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해녀 삶 담은 공연과 갓 잡은 해산물 요리로 ‘진짜’ 제주 해녀 문화 알립니다”

[청년이 지역을 살린다] ④제주 ‘해녀의부엌’

올해 초 제주도 구좌읍 종달리에 문을 연 ‘해녀의부엌’은 공연과 식사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이다. 공연예술가인 김하원 대표(맨 오른쪽)와 고유나 이사(맨 왼쪽)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보다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해녀 다이닝’이란 선례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일구었다. ⓒ해녀의부엌

올해 초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포구에 문을 연 레스토랑해녀의부엌은 일종의극장식당이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캐낸 뿔소라, 전복, 톳 등으로 만든 해산물 요리를 맛보며 해녀의 삶을 담은 연극 공연을 보고 현직 해녀가 들려주는 해산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별다른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소셜미디어에서종달리맛집’ ‘제주파인다이닝으로 소문이 났다.

해녀의부엌은 종달리 해녀 집안 출신 김하원(28) 대표와 그의 대학 동기 고유나(29) 이사가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공연예술가다. 김 대표는 “제주도에서 레스토랑을 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웃었다. 그는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 주로 일본에 수출되는데, 점점 일본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해녀들의 소득이 20년 전보다도 더 줄어든 상황이라며 해녀들이 건져 올린 해산물의 가치와 맛을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공연다이닝을 접목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매회 공연에서 해녀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젊었을 적 해녀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김하원 대표와 고유나 이사는 해녀의부엌을 이끄는 ‘경영자’이자, 직접 무대에 올라 해녀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기도 하다. ⓒ해녀의부엌

해녀의부엌이 자리 잡은 공간은 원래 갓 잡은 해산물을 판매하는 수산물 위판장이었다. 수십년 전 기능을 잃고 창고로 전락한 위판장을 작은 무대가 딸린 어엿한 레스토랑으로 꾸미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 이사는어민들이 안 쓰는 물건들을 이곳에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새벽에 어선 나가는 시간에 맞춰 김 대표와 포구에 나가 어민 한 분 한 분 직접 인사드리며 공간을 내어달라고 부탁드렸다면서포구에서 따뜻한 커피도 타 드리고, 틈날 때마다 허드렛일에도 손을 보탰더니 어민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나중에는 공간 청소까지 도와주셨다고 했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수산물 위판장을 고쳐 만든 해녀의부엌 공간.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해녀의부엌

해녀의부엌을 함께 일궈나갈 현직 해녀들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두 청년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 김태민 종달어촌계장이 발벗고 나서줬다. 김 대표는계장님께서 이 청년들이 해녀를 위해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해녀 이모님들을 설득했다덕분에 해녀의부엌 음식을 담당할요리사이모님들과 저희와 함께 공연할배우이모님들을 무사히 섭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공간 조성부터 메뉴 기획, 운영 방식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건공연이다. 손님들이 식탁에 오른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음식에 얽힌 해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해녀들의 생애 이야기를 꼼꼼히 기록해 이를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짜고, 공연에 참여할 해녀들에게 연기를 가르쳤다. 고 이사는처음에는 이모님들이 무척 쑥스러워했는데, 연습을 거듭하다보니 엄청난 끼를 발휘했다본인 이야기라서 그런지 전문 연기자 못지않게 감정을 표출하며 공연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했다. 해녀들이 무대에 서면서 얻게 된 건연기력말고 또 있다. 해녀란 직업에 대한자부심이다. 김 대표는해녀 배우들이 평생 해녀 직업이 창피했는데 해녀의부엌 덕분에 내가 해녀인 게 이제는 자랑스럽다고 하시더라면서 수십 번 무대에 올랐는데도 이모님들이 공연 때마다 눈물을 보이신다고 했다.

해녀의부엌은 100%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별 다른 홍보 없이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거의 매회 예약이 꽉 찬다. ⓒ해녀의부엌

해녀의 부엌은 매주 금~일요일 점심회만 예약제로 손님을 받는다. 거의 매회 예약이 꽉 찰 만큼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주최하는 소셜벤처 엑셀러레이팅 사업에 선정돼 소셜 비즈니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우수음식관광 공모전에서도 프로그램 부문에서 우수상을 차지하며 상품성도 입증했다. 고 이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해녀와 해녀의 음식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두 사람 없이도 해녀들끼리 해녀의부엌을 꾸려갈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안정화·체계화하는 것도 과제다. 김 대표는앞으로 2~3년 후에는 저희 도움 없이도 해녀 이모님들이 해녀의부엌을 온전히 운영할 수 있도록 운영 모델을 공고히 하는 게 목표라며 이모님들이 혼자서도 진행할 수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그는 또 “2016년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도내에 해녀박물관도 생기고 해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해녀를 소재로 이용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해녀의부엌이 해녀의, 해녀에 의한, 해녀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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