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화마와 싸워야 할 소방관인데…극한 근무 환경에 ‘악전고투’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지난 5일 강원 속초 장천마을에서 산불 진화 작업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소방대원의 모습. ⓒ조선일보 DB

지난 4일 강원도 대형 산불 소식을 접하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초속 30m 강풍을 타고 산불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며, 5년 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속수무책으로 침몰하던 세월호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불길이 잡혔고, 피해는 컸지만 대형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기적과 천운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그 기적 뒤에는 전국에서 신속하게 모여든 2000여 소방관의 헌신이 있었다. 치솟는 불길 앞에서 속초 길목 LPG 충전소를 지켜낸 한 소방관은 “손발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는 심경을 전했다. 흔히 소방관을 화염과 싸우는 ‘영웅’으로 그리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방관을 위험에 빠뜨리는 건 치솟는 불길만이 아니다.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지방직 소방관들은 늘 과로에 시달린다. 소방 장비 등도 부실해 희소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내 병이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받기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죽고 나면 소송이라도 해줘. 우리 아들에게 병 걸린 아빠가 아닌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빠로 기억됐으면 좋겠어.” 2014년 혈관육종암이라는 희소병에 걸려 7개월 만에 숨을 거둔 고 김범석 소방관의 유언이다. 가족들은 유언대로 5년째 법정에서 싸우고 있지만 1심에서 패소한 상황이다.

소방관의 공무상 재해에 관한 판결을 살펴보면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여실히 드러난다. 뇌지주막하출혈로 사망한 소방관 사건에서 망인은 24시간씩 2교대의 격일제 형태로 근무했는데 주당 근무시간이 84시간에 달했다. 구급요원으로서 월 77회 현장 출동을 하면서 행정 업무도 병행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다.

허술한 화재 진압 장비도 큰 문제다. 지난 2016년 법원은 골수이형성증후군 공무상 재해를 다투는 사건의 판결문에서 ▲소방공무원들이 화재 현장에 투입될 때 착용하는 공기호흡기는 눈·코·입 등의 호흡기만을 보호하고 있어 목과 머리카락 등 나머지는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으며 ▲유해물질의 위험으로부터 소방공무원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화학복 정도인데, 2012년 10월 기준 전국 194개 소방서가 보유한 화학복은 2323벌로, 전체 소방서 현원의 6.6%에 불과하며 ▲그 화학복마저도 절반 이상이 내용(耐用)연수가 경과한 점 등을 지적했다.

이처럼 과로와 유해물질, 위급 현장의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소방관들에게 종종 폐암, 뇌질환, 희소질환 등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공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동시에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근무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 소방관 처우가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대부분이 지방직이라 지자체 예산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 지역의 예산과 재해가 비례하지 않으므로 지역 간 격차는 불가피하고, 그 부담은 온전히 소방관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위해서는 소방기본법 등 네 가지 법률의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 논의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에게는 초 단위의 대응을 요하면서, 필요한 제도 개선은 하세월인 현실이 부끄럽다. 이미 26만이 넘어선 국민 청원, 이 순간도 화염과 사투 중인 소방관들의 간절한 염원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동기획 |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재단법인 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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