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지역을 살린다] ④제주 ‘해녀의부엌’
올해 초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포구에 문을 연 레스토랑 ‘해녀의부엌’은 일종의 ‘극장식당’이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캐낸 뿔소라, 전복, 톳 등으로 만든 해산물 요리를 맛보며 해녀의 삶을 담은 연극 공연을 보고 현직 해녀가 들려주는 해산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별다른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소셜미디어에서 ‘종달리맛집’ ‘제주파인다이닝’으로 소문이 났다.
해녀의부엌은 종달리 해녀 집안 출신 김하원(28) 대표와 그의 대학 동기 고유나(29) 이사가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공연예술가다. 김 대표는 “제주도에서 레스토랑을 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웃었다. 그는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 주로 일본에 수출되는데, 점점 일본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해녀들의 소득이 20년 전보다도 더 줄어든 상황”이라며 “해녀들이 건져 올린 해산물의 가치와 맛을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공연’과 ‘다이닝’을 접목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매회 공연에서 해녀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젊었을 적 해녀’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해녀의부엌이 자리 잡은 공간은 원래 갓 잡은 해산물을 판매하는 수산물 위판장이었다. 수십년 전 기능을 잃고 창고로 전락한 위판장을 작은 무대가 딸린 어엿한 레스토랑으로 꾸미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 이사는 “어민들이 안 쓰는 물건들을 이곳에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새벽에 어선 나가는 시간에 맞춰 김 대표와 포구에 나가 어민 한 분 한 분 직접 인사드리며 공간을 내어달라고 부탁드렸다”면서 “포구에서 따뜻한 커피도 타 드리고, 틈날 때마다 허드렛일에도 손을 보탰더니 어민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나중에는 공간 청소까지 도와주셨다”고 했다.
해녀의부엌을 함께 일궈나갈 현직 해녀들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두 청년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 김태민 종달어촌계장이 발벗고 나서줬다. 김 대표는 “계장님께서 ‘이 청년들이 해녀를 위해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해녀 이모님들을 설득했다”며 “덕분에 해녀의부엌 음식을 담당할 ‘요리사’ 이모님들과 저희와 함께 공연할 ‘배우’ 이모님들을 무사히 섭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공간 조성부터 메뉴 기획, 운영 방식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건 ‘공연’이다. 손님들이 식탁에 오른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음식에 얽힌 해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해녀들의 생애 이야기를 꼼꼼히 기록해 이를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짜고, 공연에 참여할 해녀들에게 연기를 가르쳤다. 고 이사는 “처음에는 이모님들이 무척 쑥스러워했는데, 연습을 거듭하다보니 엄청난 끼를 발휘했다”며 “본인 이야기라서 그런지 전문 연기자 못지않게 감정을 표출하며 공연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했다. 해녀들이 무대에 서면서 얻게 된 건 ‘연기력’ 말고 또 있다. 해녀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다. 김 대표는 “해녀 배우들이 ‘평생 해녀 직업이 창피했는데 해녀의부엌 덕분에 내가 해녀인 게 이제는 자랑스럽다’고 하시더라”면서 “수십 번 무대에 올랐는데도 이모님들이 공연 때마다 눈물을 보이신다”고 했다.
해녀의 부엌은 매주 금~일요일 점심회만 예약제로 손님을 받는다. 거의 매회 예약이 꽉 찰 만큼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주최하는 소셜벤처 엑셀러레이팅 사업에 선정돼 ‘소셜 비즈니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우수음식관광 공모전’에서도 프로그램 부문에서 우수상을 차지하며 상품성도 입증했다. 고 이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해녀와 해녀의 음식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두 사람 없이도 해녀들끼리 해녀의부엌을 꾸려갈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안정화·체계화하는 것도 과제다. 김 대표는 “앞으로 2~3년 후에는 저희 도움 없이도 해녀 이모님들이 해녀의부엌을 온전히 운영할 수 있도록 운영 모델을 공고히 하는 게 목표”라며 “이모님들이 혼자서도 진행할 수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2016년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도내에 해녀박물관도 생기고 해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해녀를 소재로 이용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해녀의부엌이 해녀의, 해녀에 의한, 해녀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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