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이삭·자말·아리프·수니타·조슈아…그들의 웃음 찾아준 편지 2000만통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10주년

지난 2012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희망편지봉사단 어린이들이 지역 아동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 ⓒ굿네이버스

2061만2314통.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의 ‘희망편지쓰기대회’에 지난 10년간 날아든 편지 수다. 희망편지쓰기대회는 국내 초등학생들이 해외 저개발국 빈곤 아동에게 응원의 편지를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굿네이버스는 해마다 도움이 필요한 해외 아동 한 명을 선정해 국내에 소개하고, 학생들은 사연을 담은 영상을 가족과 함께 시청한 뒤 ‘희망편지’를 작성한다. 우수작에는 외교부장관상·보건복지부장관상 등이 수여되며, 사례 아동에게는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지원된다. 지난 2009년 첫 사례 아동인 이삭(아프리카 차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8개국 10명의 아동이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삶을 얻었다.

 

고사리손으로 전한 나눔의 씨앗 ‘벌써 10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작은 정성은 먼 나라에 있는 아이들의 인생을 바꿨다. 지난해 희망편지쓰기대회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필리핀의 조슈아는 불의의 사고로 척추를 다쳤지만,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뿔처럼 솟은 척추 뼈는 조슈아를 제대로 눕지도 걷지도 못하게 했다. 조금만 걸어도 손발이 저려오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그 후로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고작 열세 살. 꿈을 포기하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그런 조슈아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우선 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받아 허리를 곧게 세웠고, 최근에는 재활치료까지 마쳤다. 조슈아 가족에게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은 상점이 생겼다. 한국에서 날아온 응원의 편지는 용기를 심어줬다. 이제 조슈아는 맘 편히 등굣길에 오를 수 있다.

굿네이버스는 해외에 운영 중인 36개국 194개 사업장을 통해 지원받을 아동을 발굴한다. 일찍이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 중에 당장 지원이 필요한 케이스를 선별한다. 지원은 해당 아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족은 물론 현지 학교를 중심으로 아동이 속한 마을 전체를 돕는 식이다.

희망편지봉사단 1기 어린이들과 캄보디아 아동들의 첫 만남 당시 모습. ⓒ굿네이버스

 

“올해도 희망편지봉사단이 갑니다!”

올해는 총 228만여 통의 희망편지가 전해졌다. 이는 전국 초등학생 수(약 267만명)의 85.3% 수준이다. 4회 차인 지난 2012년부터는 매년 200만명 이상이 꾸준히 희망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편지를 보낸 아이들로 꾸린 ‘희망편지봉사단’은 직접 현지를 찾아 문화 교류 행사를 연다. 지난해 희망편지쓰기대회에 참여한 박내영(12)·김가은(11)·오지원(11)양도 지난 2월 필리핀 현지에서 조슈아를 만났다.

“조슈아 오빠도 우리와 만나는 걸 은근히 기대한 눈치였어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어요.”

필리핀을 다녀온 지 벌써 5개월이 지났지만, 지원이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지원이는 “제가 대단한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냥 조슈아 오빠를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굿네이버스 현지 사무소를 통해 연락이 닿은 조슈아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조슈아는 “한국 친구들이 건넨 첫 마디가 ‘hello’였는데, 많은 대화를 하지 않고 웃고만 있어도 좋았다”면서 “무엇보다 친구들이 걱정해주는 걸 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제4회 희망편지봉사단(2012년)의 조윤서(당시 7세) 군이 동갑내기 친구인 헨드릭과 ‘구멍 난 바가지로 물 옮기기’ 놀이를 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희망편지 그 후, 일상부터 바뀐 아이들

희망편지를 쓰면서 아이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게 됐다. 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며 한 뼘 성장했다. 가은이는 희망편지쓰기대회 이후 생활이 바뀌었다. 어머니 심현미(40)씨는 “가은이가 편식을 하는 동생에게 ‘너도 같이 갔었더라면 절대 음식을 가리진 않을걸?’ 하고 핀잔을 주는데, 전에는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내영이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등교하는 것조차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회 이후 아이들은 꿈에도 한 발짝 다가섰다. 가은이는 ‘과학자’라는 막연했던 꿈을 ‘생명공학자’로 구체화했다.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몸이 아픈 친구들도 치료해주고 싶었거든요.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직업이 생명공학자예요. 희소병이나 난치병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일인데, 몸이 불편한 어린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요.”

내영이와 지원이는 외교 무대를 누비고 싶어졌다. 내영이는 “UN에서 일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을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지원이는 “외교관이 돼서 우리나라를 많이 알리고 국가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유혜선 굿네이버스 국내사업본부장은 “남을 돕는 행위는 자아 만족을 넘어 우리 사회를 살리고, 그곳에 소속된 나도 같이 살리는 일”이라며 “아이들이 편지를 쓰면서 느꼈던 감동을 쭉 이어갈 수 있도록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그 작은 씨앗이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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