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주식에 투자하세요, 단단한 공동체가 돌아옵니다

英 짐 브라운 ‘공동체 주식 유닛(Community Shares Unit)’ 전략컨설턴트 인터뷰

지역 재개발이 결정됐다. 부동산 업자가 건물을 샀다. 임대료가 치솟았다. 수 십 년을 이어 온, 지역의 ‘사랑방’ 같던 동네 술집이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인수해 함께 운영할 수는 없을까?’

문제는 돈. 은행 대출도, 정부 보조금도 거절 당했다. 뜻에 공감하는 지역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단, 내는 돈은 ‘기부’가 아닌 ‘투자’. 각자의 여력에 맞게 돈을 내고 공동체 기업의 ‘투자자’가 된다. 뜻에 공감하는 다른 이들도 설득한다. 적게는 몇 백 명, 많게는 몇 천명이 넘는 이들이 힘을 보탠다. 이렇게 모인 ‘자본금’을 기반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이 새롭게 시작된다. 공간을 더 잘 운영할 아이디어나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눈다. 2004년부터 시작돼, 영국 내 협동조합·공동체이익회사(Community Interest Society)의 효과적인 자금 조달 방식으로 떠오른 ‘공동체 주식(Community Share)’이 작동하는 원리다. (동영상 내용 요약) ‘공동체를 위한 기업’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직접 투자해, 리스크는 나눠 지고 혜택을 공유하는 ‘선순환’ 모델인 셈. 

지난달 26일, 경기도 따복공동체 국제컨퍼런스에서 만난 짐 브라운(Jim Brown·사진) 공동체 주식 유닛(Community Shares Unit) 전략 컨설턴트는 “현재 영국 내 700개 이상의 사업 프로젝트가 ‘공동체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참여한 시민도 총 6만 여명에 달하고, 총 6000만 파운드(약 873억 2000만원) 이상의 투자금이 모였다”고 했다. 짐 브라운씨는 영국에서 30년간 이상 협동조합·공동체 기업 교육 및 컨설팅을 해 온 협동조합 분야 전문가다. 그에게 ‘공동체 주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가능한지를 물었다.

-‘공동체 주식’이란 개념이 생소하다. 시민들이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 했는데.

“영국에선 사라질 뻔한 지역 술집, 카페, 슈퍼 중 시민들의 ‘직접 투자’로 살아남은 곳이 늘었다. 태양광이나 조력발전 설비, 유기농 농장, 지역 내 교통수단 등 공동체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기업들 중에도 시민들의 투자를 자본금 삼아 운영되는 곳들도 많아졌다. 

‘공동체 주식’이란 기존 자본시장의 기업법이 아닌, 협동조합이나 공동체이익기업 원칙을 적용한 ‘주식’이라고 보면 된다. 일반 기업이 주식을 발행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듯,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이 ‘공동체 주식’을 발행하고, 시민들이 직접 투자해 주식을 사는 거다.” 

ⓒ주선영

-영국에서는 ‘공동체 주식’에 대한 논의가 언제부터 시작됐나. 배경이 무엇인가.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대출을 받거나, 주식을 발행해 투자금을 조달한다. ‘주식’은 사회적경제 조직과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여겨졌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회적경제 조직은 정부 보조금이나 저리(低利) 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나 공동체이익회사 등의 ‘대출 의존도’가 높았다. 그런데 대출 받은 돈은 기업의 부채다. 투자를 통해 모집한 ‘자기 자본금’과는 다르다. 아무리 이자율이 낮다고 해도 원금 상환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 된다.

대출이나 보조금 방식으로는 협동조합, 공동체이익기업이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하는데 한계가 크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들의 직접 투자를 통한 자본 조달이 대안으로 떠올랐고, 2009년 블레어 총리 내각 지원 하에 이런 자본 조달 방법이 가능한지를 보기 위한 현장 연구가 진행됐다. 이미 시민투자 방식으로 자금을 성공적으로 조달한 곳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모델화’ 해서 다른 곳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봤다. 공동체를 위한 기업에, 공동체가 투자해 리스크를 분담하고 혜택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공동체 주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속한 ‘공동체 주식 유닛’은 ‘공동체 주식’이라는 방식을 널리 알리고, 다른 협동조합이나 기업에서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려는 차원에서 2012년 설립된 기관이다. 중앙정부의 ‘지역사회 및 지방정부를 위한 부서(Department of Community and Local Government)’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

-일반 주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일반 금융시장에서 주식의 최대 목적은 돈을 버는 거다. 또한 한 주당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하니, 대주주 마음대로 기업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 ‘공동체 주식’은 목적 자체가 다르다. 투자 이익이 아닌, 공동체에 필요한 사업을 하는 기업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 투자 금액과 관계없이 모두가 1인 1표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투자금을 뺄 수는 있지만, 투자한 원금 이상 오르지 않는다. 기업이 수익을 낼 경우에는 적정한 정도의 이자를 지불 받는다. 주가 등락에 따라 차액을 노려 투자할 여지는 전혀 없다. 투자 상한선도 있다. 한 명이 최대 20만 파운드(약 3억원) 이상은 투자할 수 없다. 한 명의 고액투자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못하도록 한 거다.”

-성공 사례가 궁금하다.

“영국 사람들에게 ‘축구’는 스포츠 그 이상이고, 정체성의 큰 부분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프리미엄 리그 외에도 약 25만개 이상의 축구 클럽이 있고 휴일이면 영국 전역에서 축구 경기가 치러진다. 그런데 2005년, 미국의 한 억만장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트 풋볼 클럽(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을 샀고,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티켓 가격을 올렸다. 기존 맨체스터 팬들은 분노했다. 축구 클럽은 자신들의 것이고 함께 어울리는 장이지, 돈벌이로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분노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기존 구단의 대안으로 ‘시민들이 직접 소유하는 구단’을 만들기로 했다. 원래 이름을 비틀어 ‘풋볼 클럽 오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ootball Club of Manchester United)’라고 이름 붙였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1500명이 넘는 이들로부터 200만 파운드(약 29억원) 이상의 자금이 모였다. 이 자금으로 지난 10년간 구단을 운영했고, 경기장까지 지었다. 지금도 홈경기 때마다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와서 경기를 관람하고, 3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이 팀은 현재 영국에서 상위 200곳 까지 올랐다. 이 밖에도 지역 양조장, 농장, 카페, 태양광이나 조력발전 설비 등 기업의 형태나 방식도 다양하다. 그 모든 기업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곳이라는 점이다.” (유튜브 ‘comshares’ 채널에 다양한 성공사례가 올라가 있다)

2016 경기도 따복국제컨퍼런스 운영사무국 제공
2016 경기도 따복국제컨퍼런스운영사무국 제공

-시민들이 투자하는 금액만으로 충분한가. 더 큰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시민들이 직접 투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다. 이런 움직임이 더 큰 자금을 촉진하기도 한다. 런던 남동부 외곽 항구도시인 해이스팅스(Hastings) 부두 재건 사례가 한 예다. 해이스팅스는 50년 전만해도 잘 나갔지만 점차 쇠락한 지역이다. 런던 중심부 주택가격이 치솟으면서 외곽으로 밀려난 가난한 이들이 이 곳으로 밀려났다. 마약, 주거문제, 노숙인 등 여러 빈곤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 곳에 있는 부두는 19세기에 지어졌는데, 유명한 밴드들은 이 곳에서 꼭 한번씩 공연을 하고 갔을 정도로 역사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다리를 소유했던 기업이 파산한 뒤로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도시의 흉물이 됐다.

해이스팅스 주민들은 부두 개선을 시의회에 요구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의회에선 수리는 커녕 무너뜨릴 돈도 없다고 했고, 부두는 계속 방치됐다. 지역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던 사람들이 ‘직접 부두를 바꾸겠다’며 나섰다. ‘공동체 주식’을 발행했고, 3000명이 넘는 사람들로부터 95만 파운드(약14억원) 상당의 돈이 모였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지역인 걸 감안할 때, 놀라운 성과였다. 언론에서 다루기 시작하고 선거와도 맞물리면서 정당의 후보자들도 너나없이 ‘부두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결과적으로 15배에 달하는 1420만 파운드(약 207억원) 상당의 자금이 확보됐다. 이 돈으로 부두는 지역 내 문화·관광·수익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사람들의 행동이 기폭제가 되어 정부를 참여시킨 사례다.”

-잘못 운영되거나 유용되면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 ‘공동체 주식’ 성공의 핵심 요소가 있다면.

“자신이 애정을 갖고 있는 공동체를 위한 일이고 직접 투자까지 했다면? 이들은 단순한 주주가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개선점을 찾고, 자원봉사를 한다. 결국은 단단한 공동체가 핵심이다. 1인 1표 민주적으로 운영되기에 자본 수익만 쫓는 기업보다 리스크가 적고, 잘못 운영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의견을 개진하면 된다.

공동체가 단단하고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하다면, 더 많은 이들을 참여시키는 게 핵심이다. ‘공동체 주식’을 발행할 때에는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사업계획서와 문서를 공시해야 한다.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다. 다만 우리와 정부 대표, 금융감독청(FCA)으로 구성된 기술 위원회에서 정기적으로 투명성과 정확성을 감독한다. 우리는 ‘공동체 주식 표준(Community Shares STANDARD)’을 만들어 우수 사례를 홍보한다. 실무자, 일반 시민 투자자, 자금을 모으고 싶은 기업 등을 교육하기도 한다. 성공 사례 핵심을 뽑아 널리 퍼뜨리기 위해 ‘핸드북’도 발간했다. 모든 자료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유한다. 호주에서 ‘공동체 주식’ 관련 자료를 받아갔는데, 최근 관련 법안이 새롭게 마련됐고 ‘공동체 주식’ 개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늘날의 사회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 않나. 런던이든 서울이든 안고 있는 문제는 비슷하다. 과거엔 ‘대기업’,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정체성을 찾았던 이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관계 맺고 사람들과 연대하는 데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한 이들이 늘고 있다. 결국은 지역과 공동체에 답이 있다. 한국 법안을 좀더 들여다봐야겠지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공동체 주식’은 지역·공동체 운동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다.”

수원=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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