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창업’으로 제2의 인생 꿈꾸는 북한이탈주민들, ‘산 넘어 산’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총 3만2705명의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정착했다.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연평균 1557명이 북한을 떠나 한국에 왔다.

북한이탈주민이 낯선 한국땅에 적응하는 과정은 지난하다.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지만, 차별적인 시선과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다. 단순생산직 외에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이 같은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업’에 도전하는 북한이탈주민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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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북한이탈주민 창업 “남한 직장에 적응하기 어려워”

통일과나눔재단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6년 680명이었던 창업자 수는 지난해 800명으로 늘었다. 한국에 사는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약 50%. 경제활동을 하는 북한이탈주민 100명 가운데 5명은 창업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직장생활에서 겪는 불평등은 북한이탈주민이 창업에 나서게 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통일부의 지난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월평균 임금은 한국 근로자 평균임금의 3분의 2 수준인 160만원에 머물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이탈주민은 “같은 직장에서 일해도 북한과 남한의 사회적 지위 차이 때문에 대우가 좋지 않다”며 “탈북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일도 있어 갈등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성은 운송업, 여성은 서비스업

창업을 희망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무담보·무이자로 최대 2000만원까지 대출해주고, 사업이 안착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을 제공하는 열린나눔재단 메리스타트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은 성별에 따라 희망하는 창업 아이템이 확연하게 갈린다.

남성의 경우 운송업에 가장 많이 뛰어든다. 북한에서는 운전면허가 귀하다. 면허가 있다는 것은 지역과 지역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면허 발급 자체를 잘 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고위층만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남성 북한이탈주민은 한국에서 면허부터 따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후 화물 트럭을 활용하거나 택배 사업으로 창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주로 식당 등 서비스업으로 창업을 계획한다.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하는 일이 식당 보조 등 서비스업이다 보니 친숙한 아이템을 선정하게 되는 것이다. 또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마사지업에 종사하던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와서도 피부미용 업체에서 일하거나 직접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창업지원을 돕는 열매나눔재단 메리스타트의 이상급 담당자. ⓒ김수아 청년기자

제2금융권 대출로 자금난 허덕이는 경우 부지기수

창업을 원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난관은 ‘자금’이다. 은행 대출이 한정돼 있어 제2·3 금융권에 손을 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자금난에 허덕이는 일이 부지기수다.

메리스타트는 2015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모두 12명의 북한이탈주민에게 창업 자금을 대출했다. 이 가운데 3명은 상환을 이미 완료했을 만큼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4명은 음식점, 4명은 미용 서비스업, 2명은 운송업, 1명은 카페를 운영하고, 1명은 홈페이지 제작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상급 메리스타트 사업 담당자는 자금 문제 외에도 남한에 대한 이해 부족이 북한이탈주민의 창업이 쉽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의 권유로 너무 쉽게 창업을 결정하는 북한이탈주민이 많아요. 예를 들면 북한에서 중국과 밀수 거래를 했던 분이 있었어요. 남한에서도 비슷한 일을 해보겠다고 하셨죠.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환경이 전혀 다르거든요. 밀수 자체가 불법이기도 하고요. 창업을 결심하기 전에 남한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앞서야 합니다. 자금만 지원하는 것은 실패를 조금 늦출 뿐이에요.”

메리스타트는 자금 대출 이후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컨설팅을 제공한다. 예컨대 북한이탈주민이 중국음식점 창업을 원한다면 점포를 열기 전에 메뉴 개발과 홍보, 매장 관리 전반에 대해 조언하고 실제로 문을 열고서 어떻게 운영하는지 지켜본다. 전문가를 연결해 실무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창업 꿈꾸는 탈북민 위해 컨설팅·상담 등이 지원돼야

창업에 성공한 북한이탈주민의 성공담을 듣는 일은 쉽지 않았다. 메리스타트를 통해 3~4명의 북한이탈주민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같았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점이 드러나면 사업에 방해될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실제로 창업한 북한이탈주민들은 철저하게 탈북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북한이탈주민 A씨는 “직원들이 내가 탈북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일하는 것을 꺼릴 것 같다”고 털어놨다. 북한이탈주민 B씨도 “남한 사람들과 잘 동화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탈북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국의 서비스업 정서를 살피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다. 메리스타트에 따르면 많은 북한이탈주민이 창업 과정에서 서비스 품질을 강조하는 한국의 정서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음식점 사업을 하다가 손님과 시비가 붙거나, 전화로 고객을 응대할 때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싸움으로 번진 경우도 있다.

이상급 담당자는 “창업을 꿈꾸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자금 지원뿐 아니라 사업 전반에 대한 컨설팅, 남한 사회에 대한 교육 등이 병행돼야 한다”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문화·교육·심리 상담 등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아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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