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현장 출신 두 여성 리더, 사회혁신 위해 의기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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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공공기관 여성 리더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백숙희 코이카 이사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있다. 김인선(58)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과 백숙희(54)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이사의 취임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이 만나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공교롭게 같은 날(7월 9일) 취임했다. 공공기관을 이끌게 된 ‘여성 리더’라는 점,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장 출신’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두 사람이 몸담은 곳이 ‘사회적 가치’를 최전방에서 실천하는 기관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일정을 조율해 인터뷰 날짜를 정했다. 만남의 장소는 소셜벤처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로 낙점했다.

지난 18일, 마침내 여걸(女傑)들이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호탕하게 웃었다. 예상대로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쏟아졌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싫어하는 성향, 일단 부딪치고 보는 패기,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쾌활함….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았다. ‘초면’인 두 사람이 ‘동지’가 되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백숙희(왼쪽) 코이카 이사와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최초’라는 테이프를 끊은 두 여성 리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같이 인터뷰하자고 했을 때 꺼려지진 않았나요.

(김인선·이하 ‘김’)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어요. 취임 이후에 인터뷰를 몇 번 했기 때문에 비슷한 기사가 나가는 것보단 새로운 형식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백숙희 이사가) 워낙 현장에서 단련된 분이시고, 저도 그렇고…. 같이 앉혀 놓기만 해도 이야기가 술술 나올 것 같아요.”

(백숙희·이하 ‘백’) “원래부터 누가 제안을 하면 ‘Yes’부터 하고 보는 성격이라 망설임은 없었어요. 솔직히 이런 만남을 기다려왔죠. 여성 리더는 외롭고 고독하거든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을까’ 늘 의심하죠. 사업적인 고민은 물론이고, 일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충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어요.”

백숙희 이사는 1991년 코이카 출범 이후 27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여성 이사’다. 코이카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진행하는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 백 이사는 코이카 창립 멤버로 출발해 개발기획제도팀장, 보건의료팀장, 민관협력실장, 경영관리부장, 캄보디아사무소장, 경제개발부장, 고객만족센터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코이카는 여성이 높이 올라가기 어려운 조직이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조직 내 달라진 여성의 위상을 실감하시는지.

(백) “코이카가 올해 초 발표한 10대 혁신과제 중에는 ‘여성 임원과 보직자 비율을 5년 안에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직의 긴 역사를 생각하면 이제야 첫 여성 이사가 나왔다는 게 놀라운 일이죠. 아쉬운 점은 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1호’ 여성 이사 탄생은 늦어졌지만, ‘2호’가 나오는 데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해야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2010년 설립된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사회적기업 인증과 육성 등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 전반을 지원하는 곳이다. 김인선 원장은 진흥원 역사상 ‘첫 현장 출신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 서울시동부여성발전센터 대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사회적경제전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장 출신’ 진흥원장에 대한 ‘현장’의 기대가 무척 높다고 들었습니다.

(김) “우리나라에 사회적기업이 막 생겨나던 2000년대 중반 사회적기업을 시작했어요. 직접 해봤기 때문에 현장의 고민이 뭔지, 진흥원의 문제점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이 진흥원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죠. 진흥원은 정부와 사회적기업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기관인데, 소통이 안 되면 그 누구도 이어줄 수가 없어요. 현장과의 소통이 잘 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자기성찰을 하겠습니다.”

◇”당장 같이해봅시다!” 인터뷰하다 말고 의기투합

―현장에 있을 땐 어땠나요.

(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소셜벤처 등 사회적경제 현장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잠잠한 날이 하루도 없죠. 늘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어요. 그런 면이 제 성격과 딱 맞았어요. 원래 변화를 좋아하고 반복적인 걸 싫어하거든요. 늘 ‘일탈’을 꿈꾸죠. 이제 진흥원에 왔으니 재미는 좀 덜하겠네요(웃음).”

(백) “저도 마찬가지예요. 궁금한 건 못 참고,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죠. 젊었을 때는 워낙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불합리를 참지 못해 상사와 싸운 적도 많았어요(웃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워요.”

백숙희(왼쪽) 코이카 이사와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현장이 재밌긴 하지만 힘든 점도 있었을 텐데요.

(백) “2000년대 초반에 캄보디아사무소장으로 일했어요. 말이 사무소장이지 ‘일인사무소’였죠. 거기서 맨땅에 헤딩하듯 혼자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그중에서도 ‘농촌개발사업’이 기억에 남아요.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 2만 달러, 우리 돈으로 2000만원씩 지원해주는 사업이었죠. 그전까지는 코이카에서 사업을 할 때 단순히 마을에 뭘 지어주거나 만들어주는 식으로 했는데, 그땐 좀 색다르게 지역 주민들에게 맡겨보기로 했어요. 솔직히 ‘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웬걸, 토론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청소라곤 안 하던 사람들이 도로를 쓸고 닦는 걸 보며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사람이 변하면 마을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는 걸.”

(김) “사회적기업을 운영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잡상인’ 취급을 받을 때였어요. 아무리 훌륭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이라 해도 일단 영업을 뛰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회사가 창출하는 공공의 가치를 설명하기도 전에 내쫓기는 일이 많죠. 사회적기업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절실히 느꼈어요. 사회적기업에 대해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야 종사자들이 일하기 쉬워지고, 이쪽 분야도 더 발전할 수 있어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도전하는 청년들, 제3세계 지원을 고민하는 혁신가들의 꿈은 환영받아 마땅합니다.”

김인선 원장의 이야기를 열심히 받아적던 백숙희 이사가 펜을 멈추더니 ‘깜짝 제안’을 했다.

(백) “그런 건 코이카와 같이해보면 좋겠네요. 개발도상국에 도움되는 일을 하는 사회적기업을 추천해 주시면, 코이카가 현지에서 기업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거죠.”

(김) “너무 좋습니다. 한 가지 더.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이 현지에 들어갈 때 그 지역 사람들도 파트너로 합류하면 좋겠어요. 훨씬 지속성 있게 사업이 이어질 수 있거든요.”

(백) “해외에 퍼져 있는 우리 코이카봉사단을 대상으로 각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건 어때요?”

(김) “공모전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진흥원에서 인큐베이팅해 사회적기업으로 키워볼 수 있죠. 진짜 해볼까요, 우리?”

척하면 착.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여걸들의 수다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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