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여는 메달
[꿈으로 여는 메달] ④ 수영 세계新… 스스로 ‘희망’이 되고 싶어요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꿈으로 여는 메달] ④ 수영선수 조기성군 뇌병변 2급 장애 갖고 태어나 초등학교 짝꿍 여자애가 같이 앉기 싫다고 해 충격 수영대회서 메달 받고 자신감… 하루 1만m 수영 맹훈련 “나도 똑같은 사람인 걸 알았다” 손끝이 ‘터치패드’에 닿았다. 조기성(17·광주고2·뇌병변2급)군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전광판 쪽을 향했다. ’40초11’. 자신의 종전 기록, 그리고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우크라이나의 비노라데츠 선수가 작성한 세계기록(42초60)을 2초 이상 앞선 결과다. 그 순간 방송이 흘러나왔다. “조기성 선수가 한국신기록 겸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고. 지난 9월 30일부터 대구에서 실시된 ‘제3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의 첫째날, 수영 남자 50m 자유형 ‘S3(허리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 등급)’ 경기의 주인공은 단연 조군이었다. 조군은 이 대회에서 (비공식) 세계신기록 2개를 포함 3관왕에 올랐다. 조군을 지도했던 박문배 사회복지법인 SRC재활센터 운영팀 과장은 “같은 등급의 외국 상위 랭커들은 90% 이상이 중도 장애”라며 “중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선수가 이 정도 기량을 내는 것은 희귀한 케이스”라고 했다. 조산으로 태어난 조기성군. ‘배밀이’도 못하고, 보행기도 못 타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그저 “늦되나보다”고만 여겼다. 아들이 뇌성마비인 걸 처음 안 건 13개월째. 조군의 어머니 김선녀(44)씨는 “태어날 때 작은 뇌혈관들이 터져 하반신 기능이 마비됐다고 했다”며 “실감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조군에게 세상은 ‘두려운 곳’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어떤 여자애가 저랑 ‘짝꿍하기 싫다’며 떼를 쓰는 거예요. 나보고 ‘더럽다’고 했죠. 결국 그 여자애는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뜨렸어요. 상처가 많이 됐죠.” 할 수

꿈으로 여는 메달 ③ “불치병이라는 말을 듣자 울음이 왈칵 쏟아졌어요”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꿈으로 여는 메달 ③유도선수 김무영군 앞은 못 봐도 너쯤은 메친다, 이 좌절아 저는 요샛말로 ‘엄친아’였죠 4개 국어와 운동을 잘해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어느날 눈이 캄캄해졌죠 병명은 ‘시신경 위축증’… 친구 따라 유도관에 갔다가 올해 꿈나무 선수 됐어요 내년 아시안게임에 나가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거예요 전남 광양에 사는 김무영(17·서울맹학교·시각장애1급)군은 ‘엄친아’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종격투기’를 배우며 몸을 단련했고, 영어·일본어·중국어를 모두 구사할 만큼 외국어에도 능숙했다. 일찌감치 ‘외교관’이란 꿈도 품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1년도 안 돼 전교 수석을 차지했다. 11월의 어느 날, 갑자기 앞이 컴컴해졌다. 예고도, 징후도 없이 찾아온 시력 저하였다. “마치 가운데 검고 큰 구멍이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구멍은 급속도로 커졌다. “처음에는 주먹만큼 안 보였다면, 2주 사이에 3배 정도까지 커졌다”고 한다. 황망한 마음에 인근 병원을 찾았지만, 검사 결과는 ‘원인 불명’. 앞도 막막하고 미래도 막막했다. 수업도 불가능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엎드려만 있었다. 전교 1등의 돌발 행동에 선생님도, 친구들도 의아해했다. 이듬해 4월, 김군은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정밀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시신경 위축증’이라고 했다. 김군은 대뜸 “어떻게 하면 돼요?”라고 물었다. 어떤 병인지 밝혀졌으니 치료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의사는 말을 잇지 않았다. 김군은 “그때 순간적으로 ‘못 고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원래 멀쩡했으니 나을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5개월을 버텨왔어요. 불치병이라는 것을 안 순간 그 시간들이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정말 열심히

[Cover Story] 꿈으로 여는 메달 ② 수영선수 이인국군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마음의 문 닫았던 소년, 이젠 매일 세상을 향해 헤엄칩니다 자폐 치료하려 시작한 수영비장애인 대회 출전은 물론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은메달 사회성·생활습관도 좋아져 “심리 불안한 자폐 선수… 맞춤형 교육과 감독 필요” 커다란 현수막이 발길을 붙들었다. ‘2013 몬트리올 장애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배영 100m 2위 이인국’. 이인국(17·안산 단원고2·사진)군은 이미 이곳의 자랑이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올림픽 수영장’. 10여 개의 레인을 뒤져 찾아낸 이군은 이마에 빈 캔을 올려놓고 배영 연습 중이었다.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초·중·고교 수영선수들이 훈련받는 이곳에서 이군은 유일한 장애인(자폐성장애 2급) 선수다. 김정임(37·안산시 수영연맹) 코치는 “체격이 좋고 승부욕, 유연성, 부력이 뛰어나다”며 “비장애인 선수들과 비교해도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기대주”라고 했다. 이군은 세상과 단절된 아이였다. 돌 무렵에도 입을 떼지 못했다. 원인을 처음 안 건 일곱 살 때였다. 병원에선 “자폐성 장애가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군은 소풍을 가도, 운동회를 해도 혼자만 있었다. 다른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어머니 배숙희(49)씨는 “행여 아이의 사회성 회복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언어치료, 인지치료를 비롯해서 악기, 운동을 닥치는 대로 배우게 했다”며 “수영도 그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배씨는 아이 손을 이끌고 수영장을 찾았다. “물을 무서워하는 증상이 특히 심했어요. 세수도 제대로 못했고, 머리도 못 감았죠. 목욕이라도 시킬라치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어요. 씻길 때마다 집은 전쟁터가 됐죠.” 처음 한 달은 수영 선생님 품에 안겨 물에 동동 떠다니기만 했다.

[Cover Story] 꿈으로 여는 메달 ①휠체어테니스 선수 임호원군

[더나은미래-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동캠페인] 여덟살, 장애로 축구선수의 꿈은 꺾였지만… 열다섯, 지금 나는 국가대표 꿈꾸는 테니스 선수 사고로 휠체어 타게 된 뒤 운동은 못 할 줄 알았어요 많이 우울하고 힘들었는데 휠체어 테니스 배우면서 장애인 된 후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었죠 유지곤 감독님 도움으로 국가대표랑 같이 받는 훈련… 올림픽 금메달도 꼭 따야죠 “운동할 때 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아… 늘 더 잘하고 싶죠”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아 42개국, 6000여명의 장애인 선수가 참가하는 축제의 장이다. 2002년 부산장애인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이후 10여년 만이다. 하지만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무관심은 그대로다. 지난해 열린 ‘런던패럴림픽’에서 영국 장애인 육상의 인기스타 조니 피콕(20) 선수가 치른 100m 결승전 경기는 630만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영국 단일 스포츠 경기 사상 최고기록이다. ‘더나은미래’는 내년에 치러지는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앞서, 향후 10년간 국내 장애인 스포츠를 이끌어 갈 미래의 ‘수퍼스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침대가 서서히 의자 모양으로 접히자, 상체 아랫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3개월 만에 시선이 닿은 곳. 하지만 소년의 엉덩이 끝에는 다리 대신 철제 보조기구가 달려 있었다. 엄마는 펑펑 울었고, 아빠는 질끈 눈을 감았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여덟 살 소년의 꿈도 그날 함께 날아가 버렸다. 2006년 여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임호원(15·수원 칠보중3)군은 여름방학을 맞아 경남 함양의 외갓집을 찾았다. 저녁식사를 마친 임군은 여느 때처럼 밖에서 축구공을 갖고 놀았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빠뜨린 공을 주우러 뛰던 임군에게 승용차 한 대가 벼락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