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둥이에게 희망의 손길 내밀다

국내 첫 이른둥이 통합 서비스 기관 ‘이화도담도담지원센터’에 가보니 1.5㎏ 미만 아기, 특수치료·부모교육 등퇴원 후에도 이어지는 맞춤형 케어“제발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동휘를 보며 유리가 온통 뿌옇게 될 정도로 울었죠.” 김혜랑(42)씨에게 1월 1일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아들 김동휘(3)군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임신 25주 차 만에 찾아온 산통, 김씨는 자궁 문이 열린 채 이대목동병원에 후송됐다. 880g으로 세상에 나온 동휘는 엄마 소원대로 힘을 냈다.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101일을 견뎌낸 동휘를 처음 품에 안은 날, 김씨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동휘 가족이 넘어야 할 고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비 2700만원 중, 국가의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1000만원 뿐. 퇴원 이후 계속되는 검사와 재활치료는 오롯이 가족의 몫이었다. “산소탱크와 포화도장치, 분유통, 기저귀, 여벌옷….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아기띠로 동휘를 업었어요. 그렇게 광명에서 이대목동병원까지 일주일에 다섯 번을 오갔습니다. 검사 때마다 ‘눈이 안 보일지도 모른다”귀가 안 들릴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말을 들었어요. 그때, 담당 교수님의 소개로 ‘도담도담지원센터’를 만났습니다.” ◇국내 첫 이른둥이 통합 지원 서비스 ‘도담도담지원센터’ 국제구호NGO 기아대책이 설립한 ‘이화도담도담지원센터(이하 도담도담지원센터)’는 1.5㎏미만 이른둥이 가정을 대상으로 의료지원, 육아강좌 등을 제공하는 국내 최초의 통합서비스 기관이다. 한화생명의 후원으로 2013년 이대목동병원에 문을 열었다. 의학적으로 이른둥이는 임신 37주 미만, 몸무게 2.5㎏ 미만으로 태어난 아기를 뜻한다. 도담도담지원센터는 이 중 1.5㎏ 미만으로 태어나는 이른둥이가 교정 나이 두 살이 될 때까지 발달검사, 재활치료, 부모상담 등을

[공감펀딩] 나는 에이즈 아동 440명을 품은 엄마입니다

440명 에이즈 고아들의 엄마, 정하희씨  에이즈 감염률 1위, 아프리카 우간다 아무리아로 향하다 혈혈단신 아프리카 땅을 밟은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나이 오십 넷, 남들은 다들 인생 1막을 끝내고 여유를 찾을 때였습니다. 정하희씨는 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버려진 에이즈 아동 440명의 엄마로 살기로 한 겁니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비포장도로를 7시간 달려야만 도착하는 마을, 아무리아. 우간다에서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이곳에 사는 엄마는 갓난아이가 에이즈에 감염될 것을 알면서도 젖을 물립니다. 당장 굶어죽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아이들은 고아로 남겨집니다. 정씨는 이곳에서 8년째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맨 처음 낯선 땅에 도착한 그녀는 마을 지도자와 교사들을 만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의 숫자는 98명. 그녀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하느냐”고. 먹는 것, 입는 것을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해 고아가 된 아동부터, 마을에서 쫓겨나고 학대당한 아이까지. 세상의 편견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꾸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영양은 물론 마을 응급 매뉴얼까지···에이즈 아동 위해 백방으로 뛰어 면역력이 약한 에이즈 아동들은 감기, 말라리아 감염만으로도 세상을 떠납니다. 2차 감염을 견딜만한 영양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하희씨는 후원금으로 분유·면역을 강화하는 영양제 등을 먹이고, 주민들을 설득해 응급 매뉴얼을 갖췄습니다. 아이들에게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마을 조직이 움직여 아이들을 돌봅니다. 에이즈 중환자를 치료하는

“후원자 만나 재능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뤘죠”

“베트남 아동을 6년째 후원 중인데 실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사진으로만 봤던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운동장을 뛰는 모습을 보니, 실감이 납니다.(웃음)” 전 세계 10개국에서 110명의 후원 아동이 참여한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 경기 첫날이던 지난 6일, 김춘옥(60)씨는 후원 아동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4시 대구를 출발해 아침 일찍부터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 김씨를 포함해 아이들을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1000여명에 달했다. 가장 먼저 케냐와 경기를 치렀던 페루의 하롤(14)군은 “1대0으로 졌는데도 너무 행복하다”고 웃었다. 그는 “한국에서 난생처음 비도 맞아보고 푸른 바다도 봐서 무척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오랫동안 도와준 후원자를 만나 재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경기 후 일대일로 만난 후원자 44명과 후원 아동들은 같은 날 저녁, 서울시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희망월드컵 개막식에서도 함께 손을 잡고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입장했다. 9년째 케냐의 클린턴(14)군을 후원해온 황동일(41)씨는 “말은 안 통해도 함께 밥을 먹고 손을 잡으니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따뜻하고 가슴 뭉클하다”고 말했다. 특히 개막식에선 출전 선수들이 국가를 초월해 두 팀으로 나눠 화합 경기를 갖기도 했다. 드림팀의 골키퍼 펨페로(14)군은 한국 대표 선수인 홍성우(16)군이 첫 골을 넣자, 반대편 골대까지 뛰어가 성우군을 와락 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펨페로 군은 “한 팀이 돼 한마음으로 뛰다보니 어느새 모두 한동네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이 향했다”고 웃었다. 한편 지난 8일 열린 결승전 끝에, 이번 희망월드컵의 최종 우승컵은

우간다에서 온 편지…”축구하는 매일이 새로워요”

한국에 계신 후원자님께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파이어스 오쿠루트(Pius Okurut)예요. 올해 12살이고, 우간다 쿠미(Kumi) 지역에 있는 은예로(Ngero) 초등학교 7학년에 다닌답니다. 사실은 자랑할 일이 있어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거든요. 9월 6일이니까, 이제 50일밖에 안 남았어요. 한국은 어떤 곳인가요? 그곳도 예전엔 우간다처럼 가난했었다고 ‘언티(Aunty)’ 조이가 말했어요. 참, 조이는 2010년도에 한국에서 이곳으로 온 기아대책봉사단이에요. 한국 이름은 이명현이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언티 조이’라고 불러요. 제가 왜 한국에 가냐구요? 축구하러 가요. 전 우간다 대표팀 수비수거든요. 진짜 월드컵은 아니지만,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이 서울에서 열린대요. 케냐부터 브라질까지 10개 나라에서 한국의 후원자님들이랑 결연을 맺고 있는 어린이가 110명이나 모인대요. 벌써부터 긴장되고 기대돼 잠이 안 와요. 우간다에서 축구는 진짜 인기가 많아요. 프리미어 리그가 시작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텔레비전이 있는 식당에 모일 정도죠. 하지만 제 형편에 진짜 축구를 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우리 동네는 전기랑 수도도 제대로 없는 곳이어서 축구용품을 구하기 힘들거든요. 저희 아빠는 3년 전 후천성면역결핍증(HIV)으로 돌아가셨어요. 집에서 기르는 소하고 조그만 텃밭이 우리 가족이 가진 전부죠. 원래 운동을 잘하는 편도 아니에요. 또래에 비해 키도 작고, 몸무게도 29㎏밖에 안 되거든요. 이렇게 조그만 제가 어떻게 희망월드컵 대표팀으로 뛰게 됐는지 궁금하시죠? 조이는 제가 친구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고 했어요. 우간다 대표팀 11명 모두 ‘열심히 하면 누구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의 증거라고요. 희망월드컵 참가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 매일 매일이 새로워요.

호수에 떨어진 물방울처럼…우간다에 축구가 가져온 변화

    지난 5일, 공휴일로 지정된 라마단(Ramadanㆍ이슬람 교리에 따른 금식 기간)의 마지막 날. 한산해야 할 은예로 초등학교가 100명에 가까운 인파로 북적였다.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에 출전하는 우간다 대표팀과 인근 모리타(Moruita) 지역 어린이 축구팀의 친선경기가 열렸기 때문. 모리타 지역 아이들은 원정경기를 치르는 자신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1시간 넘게 걸어서 이곳에 왔다. 응원 열기가 아프리카의 태양보다 뜨겁게 달아오를 무렵, 경기가 시작됐다. 전반전은 빨간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희망월드컵 팀의 우세였다. 큰 키의 조셉(Joseohㆍ17)은 빠르게 파고드는 상대편 공격수의 뒤를 철저히 마크했다. 여성 플레이어인 아포(Apooㆍ14)의 블로킹은 또래 선수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오팀(Otimㆍ14)은 빠른 스피드로 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 상대를 위협했다. 상대의 골문 앞에서 몇 번이나 아슬아슬한 찬스가 날아가고, 숨 막히는 전반전이 0대0으로 종료됐다. 지난 4개월간 아이들의 훈련을 맡아온 코치 오첸(Ochenㆍ22)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라자루스(Lazarus·14), 골문 앞에서 날아오는 공을 쫓아갈 땐 꼭 ‘마이볼(My ball)’이라고 외쳐. 그래야 수비수와 동선이 꼬이지 않으니까. 조셉! 그라운드 안에선 더 크게 이야기해야지. 너는 캡틴이니까 뒤에서 누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수비라인이 부실한지 팀원들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줘야 해. 지미(Jimmy·12)는 상대 팀이 크다고 해서 움츠러들지 마. 우리 팀에는 너처럼 야성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꼭 필요해. 그리고 오파사(Opasa·13), 넌 우리 팀의 스트라이커잖니. 네가 골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뛰어야 해. 알았지?” 팽팽했던 전반전과 다르게 후반전이 시작되고 골은 희망월드컵팀 진영을 맴돌았다. 재정비를 마친 모리타 팀의 공세가 매섭게 이어졌다. 몇 번이나

“혹시 알아요? 세계적 선수가 여기서 나올지?…안정환 희망월드컵 대회장 인터뷰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 대회장 스포츠해설가 안정환 인터뷰“어린 시절, 가난 벗어나기 위해 축구로 성공하겠다 다짐 의식주도 힘든 개도국 아이들도 ‘희망월드컵’ 통해 꿈 펼치길…” “어린 시절, 너무 배고파서 먹을 걸 얻으려고 축구를 시작했어요. 축구하는 동안에는 내가 주변 친구들과 다르다는 생각이나 일상생활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죠. ‘이걸로 꼭 성공해야겠다’는 목표의식도 생겼고요. 제가 축구를 통해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했듯이 ‘희망월드컵’에 참가하는 아이들도 한 번 모든 것을 쏟아부어봤으면 좋겠어요. 축구는 독하고 힘든 운동이지만, 아이들의 삶에 좋은 양분이 될 거라 믿습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거쳐 최근 예능프로그램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포츠해설가 안정환(40ㆍ사진)이 오랜만에 그라운드로 컴백한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올해 처음으로 개최하는 ‘2016 기아대책 희망월드컵’의 대회장을 맡으면서다. 희망월드컵에는 한국을 포함해 네팔, 우간다, 베트남, 브라질 등 전 세계 10개 국가의 어린이 110명이 참가한다. 국가별로 여자 어린이(3인 이상)를 포함한 9명의 주전선수와 2명의 ‘와일드카드’가 한 팀을 이루며, 9월 6일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개막식을 진행한다. 주거ㆍ영양ㆍ교육ㆍ의료 등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 ‘축구’는 어쩌면 시작하기 힘든 운동일지 모른다. 안 대회장 역시 의문을 갖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려면 필요한 장비가 한둘이 아닐 텐데,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환경에서 과연 할 수 있을까?” 평소 가난한 아이들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는 안 대회장에게 희망월드컵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후원을 통해 축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친구들이 함께 모여

악기 배운 지 3년 만에 서울대 입학… 꿈을 찾은 비결

기아대책·GS샵 음악 지원 사업 ‘무지개 상자’ 10년째 1만명 아이들 악기·음악 교육 지원 서울대 음대 입학, 강원예고 합격 성과 거둬…   “39번 입장하세요.” 트롬본을 손에 쥔 학생의 얼굴이 잔뜩 경직됐다. 두 차례에 걸친 100%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단 두 명만 신입생으로 선발된다. 주어진 시간은 3분. 수천 번 연습한 멜로디를 떠올리며 간신히 연주를 마쳤다. “지원자의 90% 이상이 예고 출신이었어요. 재수는 기본이고 다섯 번째 도전하는 경력자도 있더라고요. 내년을 기약하자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너무 기뻐서 옆에 있는 친구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어요.”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비전학교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이솔아(20)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웃어보였다. 이씨는 올해 21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했다. 그녀가 트롬본을 제대로 시작한 지 3년 남짓. 예중·예고를 거쳐 최소 10년 넘게 준비하는 경쟁자들 속에서 맺은 기적이다. 지난해엔 서울대 음대 관악 동문회가 주최하는 전국 관악 콩쿠르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비결이 무엇일까. 이씨는 “10년간 나를 지켜보고 응원해준 ‘무지개상자’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10년간 약 1만명···자신감과 꿈을 찾은 아이들 무지개상자는 기아대책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행복한홈스쿨’ 아동들에게 바이올린·플루트·트럼펫 등 클래식 악기 및 음악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05년 저소득층 아동의 문화·정서 지원 필요성을 느낀 기아대책과 GS샵의 협력으로 시작돼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당시 결식아동이 이슈였어요. 막상 아이들을 상담해보니 ‘배고프다’는 말보단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입을 모으더라고요.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 악기를 지원하고,

‘명품 NGO’ 만드는 게 꿈… 투명성·사명감이 핵심

기아대책 유원식 회장 인터뷰 “출근 첫날, 첫마디가 ‘웃으면 안 됩니까?’였습니다. 직원들 얼굴이 하나같이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허허실실’로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유원식(57·사진) 기아대책 6대 회장이 취임한 지 두 달, 조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회장실은 작은 방으로 옮겨졌고, 식물 한 포기 없던 사무실 구석구석에 나무가 놓였다. 복도와 계단 곳곳에는 간사 자녀들이 그린 그림 액자가 여럿 걸렸다. 1981년 삼성전자 입사 후 HP PSG그룹장,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대표이사, 한국오라클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12년 CEO’ 경력을 자랑해온 그가 돌연 자신의 이력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회장’을 추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설립 25년 사상 최초로 선임된 기업 전문 경영인 출신 회장이 그리는 기아대책의 미래를 들었다. ―취임 후 지난 두 달간 어떻게 지냈나. 전문 경영인에서 비영리단체 회장으로 변신한 소회가 궁금하다. “‘감사’와 ‘행복’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항상 고민한다. 인생의 전반전은 잘하는 일(기업 경영)을 하며 보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페스탈로치(1746~1827·스위스 교육학자)를 존경하고, 커서 보육원 원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소년이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맞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니 무척 감사하다. 기아대책 가족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행복이다. 직원 중에는 이전 직장의 연봉 절반만 받고 온 사람도 있다. 그만큼 일에 대한 사명감과 동기가 강하다. 이사진이 ‘직원들은 간사가 아닌 천사’란 말을 할 정도다.” ―기아대책은 지난 1년간 회장 선임에 무던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24년 동안 회장을 맡아온 고(故) 정정섭

스타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이 희귀병 아이에게 溫情 전합니다

스타 팬클럽의 기부활동 확산 기부금 조성부터 숲 건립까지 다양한 활동 지드래곤 팬은 소모임 만들어 콘서트마다 기부 김재중 팬은 저소득층 학생 위한 장학금 조성 “매년 생일에 선물할 뿐이었어요. 슬슬 회의감이 들었죠. 팬들의 마음을 더 특별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드래곤'(본명 권지용·27·가수 겸 작곡가) 팬 사이트 ‘권지용 서포터즈’의 회원 박유정(가명·29)씨의 말이다. 이 팬 사이트는 2008년 ‘모데라토’라는 기부·나눔 전문 소모임을 만들었다. 초기엔 운영자 10명이 해외 아동 한두 명과 정기결연을 맺는 식이었지만 활동은 금세 확산됐다. “콘서트 때 수만 명의 팬들이 모이는데, 그들과도 함께하고 싶었죠.” 모데라토는 직접 모금 부스와 현수막 등을 제작해 콘서트를 찾는 관객들을 만났다. 첫해는 쌀 기부, 이듬해엔 ‘천원의 기적’이라는 모금 행사를 펼쳤다. “눈이 추적추적 오는데 모금 부스에 사람들 발길이 끊이질 않았어요.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지만, 다른 것도 함께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가수 권지용씨는 난치병 환아에게 매달 100만원씩을 기부하고 있던 팬클럽 모데라토의 소식을 듣고 그 환아에게 5000만원의 치료비를 쾌척했다. 현재 모데라토는 150명의 팬들과 함께한다. 평균 400~50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모으는 콘서트 관객 모금행사를 13번이나 진행했고, 희귀병 환아(서울대어린이병원), 저소득층 중학생(한국장학재단), 해외아동(한국컴패션) 등에 대한 정기후원도 벌써 5년째다. 지금까지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한 금액은 총 1억5700만원에 이른다. 이들과 수년간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푸르메재단의 백해림 모금사업팀장은 “단순히 ‘기부하고 싶다’며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재미있는 것들을 직접 기획하고 다른 팬들과의 연결고리도 만들며 마치 모금활동가처럼 일한다”고 했다. 회원들의 후원금을 정산하고, 사용한

후원금 42억 손실난 K단체, 책임 놓고 갈등 공방

前회장 사후 이사회·사무국 갈등 표면화 42억 투입한 ‘선한이웃병원’ 파산 책임 서로 미뤄 社內 대폭 물갈이… “징계 조치” “보복성 인사” 대립 국내 대표 NGO 중 하나인 K단체(이하 K단체)가 고(故) 정정섭 회장 사후 극심한 내분에 시달리고 있다. 차기 회장으로 선임됐던 김영걸(54) 카이스트 교수는 올 1월 초 자진 사퇴했고, 이후 선교사로 재직 중이던 이성민(57) 캄보디아 지부장이 회장 업무대행이 됐다. 이성민 회장 업무대행은 올 2월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됐고, K단체 5개 법인(사단법인 K단체, 사회복지법인 K단체, (재)국제개발원, (재)섬김, (재)행복한나눔)의 회장이 됐다. 그 과정에서 정 회장 당시 총괄본부장이었거나 회장이었던 이들은 권고 사직을 당하거나 손해배상을 하라는 내용증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지난 1일 윤희구(69) 사회복지법인 K단체 이사장은 언론사에 호소문을 보내 “사단법인 K단체 두상달 이사장은 사퇴하고, K단체는 공공 NGO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K단체 내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42억원 투입된 선한이웃병원, 책임은 누가 지나 이번 사태가 불거지게 된 데에는 42억원이라는 K단체의 후원금이 투입된 ‘선한이웃병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1월 K단체는 CCC(한국대학생선교회) 산하의 ‘아가페의료봉사단’이 단독 운영하던 선한이웃병원에 20억원을 투입하면서 공동 운영을 시작했고, 이후 수차례에 거쳐 총 42억원을 넣었다. 하지만 경영 상황은 계속 악화됐고 결국 지난해 ‘법인회생절차’까지 밟아 현재 운영이 정지된 상태다. 윤희구 사회복지법인 K단체 이사장은 호소문을 통해 “2008년 선한이웃병원에 경영 참여를 결정하면서부터 소란에 휩쓸리게 되었고, 급기야 두상달 이사장과 정정섭 회장은 그 책임을 지기로 했고 차기 이사장·회장이 선임될

해외원조의 문을 연 남자 세상 끝에 희망을 남기다

故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발자취 기아대책 창립멤버로 24년 작년 모금액 1500억 이끌어 “2030년까지 봉사단원 10만명 파견하고 싶어… 청년들 꿈꿀 기회 열어야” 모금보다 사람의 힘 강조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력투구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가장 성공한 사람 아닐까요?” 지난달 28일,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치료 도중 세상을 떠난 고(故) 정정섭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하 기아대책) 회장.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긍지와 자신감을 심기 위해 일생을 전력투구했던 정정섭 회장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편집자 주 “대학 시절부터 멘토였던 윤남중 목사님에게 찾아가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목사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교사가 되면 한 사람 몫밖에 못 하니, 선교사가 되기보단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죠. 한국기아대책을 세우라는 말씀도 함께였습니다. 왜 그때 일제강점기, 6·25 동란을 거치면서 겪었던 굶주림의 기억, 가난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을까요? 나도 모르게 결단의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겠습니다!’라고요.”(정정섭 저서, ‘복떡방 이야기’ 중에서) 기아대책은 1971년 설립된 국제 NGO단체다. 1년에 2000만명이 굶어 죽을 정도로 심각한 지구촌 기아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는 것을 미션으로 한다. 정정섭 회장은 1989년 설립된 한국기아대책의 창립멤버로 24년을 함께했다. 어느 무역회사의 자투리 공간에서 간사 한명과 시작했던 기아대책은 그새 후원회원 43만5207명, 자원봉사자 5만6900명, 기아봉사단 582명(누계 1322명)으로 불어났다. 2005년부터 그는 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기아대책의 발전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