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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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고래가 걸렸다. 멸치를 잡으려고 설치해둔 촘촘한 그물에 ‘우연히’ 고래가 걸려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래잡이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고래를 불법 포획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멸치잡이 그물에 고래가 걸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처음부터 고래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그물을 친 게 아니라서 처벌받지 않는다.

혼획(混獲). 어업 활동을 할 때 원래 목적했던 어종이 아니라 다른 생물이 섞여 잡히는 걸 가리키는 말이다. ‘고래 혼획’을 굳이 처벌하지 않는 데엔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렸을 것이다. 고래 혼획은 100% 우연히 발생하는 상황이며, 의도적인 포획처럼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국제포경위원회(IWC)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을 제외한 10개 나라에서 혼획된 고래 수는 평균 19마리였다. 한 달에 1.5마리 정도 혼획된 셈이니 ‘자주’라고 보긴 어렵다. 문제는 이렇게 드물게 일어나는 고래 혼획이 우리나라에서는 수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혼획된 고래는 무려 1835마리였다. 다른 나라 평균의 100배에 달하는 수다.

현행법상 혼획된 고래의 소유권은 발견한 사람에게 있다. 의도적으로 잡은 게 아니라 우연히 잡혔다는 것만 입증하면 고래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매도 할 수 있다. 밍크고래의 유통 판매 가격은 최소 수천만원에서 최대 수억원에 이른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밍크고래를 2번 혼획했다고 신고한 어부는 34명이나 된다. 심지어 한명의 어부가 혼자서 6번 혼획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을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만 말씀드리면 고래가 다니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고래를 6번 혼획한 어부의 고백이다. 멸치잡이 그물에 고래가 잡힌 게 ‘의도된 우연’이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고래와 멸치’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받았다. 법과 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비상식적인 고래 혼획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공익법센터 어필, 환경정의재단이 프로젝트 형태로 뭉쳐 펴낸 책인데, 아쉽게도 비매품이다. 이번에는 오크재단과 Ocean5의 후원으로 책이 출간됐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지는 의문이다. ‘바다의 로또, 밍크고래 발견’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나와야 겨우 관심을 끌까.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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