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목)

“요양원·위안부 쉼터까지… ‘축복의 꽃’으로 행복 전해요”

꽃 기부

플리의 꽃 기부는 당일 수거, 당일 배송이 원칙이다. /플리 제공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플리의 꽃 기부는 당일 수거, 당일 배송이 원칙이다. /플리 제공

“어머~ 향 좋다. 무슨 꽃이길래 이렇게 향이 좋아?”

봄비 내리는 오후, 습한 공기로 축 가라앉은 병동에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들뜬 표정으로 “혹시 나눠주는 거냐”고 물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윤수아(28·플로리스트)씨가 “그렇다”며 “오늘 있었던 결혼식장에서 가져온 꽃”이라고 하자, 다시 한 번 “어머나!” 환호가 터졌다. 지난 3월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이 분주했다. 결혼식 이후 남은 꽃을 재단장해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꽃 기부’ 프로젝트가 진행된 것. 이날 근처 결혼식장에서 수거된 꽃은 26개의 꽃병으로 재탄생해, 병원 곳곳에 전달됐다.

‘플리(FLRY·Flower Recycling)’는 웨딩꽃을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비영리단체다. 김미라(32) 플리 대표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계기를 자신의 결혼식이라고 소개했다. “결혼식 할 때 꽃에 얼마가 지출되는지 아세요?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 다 버려지잖아요. 한 해 폐기되는 꽃이 4억2500만 송이라니, 짐작이나 가세요?”

찾아 보니 해외에서는 이미 ‘더 블룸 프로젝트(The bloom project)’라는 이름으로 결혼식 등에 쓰인 곳을 호스피스 시설에 보내 희망을 전하는 프로젝트가 확산 중이었다. “결혼식에 허례허식이 심한 우리나라에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낭비를 줄이고, 꽃이 가진 힘을 더 많은 분에게 전하면 좋잖아요. 1년에 30만쌍이 결혼하는데 0.1%면 1년에 300건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웃음).”

지난해 6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지인의 결혼식에 사용된 꽃을 화병 10개와 꽃다발 5개로 만들어 용산구립 노인요양원에 전달했다. 점차 소문을 타면서 꽃 기부나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정동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과 주님의 교회는 주기적으로 꽃을 제공하는 든든한 제휴 기부처가 됐다. “결혼식 시즌이 되니 문의가 늘더라고요. 페이스북에 한 번 소개가 됐는데 그날만 자원봉사자가 200명 넘게 들어왔죠. 관심이 너무 커지자, 지속성을 위해 체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다니던 직장에 사표까지 쓰고, 본격적으로 플리 활동에 매진했다. 매번 자원봉사자를 선착순으로 모집하던 것에서 벗어나, 고정봉사팀 체계도 갖췄다. 지금까지 플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550여명 중 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선발됐다. 서울·경기 권역에 11개, 부산·경상 지역과 대전지역, 광주·전라지역에 1개씩 총 14개의 봉사팀, 150여명의 봉사단원이 꾸려졌다. 김 대표는 “고정팀이 구축되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거한 꽃을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과 작업하는 원예 치료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김 대표는 “원예 치료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기부처에서도 좋아하시고, 자원봉사자뿐 아니라 어르신들의 만족도도 더 높다”고 귀띔했다. 현재 효림원 노인요양센터를 시작으로 용산 구립 노인요양원 등 4곳에서 원예 치료가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노인요양원, 미혼모시설, 호스피스병동, 위안부할머니 쉼터 등 23개의 기부처에 1000개가 넘는 꽃다발이 전달됐다.

최근 김 대표의 고민은 ‘지속 가능성’이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는 분이 늘었어요. 꽃 기부 문화를 확산한다는 점에서 개인 기부자가 굉장히 중요하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기업과의 연계 방안과 별도 법인을 통한 수익 사업도 고민 중입니다.” 현재 자체 예식장을 보유한 기업들과의 협력 방안뿐 아니라, 기업 내부 꽃꽂이 동호회와 함께하거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와 후원금 매칭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꽃이 가진 위로와 활력의 힘을 계속 전하고 싶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웨딩 문화를 바꾸는 데도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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