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연구소’ 가짜 간판 단 콘텐츠 제작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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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A씨가 일하던 사무실에 ‘기업부설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그는 “하는 일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실사를 대비해 간판만 붙여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브·페이스북 등 SNS용 영상 콘텐츠 제작 회사 PD로 일했던 A씨는 지난해 초 팀장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평소 사용하던 PD 명함 대신 ‘부설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엉뚱한 명함을 지니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A씨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소속과 직함이었다. 이어 팀장은 “자리에서 연구 작업을 하는 것처럼 연출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A씨는 “촬영 도구를 치우고 연구소처럼 꾸며 사진을 찍었다”며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씁쓸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A씨가 근무하던 회사는 송하예·바이브 등 최근 ‘음원 사재기’ 논란에 휩싸인 가수들의 SNS 마케팅 영상을 제작하는 곳이다. 가수들의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 음원 발매일에 맞춰 일반인 커버 영상을 제작해 올려주는데,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A씨는 “연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는데 실사 방문을 대비해 ‘부설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성장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부설연구소 혜택’이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인증 절차는 있지만 조건이나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이다. 기업부설연구소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독립된 연구 공간과 소기업은 3명, 중기업은 5명 이상의 연구 전담 인력을 갖추면 된다. 기업부설연구소 인증을 받으면 ▲기업부설연구소용 부동산 지방세 감면 ▲연구원 인건비 소득세 비과세 ▲연구 및 인력개발비와 설비투자비 세액공제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서울에서 IT 회사를 운영하는 B씨는 “연구소 인증 전에는 매년 세금만 1800만원이 넘게 나왔는데, 인증 후에는 ‘0원’이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서류 심사와 형식적인 실사로 인증이 진행되기 때문에 ‘가짜’가 많다는 것이다. 소기업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연구소 인증 컨설팅 대행을 해주겠다”며 영업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B씨는 “연구소 인증을 따주겠다며 회사로 직접 찾아오는 세무사·행정사무소 관계자나 컨설팅 업체를 수도 없이 봤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보험회사도 가세했다. 기업 보험을 들어주면 덤으로 연구소 인증을 받아주겠다는 식이다. 대행비는 300만원 선이다.

현재 등록된 기업부설연구소는 4만399곳(2018년 기준)이며, 지난해 실사를 받은 곳은 1만6000곳 정도다. B씨는 “실사를 나온다는 사실을 일주일 전 업체에 미리 통보해주고, 나와서도 연구소 간판과 근무 일지가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가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실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인증과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측은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지만 협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윤성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증 절차를 강화하면 오히려 행정을 잘 아는 대행업체 배를 불리는 결과가 날 것”이라며 “중소기업 기술연구를 지원한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세제 혜택보다 연구 직접 지원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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