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여성 현주소, 비영리단체 상위 17곳 분석해보니…
“수년간 비영리 여성 종사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러나 규모가 큰 조직을 이끄는 건 대부분 남성이다. 전체 직원 대비 여성 비율만 늘어나는 것도, 여성 리더십 비율이 낮은 것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나오미 레빈 전 뉴욕대 헤이만 필란스로피·펀드레이징 센터장(Heyman Center for Philanthropy Fundraising)의 말이다. 2000년부터 헤이만 센터를 15년간 이끌었던 그는 2014년 미 비영리 전문지 ‘크로니클(Chronicle)’과 함께 ‘NPO의 유리장벽’을 짚는 연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 644명 중 71%가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CEO가 남성이라고 응답했고, 69%는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낮다고 했다. 또한 고위 관리직에 여성보다 남성을 우대한다’는 답변도 44%에 달했다. 임금 격차도 드러났다. 미국 가이드스타가 매년 발행하는 ‘비영리 영역의 성별 임금 격차’ 보고서(2016년 기준)에 따르면 같은 직급인데도 여성이 남성보다 최대 77%까지 적은 임금을 받았다.
한국 비영리단체의 현주소는 어떨까. 국내에선 비영리 영역의 젠더 및 다양성 연구가 전무한 상황. 이에 더나은미래는 기부금 규모 상위 20곳(의료·학교 법인 제외)의 직급별 남녀 성비를 분석했다(직원 수가 10명 미만인 단체는 제외). 기아대책, 홀트아동복지회, 승가원을 제외한 17개 단체가 설문에 응답했다(2016년 국세청 공시 기준). 이들의 총 기부금 규모는 약 1조4550억원에 달한다.
◇직원 67% 여성… 이사진은 27%에 그쳐
설문에 응답한 비영리기관 17곳(산하시설 포함)의 임직원 수는 총 9738명. 그중 여성은 6528명으로 전체 종사자의 67%를 차지했지만, 직급이 오를수록 그 비율은 현저히 낮아졌다. 중간관리자(팀장급) 770명 중 여성은 46%, 본부장·부서장·사무총장·대표를 포함하는 경영진은 39%에 그쳤다. 특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대한적십자사·밀알복지재단의 경우 여성 비율이 60%인데 반해, 경영진급 고위 의사 결정자는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굿피플인터내셔널 역시 직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61%)이지만, 경영진은 모두 남성이었다. 굿피플 관계자는 “단체 내 ‘유리천장’을 막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비영리단체 최상위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진은 성비 불균형이 두드러졌다. 비영리단체 17곳의 여성 이사 비율은 27%로 나타났다. 굿네이버스·한국컴패션·아이들과미래재단·밀알복지재단·굿피플인터내셔널의 여성 이사진은 10%에 불과했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국제단체의 경우 이사회 내 성비 균형을 중시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옥스팜은 여성이 국제 본부 회장을 맡고 있고, 국내 이사회의 여성 비중도 8명 중 각각 5명, 5명 중 3명으로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었다. 한편, 월드비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여성 이사 비율은 40%대였다.
여성이 사무총장 및 대표직을 맡고 있는 단체는 5곳이었다. 3월 초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직을 사임하면서, 김명자 부회장(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회장 대행으로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2016년 취임한 양진옥 굿네이버스 회장은 1995년 굿네이버스 공채 1기 출신이며, 송복순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상임이사 역시 초창기 단체에서 장학사업을 진행하다가 10년 만인 지난 2014년 최고 책임자로 복귀했다. 지난해 10월 사무총장 직제를 도입한 해비타트는 손미향 사무총장을 선임했고, 지경영 옥스팜코리아 대표는 서울 사무소를 오픈한 2014년부터 대표직을 맡고 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세이브더칠드런, ‘여성 강세’ 두드러져
‘여성 강세’가 두드러진 곳도 있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가 대표적이다. 현재까지 상임이사, 사무총장, 이사장을 역임한 최고 책임자 9명 중 8명이 여성이었다. 팀장 및 경영진급 여성 비율도 각각 88%, 100%에 달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는 ‘빈민 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강명순 목사(현 이사장)가 1986년 설립한 탁아방에서 출발, 빈곤 아동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단체 관계자는 “설립 초기부터 강명순 이사장이 자녀 외에도 갈 곳 없는 산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보면서, 조직 내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며 “국내에 출산휴가·육아휴직이 없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가족 친화적인 조직 문화가 여성 리더들을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여성 직원 비율이 76%, 경영진급 여성도 78%에 달한다(서울 사무소 기준). 오히려 조직의 다양성을 위해 남성 직원을 적극 채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비영리섹터 전반에 존재하는 급여 수준의 한계로 남녀 성비를 맞추는 게 쉽지 않다”며 “과거 여성 5명당 1명에 불과했던 남성 비율을 최근 3명당 1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했다.
◇유연 근무·난임 휴직으로 女 이탈 막는다
비영리섹터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설문에 응답한 단체들은 “여성을 위한 양육 및 유연 근무 제도”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실제로 여성 비율이 높은 단체들은 양육 시기에 유연한 근무가 가능한 사내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여성 직원이 80%에 달하는 아름다운재단은 2011년부터 7년째 ‘자율 출근제’를 시행 중이다. 그해 3월 조직 내부에서 개최한 ‘이노베이션캠프’에서 채택된 아이디어를 사내 제도로 정착시킨 것.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당시 여성 간사 6명 중 아이를 키우는 4명이 출근 시간이 탄력적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아이디어를 심사하는 두 명의 이사진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터라 간사들의 고충을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덕분일까. 현재 아름다운재단의 팀장급 여성 비율은 70%이며, 여성 경영진도 67%에 달한다.
컴패션도 2014년부터 ‘선택적 근무 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 업무 집중도가 높은 오후 1~5시를 제외하고,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일주일에 40시간 근무 조건만 채우면 된다. 태아 검진 시부터 출산 이후까지 단계별 육아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활용법도 상세히 명문화했다. 난임·불임으로 어려움을 겪는 직원은 특별 휴직도 가능하다.
컴패션 관계자는 “단체의 비전이 ‘어린이의 건강한 양육’인 만큼, 직원 개인의 삶에도 이러한 가치가 접목되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전 직원의 절반 이상이 남성인 해비타트의 경우 “남성들의 육아 휴직도 적극 독려하며, 실제 휴직한 직원도 있다”고 전했다.
주선영∙박민영∙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