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권리에 대한 분노… 법으로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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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벤처 ‘화난사람들’ 이끄는 최초롱·하정림 변호사

법 몰라 불이익당하는 사람들 위해…
‘공동소송 플랫폼’ 지난해 8월 문 열어

IT 활용한 데이터 관리 시스템 개발
번거로운 공동소송 과정 단번에 해결
원스톱 법조 서비스 구축, 대중화 목표

 

최초롱(왼쪽) 화난사람들 대표와 하정림 변호사는 서초동 법조타운이 아닌 용산구의 한 전자상가로 출근한다. 청년 스타트업 공간 ‘와이밸리’에 터를 잡았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7월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노쇼’ 사건은 국내 축구 팬들을 화나게 했다. 호날두 내한 경기를 주최한 업체는 애초 ‘호날두 45분 이상 출전’을 약속했다. 이 말을 믿고 초등학생도 쌈짓돈을 털었지만, 호날두는 90분간 벤치만 달궜다. 눈 뜨고 코 베인 관중은 소리쳤다. “이건 사기지!”

소셜벤처 ‘화난사람들’은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알못'(법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속끓이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해 8월 문을 연 ‘공동소송 플랫폼’이다. 라돈 침대 사태로 피해를 본 소비자, 기업의 실수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 등 다양한 억울함을 가진 이들의 집단적 분노를 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현재까지 22건의 공동소송을 진행해 1만여 명이 참여했다. ‘호날두 노쇼 손해배상청구’도 그중 하나다. 노쇼 사건 피해자 161명이 적게는 2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까지 소송비를 십시일반 걷어 소송을 진행 중이다.

화난사람들은 두 명의 ‘별종’ 변호사가 이끌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한 최초롱(32·연수원 45기) 대표가 만들었다. 김앤장법률사무소 출신 하정림(31·연수원 44기) 변호사는 지난 5월 합류했다. 하 변호사는 “법조 서비스의 대중화에 관심이 있던 차에 ‘보수적인 법조계를 함께 바꿔보자’는 최 대표의 제안을 받고 화난사람들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짓밟혔던 작은 권리들, 법으로 지킨다

‘뭉치면 권력이다. 우리가 권력이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원효전자상가 사무실. 최 대표와 하 변호사가 내민 명함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최 대표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화난사람들’을 구상했다”면서 “명함 문구도 그때 생각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연수원을 최상위 성적으로 마쳤지만,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대신 화난사람들을 설립하는 길을 택했다. 법을 몰라서 피할 수도 있었던 불이익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법원에서 일하는 2년 동안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편리하고 저렴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홀로 IT 개발자를 만나고 다녔다. 화난사람들 법인을 설립한 건 재판연구원 임기를 마친 지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이었다.

“형사피의자로 재판받는 일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생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허위·과장 광고에 속아 불량 제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재산이나 건강에 피해를 보는 일은 소비자로 사는 한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이럴 때는 뭉쳐야 해요. 피해자들끼리 모여서 공동소송으로 대응하는 것이 권리를 찾는 가장 빠른 길이죠.” (최 대표)

사실 공동소송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기피 대상이다. 변호사가 수백·수천명의 소송 참여자들을 한 명씩 응대하고, 관련 서류와 증거를 팩스나 이메일로 일일이 받아 처리하는 일이 고되기 때문이다. 품은 많이 드는데 손에 쥐는 돈은 적다 보니 공동소송을 잘 대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화난사람들은 IT 기술을 활용한 데이터 관리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소송 참여자들은 화난사람들 플랫폼에 언제든 자료를 등록·수정·열람할 수 있고, 변호사는 화난사람들이 제공하는 정돈된 데이터를 받아 소송을 진행하면 된다. 여기에 소송에 필요한 비용과 기대되는 이익, 진행 상황, 변호사 이력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 변호사는 “짓밟혔던 작은 권리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화난사람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데도 공동소송은 번거롭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받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변호사들이 먼저 연락해서 화난사람들을 통해 소송을 진행하고 싶다고 해요. 단단한 법조계에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희열을 느낍니다.”

화난사람들은 최근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 관련 집단 탄원서 모집에 들어갔다. 신상이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 부모들이 배드파더스 관계자들을 고소한 것을 두고 “공익적 목적을 위해 한 일”이라는 의견을 담은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화난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법조 서비스 대중화로 사회 변화 이끌 것”

두 사람은 변호사시험 출제검토위원으로 나란히 뽑힌 2014년 처음 만났다. 당시 하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연수생, 최 대표는 사법고시 합격생 신분이었다. 휴대전화도 없이 보름간 한 방에서 합숙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1980년대 후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인 두 사람은 ‘법조계 혁신’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최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는데 법조계만 유독 기술 혁신이나 정보 공유에 게으른 것 같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돈을 버는 게 목표였다면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걸어갔을 거예요. 아스팔트로 포장된 쭉 뻗은 도로가 열려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내키지 않더라고요. 착한 일을 하고 싶다기보다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진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죠.”(하 변호사)

화난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스톱 법조 서비스 플랫폼’ 구축이다. 지금은 공동소송만 진행하지만,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개인도 맞춤형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하 변호사는 “산발적으로 흩어진 법률 정보와 판례를 한데 모으고 유형별로 쪼개 일종의 법조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라며 “법조 지식이 없는 사람도 클릭 몇 번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법률 서비스의 종류와 비용을 확인하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결과까지 시뮬레이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와 하 변호사는 화난사람들 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 무료 법률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최 대표는 화난 사람들이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는 미래를 그린다고 했다. “지금은 언론이 기업이나 정부의 부정과 잘못을 감시하는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하지만, 앞으로는 시민도 이런 일을 직접 하게 될 거예요. 법의 힘을 빌려 집단적으로 목소리 내는 일이 많아지면 기업이나 정부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겠죠. 그러니까 다들 화를 풀어야 해요. 물론 법대로.”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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