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한달… 비영리는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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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지난 7월 16일 시행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 제외

사용자, 갑질 근절 조치 의무 있지만 괴롭힘 파악해도 실효성 없어

ⓒ일러스트=나소연

“이사장은 여직원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일부 직원을 ‘정신병자’라고 불렀어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원래 업무와 다른 청소나 창고 정리를 시켰고요. 직장 내 괴롭힘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었죠.”

비영리 재단법인 양포에서 일했던 박경진(37)씨는 최근까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과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양포에서 성추행·부당업무지시·노조탄압 등 각종 갑질이 자행됐다고 주장한다. 양포 측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갑질이나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박씨는 양포에서 근무한 동료들과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양포의 직장갑질 실태고발’ 기자회견까지 했다.

지난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많은 비영리 조직이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영리 조직 대부분이 소규모로 운영되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활동가의 ‘노동권’보다 조직의 ‘미션’을 강조하는 경직된 문화도 비영리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5인 미만 조직이 상당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안 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의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이를 조사해 인사이동·징계 등 조처해야 한다.

문제는 비영리 조직 상당수가 5인 미만이라는 점이다. 아름다운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비영리조직의 개괄적 현황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 비영리 조직은 모두 3만3679개다. 비영리 조직들이 26개 중앙부처와 17개 지자체에 나뉘어 등록돼 있고 종사자 수를 따로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비영리 조직의 상당수가 5인 미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유일하게 종사자 수를 조사하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복지부가 관할하는 비영리법인 425개 가운데 60%에 달하는 247개가 5인 미만이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규모가 작을수록 직장 내 괴롭힘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 16일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379건의 직장 내 괴롭힘 진정 가운데 159건(42%)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 인권 업무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조차도 비영리 조직은 관심 밖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관계자는 “비영리 조직에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이 몇 건이나 접수됐는지 알지 못한다”며 “앞으로도 따로 통계를 집계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박경진씨는 “갑질 관련 문의를 했는데 고용노동부 담당자로부터 ‘그런 곳에 왜 다니느냐’는 얘길 들었다”면서 “직장 내에서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참아왔는데, 허탈했다”고 했다.

출처: 페이스북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

말 못 할 고통에 ‘대나무숲’ 찾는 활동가들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제보받는 비영리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영리 조직에 대한 제보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비영리 조직에서는 단 한 건의 제보도 없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장은 “실제로 비영리 조직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없다기보다는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게 영리 조직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이하 대나무숲)에서 비영리 조직의 다양한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은 비영리 활동가들이 익명으로 고충을 털어놓는 공간으로, 조직 내에서 숱한 갑질을 당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아픔을 익명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활동가가 노동자도 아닌데 왜 그리 돈에 집착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한 번이라도 좋은 팀장과 일해보고 싶다’ ‘남들은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빼는 시민단체’ 등 조직에서 겪었던 부당한 일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룬다.

더나은미래는 지난 2016년 11월부터 지난 13일까지 이곳에 올라온 839건의 글을 모두 분석했다. 이 가운데 147건이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성격을 띤 것으로 나타났다. ‘폭언’이 41건(27.9%)으로 가장 많았고 ‘부당업무지시·부당인사’가 31건(21.1%)으로 뒤를 이었다. ‘성폭력’은 27건(18.4%), ‘험담·따돌림’은 24건(16.3%), ‘강요’는 17건(11.6%), ‘사적 용무 지시’는 7건(4.7%) 등으로 집계됐다.

대나무숲에 올라온 직장 내 괴롭힘 사례는 노동권보다 조직의 미션을 앞세우는 비영리 조직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급여 일부를 선의로 단체에 다시 기부하라고 종용했다’ ‘단체 얼굴에 먹칠할 수 없어서 폭언을 듣고도 참았다’ ‘대표가 단체 활동과 관련 없는 일을 지시하길래 거절했더니 연대의식이 없는 활동가로 낙인찍혔다’ ‘주말 수당 얘기를 꺼냈더니 회원 보기 부끄럽다며 면박을 줬다’는 등의 내용이다.

활동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외부에 알리거나 적극적으로 시정 요구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일에 대한 사명감 ▲조직에 대한 애정 ▲이직 시장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불안감 등을 꼽았다. 한 활동가는 “국장급끼리 활동가에 대한 평가를 공유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책임감, 경력을 쌓아 좋은 곳으로 옮기겠다는 각오로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영리 활동가의 노동권 보장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송시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 비영리단체가 많다”며 “활동가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유섭 노무법인 의연 대표노무사는 “노무 관리가 조직 운영의 필수 요소라는 것을 사용자들이 깨달아야 한다”며 “비영리 조직 관리자들이 노무 관련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하는 등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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