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춘천에 문화 숨통을 틔웁니다, 영상문화공간 ‘일시정지시네마’

“더 랍스터(2015)라는 유럽 SF 판타지 영화 예고편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2015년 제68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도 수상한 영화인데, 너무 보고 싶은거에요.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서울에는 그나마 상영하는 곳이 있지만 춘천에는 전혀 없더라고요. 그 영화가 공식 개봉한 다음날 결심했어요. ‘춘천에 이런 영화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하고요.”

일시정지시네마 유재균 대표 ⓒ권병수 청년기자(청세담 7기)

‘영화광’이었던 유재균(28) 대표가 춘천에 소규모 극장, 일시정지시네마를 만든 이유다. 일시정지시네마는 단편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영화관. 비슷한 규모의 영화관은 전국 손꼽아도 다섯 곳. 서울과 대전, 광주 같은 ‘광역시’ 급에나 있는 소규모 영화관을 인구수 28만 작은 도시 춘천에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춘천 내에 멀티플렉스만 해도 세 곳, 상영관은 20곳이 넘어요. 그런데 단편영화나 예술영화, 독립영화 틀어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던 거에요.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누릴 선택권 조차 갖지 못하는거잖아요. 이곳 강원도 춘천에서 이런 문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저 말고도 분명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곳이 없다면 제가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죠.”

춘천 한 켠, 18석 작은 영화관’이 들어서다

지난해 9월, 1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일시정지시네마’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도심 번화가에서 도보 15분 거리, 춘천시 운교동 한 초등학교 건넛편 건물 1층과 지하층이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1층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매표소와 세미나실에서부터 지하 1층 18석의 지하 상영관까지, 있을 건 다 있는 이곳. 장소 선정부터 배선 작업, 내부 인테리어까지 모두 유 대표의 손을 거쳤다.

18석의 지하 상영관 ⓒ권병수 청년기자

“이곳이 춘천의 번화가와 그렇게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아요. 원래는 강원대학교 후문에 만들고 싶었는데, 월세가 3배 가까이 차이가 나더라고요. 고민하던 중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지하가 있다는 매물을 보고 구경 왔다가 바로 가계약했습니다. 지하실에 상영관을 만들면 방음처리를 할 필요가 없잖아요(웃음).”

일시정지시네마에서는 단편영화를 2000원, 장편 독립/예술 영화를 8000원에 볼 수 있다. 매주 영화를 보고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시정지시네마필’, 하나의 주제로 영화를 기획해 상영하는 ‘또떼미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 ‘퍼즈그라운드’ , 전시회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문화 갈증을 느끼는 대학생들, 영화 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났다. 이제는 강원도 시네필(영화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사랑방’이다. 단골 팬도 생겼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이는 매표소 ⓒ권병수 청년기자

“강원도 홍천에서 매주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오시는 분도 있고요, 과거에 연출 일을 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시는 한 분도 재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오세요. 그럴때마다 이런 공간을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죠.”

쉽지 않은 운영, 문화를 공기처럼 누리는 날 까지

지역내 소규모 예술영화관을 운영한다는 것, 물론 쉽지 않다. 유 대표는 “부업으로 영상제작일을 한다”고 했다. 영화관에서 나는 수익으로만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 그가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수익모델을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려워요. 한 달에 평균 단편영화를 100건 정도 틀거든요. 그럼 20만원 정도 버는데, 그 중 10만원이 배급료로 나가요. 10만원으로 영화관을 유지하기 힘들죠. 당장은 영상제작하는 일을 부업으로 해서, 그 돈으로 영화관을 먹여살리는 구조에요(웃음).”

쉽지 않은 상황, 그가 일시정지시네마를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유 대표는 “이것 자체가 일종의 문화 퍼포먼스이자 저항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 자료를 보니까 강원도가 영화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라고 하더라고요. 200석짜리 영화관에 독립영화를 틀면 3~4석 차는 일이 허다하니까, 결국은 수익이 많이 남는 영화 위주로 틀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문화라는 건 인프라가 갖춰져야 누릴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선 서울과 지방간에도 격차가 크고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제 나름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대학 이후로는 춘천에서 쭉 살았다는 그는 강원도 토박이다. 디자이너가 되려고 입학했던 학교에서 영화라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18석 작은 영화관. 그가 이곳을 통해 그리는 그림은 무엇일까.

“제가 대학때 봤던 영화가 삶을 바꿨어요. 한 교수님이 재미있는 만화 영화 하나 보여준다고 하시면서 영상을 틀어주셨는데, 그게 체코의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 작품이었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애니메이션의 틀을 완전히 깨버렸던 시간이었어요. 그 작품을 보고나서, 말이나 글이 아니라 영상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찾아보게 됐고요.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다양한 문화예술을 찾아가 보고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 다른 사람들의 삶이 있거든요. 그럴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는 게 아닐까요?”

권병수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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