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뭉쳐야 산다’ 소규모 출판사들의 이유 있는 연대

1인 출판사를 비롯한 소규모 출판사가 늘고 있다. 1인 출판사는 직원 5인 이하인 사업장(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기준)을 가리킨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1인 출판사들이 2013년 3730곳에서 2016년 4938곳으로 늘었다.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저비용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것을 소규모 출판의 증가 요인으로 꼽는다. 큰 사무실도 필요 없고 전자책 플랫폼을 활용하면 초기 자본도 많이 들지 않아 창업이 늘고 있는 것일 뿐, 수요나 매출과는 큰 관련이 없으며 여전히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소규모 출판사들이 ‘연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연대의 힘으로 경영적 고민을 덜고 소규모 출판을 위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 지난 9월 한 달간 소규모 출판사들의 연대 움직임을 심층취재했다.

◇지속가능한 출판 위해 뭉친 소규모 출판사들

1인출판협동조합 마포는 2013년 창립총회를 가졌다. 박옥균 대표(앞줄 가운데)와 조합사 대표 단체사진. ©1인출판협동조합

“1인 출판사 붐은 2015년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독립출판이 인기죠. 새로운 형태가 주목받지만 조금 지나면 관심은 시들해지고 맙니다. 출판계 자체가 불황인 데다, 소형 출판사를 위한 환경은 더욱 열악하기 때문이죠. 작은 문제부터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연대가 필요합니다.”

지난 9월 2일 합정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옥균(50) 1인출판협동조합 마포 대표가 전한 말이다. 1인출판협동조합은 1인 출판사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된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서울시 마을기업으로 시작해 지원 자금을 받았다.1인출판협동조합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다. 1인 출판사들에게 당장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출판유통시스템 개선 활동이다.

박옥균 대표는 “일부 성공 신화 강의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라며 “공동으로 종이를 발주하는 것부터 출판 동향에 대한 정보 공유까지, 1인 출판사들이 겪는 사소한 고민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폰트 저작권 문제도 마포구청과 해결중이다. 폰트사와 마포구청이 계약을 맺고, 소규모 출판사들은 싼값에 폰트를 이용하되 폰트 저작사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지역 출판사끼리 연대한 곳도 있다.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이하 한지연)’다. 한지연은 지역 출판과 지역 문화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한국의 출판 산업이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돼 지역 출판이 전국적으로 확대할 수 없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모였다. 조합사는 서울과 파주 출판사를 제외한 50개의 지역 출판사로 이뤄져 있다.

지난 9월 7일 김정숙 여사가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방문했다. 왼쪽부터 최서영 이사, 김정숙 여사, 황풍년 대표. ©한지연

연대를 한 뒤로 눈에 띄는 성과도 있다. 한지연은 수원시와 함께 지난 9월 6일부터 10일까지 ‘2018 수원한국지역 도서전’을 주최했다. 작년 제주에 이어 두 번째다. 한지연 이사이자 수원 마을 잡지 ‘사이다’ 편집장을 맡고 있는 최서영(55) 이사는 “이번 도서전을 통해 수원서점 조합에서 지역출판 도서들을 유통하기로 협약을 맺었다”며 “한국 지역도서전은 지역출판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출판업, 공익적 성격으로 접근해야

“다양성이 생태계의 건강함을 증명합니다.” 박옥균 대표와 최서영 이사가 공통으로 말한 소규모 출판이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다. 최서영 이사는 “대형 서점이 정한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좋은 책이란 인식이 있으나 꼭 그렇진 않다”며 “서울과 파주 중심, 대형 출판업 중심으로 책이 향유되면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진다”고 이야기했다. 최 이사는 “지역출판이 소수만 아는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우린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며 “지역 콘텐츠 역시 전국적으로 소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지연은 지난 9월 6일부터 10일까지 2018 수원 한국지역도서전을 주최했다. © 최혜승 청년기자

소규모 출판 연대들의 활동이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소규모 출판 협동조합과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휴기 상태이거나 “생각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힘든 상황을 겪는 건 1인출판협동조합 마포와 한지연도 마찬가지다. 통합적 도서유통정보 시스템의 미비, 어음 관행 등의 낙후된 출판 유통 구조에는 대형 출판사와 대형서점의 이해가 얽혀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엔 소규모 출판단체의 제반 조건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업계 관계자들은 “유통 시스템을 개선하고 소규모 출판 연대가 지속가능하려면 정부 도움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박 대표는 “소규모 협동조합이 지속 가능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큐베이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풍년 한지연 초대 대표 역시 소규모 출판에 대한 정부의 낮은 이해도를 지적했다.황 대표는 “지역 출판사 책이라면, 최소한 그 지역의 공공 도서관에는 있어야 하는데, 아예 배치가 안 돼 있는 실정”이라며 “지역출판을 위한다면서도 막상 지원은 파주 출판단지에 하는 게 정부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낙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출판에 대한 공공적 접근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도서관과 서점은 공공성 개념으로 접근해 정책 지원을 받았지만, 출판업은 영리적으로만 바라본다”라며 “지역 출판의 경우, 콘텐츠의 원형과 지역 기록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공적 지원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지역 출판 책들이 전시된 모습. ©최혜승 청년기자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민간 차원에서도 정부 지원이 가능한 공익적 성격의 사업을 발굴하고, 소규모 출판업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기구도 활발한 출판산업 진흥 노력을 한다.서점창업개발협회(ADELC0)는 30여개의 출판사가 운영 예산을 대부분을 부담하며, 기존 및 신설 서점을 지원하고 공공기관과도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연대조직인 ‘지역간도서 독서연맹(FILL)’은 지역 출판독서 단체들의 활동과 동향, 각종 지원에 관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백원근 대표는 “공급률 개선, 유통시스템 구축은 소규모 출판사의 존립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출판 수요 창출은 출판계 모두의 과제인 만큼 출판사 규모와 무관하게 네트워크를 확장하거나 공동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혜승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