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우리동네 혁신가들] ①공유부엌·공유주택·커뮤니티바까지…소셜벤처 ‘블랭크’

우리동네 혁신가들

작은 동네, 구석진 골목들을 찾아다니며 활기를 불어넣는 청년들이 있다. 지역재생, 공유, 소통, 세대공감 등이 이들의 공통 키워드다. 더나은미래는 2019년 신년기획으로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청년혁신가들을 만나는 ‘우리동네 혁신가들’ 시리즈를 시작한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을 만나며 ‘작지만 강한 혁신’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신축빌라와 다세대주택이 모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이곳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는 청년들이 있다. 소셜벤처 ‘블랭크’다. 블랭크는 2013년부터 상도동 내 유휴공간을 공유부엌·공유주택 등으로 탈바꿈시켜왔다. 주민들이 밥 또는 일을 매개로 모이는, 기존에 동네에서 볼 수 없던 공간들이다. 지난 10월에는 네번째 공간인 커뮤니티 바 ‘공집합’도 오픈했다. 동네 주민이 일주일에 하루 바텐더로 나서고, 동네 이야기를 담은 잡지와 굿즈도 판다. 블랭크의 김요한, 문승규(32) 공동대표를 공집합에서 만났다.

소셜벤처 블랭크의 4호 공간 ‘공집합’에서 두 공동대표를 만났다. 왼쪽부터 김요한, 문승규 대표.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상도동은 몇십 년간 한 곳에서 살아온 동네 토박이가 많은 동네예요. 최근 5년 사이에 다세대주택, 도시형생활주택 등이 들어서면서 젊은 층의 유입도 늘고 있죠. 다양한 세대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문승규 대표)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던 문승규 대표는 2012서울 마을만들기 공모전을 통해 상도동과 인연을 맺었다. 주민들과 함께 워크숍을 하고 동네에 공원이나 가로등을 세우는 아이디어로 금상을 받은 것. 이후 아이디어가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인주거환경관리사업으로 실현되면서는 사업 연구원으로 주민들을 만났다. 문 대표는 “연구원 시절 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은 정작 느리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회의감을 느꼈다며 “우리가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상도동으로 이사를 와 공간을 열었다. 블랭크의 1호 공간인청춘플랫폼이다. “서울시 사업 당시 사무실로 쓰면서 주민들과 밥을 먹던 공간이 사업이 끝나면서 비워져 있더라고요. 서로 반찬도 나눠 먹고 밥도 해먹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커뮤니티 부엌을 열게 됐어요.” 부엌이 갖춰진 청춘플랫폼에서 상도동 주민들은 을 먹으며 만났다. 공연이나 전시를 열었고, 함께 밥 먹는 모임, 영화모임, 와인클래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인터뷰 중인 문승규 대표.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공간을 찾는 주민이 늘면서 2015년에는 공유사무실청춘캠프를 열었다. 공간 한쪽은 블랭크가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10여석은 근처에 사는 프리랜서나 디자이너, 1인 기업 등을 위해 저렴한 멤버십제로 운영하고 있다. 공동대표인 김요한, 김지은 대표도 이 무렵 합류했다. 김요한 대표는 프리랜서나 취창업 준비생들이 동네에서 저렴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다양한 업종의 사람들이 모이니 서로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동네잡지나 굿즈를 만드는 등 자연스레 협업도 일어났다고 말했다.

빨리 지치게 되더라고요. 공유공간만으로 큰 수익이 나지 않는데다, 동네에 커뮤니티를 쌓아도 참여했던 분들이 이사하면 관계가 무너지기도 하고요.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까를 고민했습니다.” (김요한 대표)

공유공간의 운영을 위해 블랭크는 외부 설계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구성원 여덟명 중 절반이 건축가 출신이라 가능한 구조다. 블랭크는 서울도시공사(SH)서울하우징랩’, ‘동네 정미소, 서교등을 설계했다. 공간을 이용할 주민들과 참여형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자체 운영공간에서 나오는 수익과의 비율은 5:5 정도다. 문승규 대표는 청년공간이나 지역 커뮤니티 공간 수요가 늘면서, 공공과 민간에서 설계 의뢰가 많이 온다설계 과정에서 주민과 투자자, 운영자 등이 주인의식을 가지게 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인 김요한 대표.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창업 4년차인 2017년에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세 번째 공간인 공유주택청춘파크를 만들면서 동네 주민과 지인들에게 투자를 받기로 한 것. 당시 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한 주민들이 3000여만 원을 투자했고, 3명이 저렴한 임대료로 살면서 창업팀 두 팀이 사무실로 쓸 공간이 탄생했다. 커뮤니티 바 공집합을 만들 때에는 23명이 보증금 1000여만 원을 모아줬다. 투자자들은 2년간 50~300만원을 투자하고, 위스키 킵(keep), 개인 전용 진열장 등 혜택을 얻는다.

공집합의 경우 주민들이 직접 바를 운영하기도 한다. 평상시엔 대표 셋이 공간을 운영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는 투자자 4명이 돌아가며 매주호스트 나잇을 개최하고 있다. 3개월 기본교육을 거치면, 호스트 나잇에서 직접 개발한 메뉴를 선보이거나 좋은 책을 소개하는 등 프로그램을 열 수 있다. 그날 수익의 60%를 호스트가 가져간다. 문승규 대표는 주민 여럿이 펍을 공동 소유·운영하는 영국의 시민자산화 사례를 참고했다며 “바를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간 운영이나 바텐더를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에 기회를 주려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살고 싶은 동네가 있어도 정작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릅니다. 지방 소도시일수록 특히 그런 정보가 부족해요. 블랭크는 앞으로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동네에 살고자 할 때 필요한 모든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가 되려 합니다. 올해부터는 공간을 만드는 매뉴얼을 체계화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팀과 함께 다양한 지방 거점을 늘려가고 싶어요.(문승규 대표)”

커뮤니티 바 ‘공집합’의 위스키 진열장. 각 병 마다 다녀간 상도동 주민들의 이름이 붙어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hon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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