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촌 장자마을을 가다_”고통받던 병력자 일으켜 세운 건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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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공장 건물들 사이로 선명한 붉은색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행복’. 길가로 흘러나온 경쾌한 멜로디가 글자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음악 소리에 이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에서 하나, 어깨에서 둘, 무릎에서 셋!”신나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보였다. 경기도 포천시 신평3리에 위치한 장자마을 ‘행복학습관’은 ‘터치댄스’를 배우는 이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경기도 포천시 신평 3리에 위치한 장자마을. 이곳엔 차별도, 선입견도 없다. 한센 병력자와 일반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이곳은 사회적인 병인 한센병을 사회 속에서 치료하는 따뜻한 마을이다.
경기도 포천시 신평 3리에 위치한 장자마을. 이곳엔 차별도, 선입견도 없다. 한센 병력자와 일반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이곳은 사회적인 병인 한센병을 사회 속에서 치료하는 따뜻한 마을이다.

장자마을은 과거 한센병(일명 나병)을 앓았던 ‘한센 병력자(이하 병력자)’들의 정착촌이다. 사연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정호수 근처에서 움막생활을 하던 30가구의 병력자들은 ‘유원지에 문둥이들은 살 수 없다’는 주민들의 반발로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3리에 위치한 장자마을이었다.

“너무 삭막했어요. 허허벌판에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암 선고보다 더 가혹했다. 당시 나이 19살, 한센병에 걸렸단 사실을 알게 된 최순학(54) 씨는 수면제를 사다 놓고 하염없이 울었다.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 병력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기 생계수단은 축산업이었습니다. 신경이 마비돼 손이 일그러진 상태라 정상적인 노동은 불가능했죠. 양돈 규모도 작고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쌀도 얼마 안 가 바닥나고 말았어요.”

정유진기자_사진_장자마을_이웃_2011한센병에 한 번이라도 걸렸던 사람은 1만3316명(2010년 기준)으로 이들이 모여 사는 정착촌은 전국에 총 91개가 있다. 그 중 80% 이상이 축산업으로, 20% 미만이 공장임대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장자마을은 1994년부터 공장임대업을 시작했다. 가뭄 때문에 지하수가 말라버려 가축을 키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축사를 무단으로 용도 변경해 무허가 염색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공장은 80여 개까지 늘어났지만 폐수를 방출하고 법을 어겼단 이유로 병력자들 상당수가 6개월 이상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대 초에는 많은 공장들이 인근에 조성된 양문산업단지로 이주해갔고, 공장이 30개로 줄어들면서 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져갔다.

그런데 최근 장자마을이 한센촌의 모범 케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 교육, 미래가 함께 하는 마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150명의 주민들 중 병력자는 32명에 불과하다. 병력자와 같은 피해를 입으며 살아온 가족 세대 67명을 제외한다 해도, 한센병을 한 번도 앓아본 적 없는 일반인이 51명이나 된다. 그럼에도 이곳엔 차별도, 선입견도 없었다. 과거에 어떤 병을 앓았는지, 몸에 어떤 상처가 남아 있는지 이를 묻거나 관찰하는 이도 없었다.

가톨릭대학교 한센병연구소장 채규태 교수는 “전국의 모든 정착촌을 다녀봤지만 장자마을처럼 마을 주민들이 한센 병력 구분 없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마을 주민들이 한센병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센병은 감기나 결핵에 비해 전염성이 매우 약한 질병입니다. 물론 유전되지도 않고요. 일 년에 평균 10명 이내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1/500만 명)하니 전염의 위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치료도 쉽습니다. 라팜피신 1회 복용만으로 99.9%의 균이 죽고 전염력이 사라집니다.” 장자마을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윤순 (33)씨는 마을에 들어온 뒤 그동안 가졌던 편견이 사라졌다. “사람이 그리운 분들입니다. 친자식처럼 어찌나 따스하게 대해주시는지 몰라요. 한센병이 어떤 병인지 알기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근무를 나갈 때 병력자 분께 제 아이를 맡기곤 한걸요.”

정유진기자_사진_장자마을_행복학습관_2011전국에 있는 한센촌 중 평생교육이 제일 처음 실시된 곳도 장자마을이다. ‘경기 행복마을 만들기’의 첫 번째 사업으로 지난해 6월 24일 건립된 ‘행복학습관’에선 노래교실, 한글교실, 컴퓨터교실, 댄스교실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된다. 장자마을 합창단 한경숙(58)단장은 ‘노래교실’을 통해 희망을 되찾았다. “외부 요청을 받아 합창을 나갔는데 무대 위로 박수가 쏟아지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환영을 받는 게 처음이라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어요.”

이뿐만 아니다. 장자마을이 속한 경기도 포천시 신평3리에는 전국 91개 정착촌 중 최초로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임진강 유역 배출시설 설치 제한 고시’가 개정되면서 환경 오염원으로 지목됐던 염색공장들이 합법화됐다. 게다가 환경부가 602억원, 국토해양부가 259억원을 들여 산업단지 조성 지원을 약속했고, 극동건설이 단지 조성을 돕기로 했다. 경기도와 포천시는 전담 인력을 배치해 지원하고 있다. 장자마을 이장 최종국 씨가 감격을 전했다. “병력자들이 공장임대업을 한다고 하면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로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산업단지가 조성될 땅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결과입니다. 편견으로 인해 상처받고 무너졌던 병력자들의 새 출발을 응원해주세요.”

한센병은 사람이 키워낸 사회적인 병일 뿐 더 이상 일반인들이 두려워할 전염병이 아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사회적인 병을 치료하고 있는 장자마을처럼 차별 없는 땅에서 희망이 자라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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