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전 NHN한게임 대표, 사재 25억원 출연
창업 5년 만에 발달장애인 200명 고용하는 ‘꿈의 기업’으로
국내 등록 발달장애인 수는 20만명을 넘어섰지만, 이들이 사회에서 일할 환경은 열악하다.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지적, 자폐성 장애인) 18만596명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4만2508명으로, 약 23%에 불과하다(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 2016). 특히, 자폐성 장애인의 고용률은 17%로 15개 장애유형 중에서도 후순위에 그친다. 사회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고용 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오로지 ‘발달장애인 고용’이 목표인 회사가 있다. 전체 직원 240명 중 84%(201명)가 장애인이며, 그 중 지체장애 2명을 제외한 199명이 모두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이다. 게다가 베어베터에서 고용하는 자폐성 장애인은 68명에 달한다. 지적장애인 인구가 자폐성 장애인보다 10배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취업 사각지대인 자폐성 장애인 고용에 유독 강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임금은 어느 수준일까. 하루 4시간 근무하는 장애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월 67만6115원(2017년 기준). 개인의 능력과 근로 의지에 따라 8시간 근무하는 직원들도 14명이 있다. 물론, 4대 보험과 퇴직연금도 지급한다. 창업한지 5년 만에, 발달장애인 200명을 고용한 회사. 서울 성수동 아파트형 공장 8층에 자리잡은 ‘베어베터(BEAR.BETTER)’ 이야기다.
베어베터는 김정호 전 NHN한게임 대표가 2012년 사재 25억원을 투자해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고용해 제과나 인쇄물을 기업에 판매한다. 발달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일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김정호 대표가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회사 동료였던 이진희 전 NHN 이사 때문이다. 현재 베어베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진희 대표의 둘째 아이가 자폐성 장애을 가지고 있었던 것. 2010년 이진희 대표는 임원직을 그만두고, 2년간 아이를 돌보며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서 활동을 했다.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터, 이진희 대표의 고민이 김정호 대표의 마음을 울렸다. “정말 필요한 것은 일자리입니다.”
베어베터는 어떻게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었을까. 이들이 선택한 솔루션은 ‘장애인 연계고용제도’였다.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르면 50인 이상 근무하는 기업은 장애인 직원을 의무적으로 2.9% 채용해야 한다(2017년 기준). 하지만, 기업들은 중증장애인 1명을 채용하면 2명으로 인정해주는 ‘더블카운트’제도가 있음에도, 고용 대신 벌금을 낸다(발달장애인은 중증장애인에 속한다). 2015년 100대 기업 중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킨 기업은 22곳에 불과했고, 100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 낸 부담금은 956억 2600만원에 달했다. 만약,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기업이 장애인표준사업장이나 자립작업장에 생산품 판매를 맡기거나 도급을 준 경우, 장애인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 부담금을 감면해준다. 일종의 ‘간접고용’ 형태다. 베어베터가 이렇게 연계고용 협약을 맺은 기업이 네이버, 다음카카오, 이베이, 티켓몬스터, SK하이닉스, 대림, 에르메스 등 200여곳에 이른다. 거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야하다보니, 인쇄, 명함부터 커피, 제과·제빵, 화환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이 확대됐다.
베어베터의 핵심 생존 전략은 ‘매출비례고용’이다. 장애인을 고용해야하는 기업, 일할 기업이 필요한 장애인을 연결했지만 ‘연계고용제도’에는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맹점이 있었다. 기업의 고용부담금을 계산하는 방식이 베어베터 매출이 늘수록 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되고 있었던 것. 고용부담금은 월 감면액 공식(도급률 X 연계고용가능 장애인수 X 부담기초액)에 따라 책정되는데, 도급률은 매출기여도(의무사업자 매출/베어베터 매출)를 말한다. 즉, 베어베터의 매출 대비 의무사업자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월 감면액도 커지는 셈이다. 만약, 베어베터의 영업력이 확장돼 매출이 커진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월 감면액이 줄어든다. 또한, 기업에겐 감면액 예상이 어려우면 거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리스크도 있었다. 베어베터는 이 문제를 ‘매출에 비례해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방식으로 풀었다. 베어베터의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장애인 고용 숫자를 늘려 기업이 감면받는 금액에 손해가 없도록 한 것. 월 매출 325만원 당 중증장애인 1명을 고용한다는 베어베터의 원칙 덕분에, 기업에서는 월 감면액도 예측할 수 있다.
또 하나, 베어베터의 강점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무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쉽게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직무를 단순화했다. 이진희 대표는 “발달장애인에게는 분절된 업무 시스템이 안정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면서 “가능한 일을 쪼개고 분업화한다”고 말했다. 카페에서도 음료를 만드는 직원, 인사 잘하는 직원, 주문을 잘 받는 직원 등 기능에 맞게 업무를 배치한다. 장애 아들을 둔 이 대표이기에 세밀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보조 장치나 설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품질을 좌우하는 부분은 고가 설비로 백업을 한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업무라면 무엇이든 시도한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목표로 하는 회사이기 때문. 지하철 배달 서비스도 그렇게 시작됐다.
“발달장애 아이들을 보면 지하철 노선도에 빠져있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해보고 보호자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그렇더군요. 저희 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지하철 노선도를 다 외워서 그리더라고요. 그래서 시도한 것이 ‘지하철 배달’입니다.”
베어베터는 하루에 100명 이상 지하철을 이용해 배달을 나선다. 위치추적기를 목에 걸고 이동하며, 덕분에 목적지 위치 확인과 길 안내까지 가능하다. 베어베터 직원이 사용하고 있는 위치추적기도 장애인고용공단에 요청해서 개발된 제품이다. 베어베터에서는 수시로 채용이 이루어진다. 베어베터 홈페이지에서 지원서 양식을 다운받아 제출하면, 예상 매출액에 따라 TO를 정하고 면접을 진행한다. 베어베터의 장애 사원들도 3주간의 지원고용 훈련 시간을 가진다. 이 기간에 사업팀을 돌아다니며, 각자에게 맞는 업무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베어베터의 직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다. 혼자 출퇴근이 가능해야한다는 것. 보호자의 도움이 없이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신, 이 대표는 “발달장애인의 일터는 일반 노동자들의 일터와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일반 기업에 취직하면 일반인 1000명 중에 자기 혼자만 다릅니다.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자기랑 편안한 환경도 아닌 데다, 조금만 잘못해도 ‘천덕꾸러기’ 취급받기 십상인 거죠.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이들이 중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