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쉬운 안질환 ‘트라코마’, 가난의 땅에선 실명할까 두려운 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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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카트라이트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안과 교수 인터뷰

79년 韓서 한센인 봉사활동하며 개도국 인권 개선에 관심 갖게 돼
트라코마 퇴치‘ 30년간 연구 매진
각국 50개 단체 모아 ICTC 꾸려 15년 만에 감염자 절반으로 줄여

선진국선 오래전 종식된 전염병…국제사회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
개도국 겪어본 한국 역할 중요

마다가스카르에서 트라코마 퇴치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폴 카트라이트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안과 교수. ⓒellencrystal

“한국이 제 인생을 바꿨죠.”

폴 카트라이트(66·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안과 교수는 한국을 ‘잊을 수 없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발도상국 국민의 주요 실명 원인으로 꼽히던 ‘트라코마’ 퇴치에 큰 공을 세운 보건 전문가로, 30여 년간 아프리카에 살면서 트라코마를 연구했다. 15년 전부터는 비슷한 활동을 하던 50여 개 단체를 모아 공동 대응에 나섰고, 이를 통해 2003년 8400만명이던 아프리카 지역 트라코마 감염자 수를 2018년 4000만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시켰다. 트라코마는 비교적 치료가 쉽고 한 번 앓고 나면 재발하지 않는 병이라, 남아 있는 확진 환자들도 이른 시일 안에 완치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회고록 집필차 한국을 찾은 폴 교수를 지난 10일 만났다. 그는 “1979년부터 미국 평화봉사단 소속으로 전남 나주의 한센인 시설인 ‘호혜원’에서 일하며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이 사건을 겪으며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이를 계기로 개도국의 인권 개선과 질병 퇴치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 운동, 한센인 봉사 활동…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

“한국 생활 2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이었어요. 차를 몰고 여수에 있는 병원에 갔다가 나주로 돌아가는 길이었죠. 광주를 지나쳐 오는데 버스 한 대가 버려져 있었어요. 총알이 박히고 피가 범벅이 된 채로요. 호혜원에 돌아가 그 말을 전하자 한센인 몇 명이 저에게 다가와 ‘우리 아이가 전남대에 다니는데 안전한지 광주에 가서 확인 좀 해달라’며 사정했어요. 그날이 1980년 5월 19일이었죠.”

그는 한센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병 때문에 가족과도 닿지 못할 정도로 사회로부터 고립돼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든 한센인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그 길로 광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외신 기자들의 활동을 도왔다. 영화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진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와도 함께 일했다. “광주 바깥에 우리 소식을 알려 달라”는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서 군인들 눈에 띄지 않게 산길을 통해 광주를 빠져나왔고, 미국 대사관에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전보를 쳤다.

“이 일로 한국 정부로부터 추방하겠다는 협박을 받았어요. 하지만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 측에서 ‘폴 카트라이트를 추방한다면 모든 평화봉사단원을 한국에서 빼겠다’며 보호해준 덕에 끝까지 활동을 마칠 수 있었어요. 몇 달 동안 형사가 제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하긴 했지만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전남대 옥상에서 외신 기자와 함께 있는 모습. 왼쪽부터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공영방송 기자, 주디 챔베를린, 데이비드 돌링어, 폴 카트라이트, 팀 밴버그(전원 미 평화봉사단원), 헤닝 루모어 음향기사.

한국은 개도국 문제 잘 이해할 수 있는 나라”

그는 3년간 한국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며 가난해서 병에 걸리고, 병 때문에 기본적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사회에서 내쳐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1982년 귀국한 뒤 존스홉킨스대 국제보건학과에 진학했다. 1988년 박사 학위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아프리카로 향해 트라코마 퇴치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트라코마는 트라코마 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물, 보균자와의 신체 접촉을 통해 걸리는 감염병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결막염처럼 보이지만 방치하면 진물이 나오다가 결국 실명하게 됩니다. 트라코마로 인한 실명 위험 인구가 전 세계 1억7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 병의 예방과 치료가 아주 쉽다는 겁니다. 깨끗한 물로 얼굴과 손을 씻으면 걸리지 않고, 걸린 후에도 약이나 간단한 수술로 금방 나을 수 있어요. 트라코마로 실명했다는 건 그 사람이 3~4년 이상을 아무런 의료 처치 없이 방치됐다는 뜻이죠. 빈곤층·여성·어린이 등 취약계층 감염률이 보통 사람 4배에 달할 정도로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개발도상국형 질병’입니다.”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 등 아프리카 전역을 오가며 트라코마 퇴치에 관한 연구를 이어가던 폴 교수는 2004년 안질환 분야에서 제각각 활동하던 국제기구, NGO, 전문가들을 하나의 연합체로 엮었다. ICTC(International Coalition for Trachoma Control)를 탄생시킨 것이다.

“한 단체가 마을에 들어가 약을 나눠주더라도 옆 마을에 감염자가 남아 있으면 약을 먹은 마을에서 또다시 감염이 발생해요. 각 기관의 인적·물적 자원을 한데 모아 신규 감염자 발생을 원천봉쇄한 뒤, 환자들을 치료하자는 게 ICTC를 만든 취지였죠.”

2015년엔 전 세계 트라코마 발생과 처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트라코마 데이터 지도’를 완성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가장 시급한 개입이 필요한 지역을 찾고, 자원과 전문성에 따라 역할을 배분해 질병 퇴치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런 방식으로 ICTC는 지금까지 4억5000만개 이상의 약을 배분했고, 1300만 건 이상의 수술을 진행했다. 2018년 가나가 트라코마 퇴치 선언을 했고, 탄자니아와 말라위 등도 퇴치 발표를 코앞에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3년경 트라코마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폴 교수는 “수십년 전에 치료법이 다 나와 선진국에선 사라진 지 오래인 이 병이 아프리카에서 이제야 종식된다는 건 국제사회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개도국의 아픔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이야 한국이 아주 잘사는 나라가 됐지만, 40년 전만 해도 가난과 개도국형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제가 만난 한센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죠. 개도국의 상황은 40년 전 한국과 비슷합니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죠. 한국이 과거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진정한 한국형 원조’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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