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동구밭 쇼룸’, 서울 노들섬 ‘베어베터 편의점’을 가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친환경 비누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동구밭’이 2015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소비자와 만났다. 서울 성수동에 ‘동구밭 쇼룸’이라는 팝업 스토어를 개설해 지난 9일부터 2주간 운영했다. “가꿈지기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 마련한 이벤트다. 가꿈지기는 동구밭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을 말한다. 비누 공장에서 일하던 20명의 가꿈지기들은 ‘판매원’으로 변신해 제품을 홍보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비장애인과 소통하는 일이 점차 늘고 있다. 사회적기업 ‘베어베터’도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점을 늘리는 새로운 일터를 실험 중이다. 지난 9월 서울 노들섬에 ‘베어베터 편의점 4호점’을 열었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이 협업하는 편의점이다. 이진희 베어베터 공동대표는 “발달장애인 직원을 위한 맞춤형 업무 매뉴얼과 이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비장애인 동료만 있다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편의점 같은 곳에서도 충분히 어울려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든 비누,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지난 16일 찾아간 동구밭 쇼룸에서는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났다. 단정한 옷차림에 앞치마까지 두른 2명의 가꿈지기가 손님맞이에 한창이었다.
“설거지 비누가 가장 잘 팔려요. 야채나 과일도 씻을 수 있어요. 저희 어머니도 써요. 장갑을 안 껴도 손이 안 아프대요. 원래 5000원인데 오늘은 세일해서 4000원입니다.”
주우복(29)씨가 속사포처럼 제품을 소개하자 손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주씨는 대뜸 샴푸 비누를 집어 들고서 “이 제품은 베르가모트향이 난다”고 강조했다. 손님이 “베르가모트가 뭐냐”고 묻자 “알았는데 까먹었다”고 얼버무려 다시 웃음꽃이 폈다. 베르가모트는 귤속에 속하는 과일나무다.
주씨는 2017년 4월부터 동구밭에서 일했다. 딱딱하게 굳은 비누를 틀에서 꺼내 자르고 다듬는 것이 그의 일이다. 경기 안양에 살고 있어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3시간이 넘는데도 “음식점부터 인쇄소까지 여러 곳에서 일했지만, 동구밭이 가장 좋아서 참는다”고 했다. 주씨는 이날까지 3차례나 쇼룸에서 손님을 상대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14일에도 자원해서 나왔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긴장했는데, 멀리서 온 손님들이 응원해주고 같이 이야기할 수도 있어서 계속 오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5월 가꿈지기가 된 권은진(25)씨는 이날이 쇼룸 직원으로는 데뷔 무대였다. 권씨는 “비누를 포장하는 일만 했는데, 밖에서 손님을 만나니 떨린다”면서도 “내가 만든 비누를 자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쇼룸을 찾은 손님들은 미소가 가득했다. 서울에 사는 나성미(32)씨는 “동구밭은 오프라인 매장도 사랑이 넘치는 것 같다”며 “가꿈지기들이 밝아서 오히려 기운을 받아간다”고 했다. 대학생 윤지영(23)씨는 “동구밭에서 일하는 분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며 “아르바이트 일당을 탕진하려고 왔다”고 웃었다.
동구밭은 20명의 발달장애인과 12명의 비장애인이 함께 꾸려간다. 월 매출이 400만원 늘 때마다 가꿈지기 1명을 추가로 고용한다. 지난달에도 새 식구가 들어왔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자주 함께 어울려야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사라진다”며 “가꿈지기를 응원하는 분들뿐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들어와서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발달장애인 편의점, 지난 9월 노들섬에 문 열어
동구밭 쇼룸이 이벤트 차원에서 잠시 마련된 곳이라면, 노들섬 베어베터 편의점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속해서 소통하는 일상적인 공간이다. 지난 17일 찾아간 노들섬 편의점에는 ‘오전조’로 일하는 3명의 발달장애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유일한 비장애인인 김성웅 매니저는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계산을 제외한 ▲청소 ▲제품 검수 ▲제품 진열 ▲유통기한 검사 ▲냉장고·냉동고·전자레인지 관리 등 모든 업무를 발달장애인 사원들이 도맡아 한다.
노들섬 편의점의 막내인 도인호(가명·20)씨는 정리정돈의 달인으로 통한다. 이날도 진열된 과자들을 일렬로 줄 맞추고 있었다. 도씨는 “손님들이 ‘편의점이 깔끔하다’고 칭찬해주는 게 좋다”며 “물건이 흐트러져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지난 3월 베어베터에 입사한 임준식(22)씨는 원래 배송 업무를 담당했다. 커피·명함·과자 등 베어베터가 만든 제품을 지하철을 타고 거래처에 찾아가 납품하는 일이다. 꼼꼼하고 예의 바른 성격을 눈여겨본 김 매니저가 임씨를 편의점 팀으로 스카우트해 지난 9월부터 함께 일하고 있다. 임씨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척척 찾아냈다.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임씨가 천천히 자신의 일을 설명했다. 임씨는 손님들이 인사를 받아줄 때 행복하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늘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싶습니다.”
베어베터 1~3호점이 각각 대웅제약·우아한형제들·이마트24 등 기업 직원을 위한 사내 매점으로 들어선 것과 달리 4호점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발달장애인 사원을 위한 맞춤형 매뉴얼을 마련, 고객 응대 교육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칫솔이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같이 찾아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라는 식이다. 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즉시 매니저에게 도움을 청하게 하고 있다.
지난 9월 베어베터에 입사한 발달장애인 김종우(21)씨는 “언젠가 직접 베어베터 편의점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편의점에 오는 손님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50대 중반까지는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그다음에는 편의점을 차리고 싶어요.”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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