬을 배달하고 있다. 가정종합사회복지관(북구), 남산기독종합복지관(남구), 남산종합복지관(중구), 대구장애인재활협회(남구), 사랑의연탄운동본부(서구) 등 5개 복지관과 협력해 이달 말까지 반찬 배달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배정심 남산종합복지관 생활지원사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공의 재가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영양 상태가 나빠진 분들이 많았다”며 “고추장에 밥만 비벼 드시던 분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글로벌케어는 반찬 지원과 함께 건강 돌봄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복지관 직원이 비대면으로 반찬을 배달한 이후 전화로 수혜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의 조언을 받아 만든 문진표에 따라 ▲발열 ▲기침 ▲배변 ▲통증 ▲기저질환 등을 살피고, 문제가 발견되면 의료진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유경미 남산기독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지병으로 인한 불편함·통증을 호소하는 분들은 많지만, 다행히도 코로나19 의심 증세가 발견되지는 않고 있다”며 “지속해서 수혜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케어의 건강돌봄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직격탄을 맞은 대구 지역 소상공인들과 상생하는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지역 반찬가게와 식당 등 5곳에서 반찬을 공급받고 있다. 북구 지역 한 반찬가게 업주 이은옥(40)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에 가게를 찾는 손님이 많아야 5명이다”며 “매출이 80% 이상 떨어져 월세도 내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반찬 공급 협력처로 선정돼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을 고용해 출장 뷔페 음식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미소나리도 혜택을 받고 있다.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월 이후 결혼식, 기업 행사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인건비와 임대료조차 부담하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이번에 소외계층 반찬 공급을 시작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정현석 미소나리 실장은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글로벌케어는 모금 상황에 따라 프로젝트 기간을 늘리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정영일 글로벌케어 자문위원은 “취약계층의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면서 지역사회와도 상생하는 복지 모델을 지속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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