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이 사는 法] “폐쇄적 심사가 ‘가짜 난민’ 만들어…난민, 소수자 문제로 바라봐야”

[공변이 사는 法] 김연주 변호사 “정부는 난민 신청자를 ‘가짜 난민’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봅니다. 법률 상담으로 만난 한 난민 신청자는 ‘내가 난민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벌을 내리는 것 같다’며 고백하기도 했어요. 아시아 최초 난민법 시행국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김연주(33)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를 억압하는 오랜 관행들과 싸워왔다. 그가 난민 분야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건 2013년. 공교롭게도 한국에 난민법이 도입된 해다. 난민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됐지만, 정작 난민을 쫓아내는 불합리한 관행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로 7년째. 난민 분야 하나에만 집중해온 김연주 변호사는 최근 법조공익모임 나우에서 선정하는 ‘2019 청년 공익변호사 대상’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만들어 낸 ‘가짜 난민’ “난민 관련 제도의 문제점은 난민 신청자들의 증언으로 발견되는 게 많아요. 이를테면 난민 인정 사유가 명백해 보이는 케이스인데 심사조차 받지 못할 때가 있어요. 이유를 알아보면 법무부 내부 지침이 바뀌었다는 답변만 돌아와요. 당사자들에게 명확히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내부 지침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 구제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선제 대응도 못 하죠.”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연주 변호사는 ‘난민 인정 심사의 투명성 문제’를 가장 먼저 꺼냈다. 지난 6월 난민인권센터는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고 폐쇄적인 난민 심사 제도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렸다. 김 변호사는 “난민 신청서에 당사자가 직접 쓴 내용과 난민심사관이 작성한 면접 조서가 터무니없이 달랐다”며 “고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을 찾았다고 말했지만, 면접 조서에는 ‘한국에서 일하기

[더나미 책꽂이] ‘서툴지만 혼자 살아보겠습니다’ ‘낯선 이웃’ 외

장애학의 도전 40년 넘게 ‘장애’를 사유해온 김도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가 지난 10년 동안 축적한 ‘장애학’ 연구 성과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저자는 장애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 지적하며, “장애인은 차별받음으로써 장애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신체적 손상이 ‘장애’로 인식되는 건 우생학에 뿌리를 둔 사회적 위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도 더 단결하고 스스로 권리 의식을 높여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장애인이 바뀌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도현 지음, 오월의봄, 2만2000원     서툴지만 혼자 살아보겠습니다 쉬운 단어와 간결한 문장으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소셜벤처 ‘소소한소통’이 펴낸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안내서다. ▲먹기 ▲입기·빨래하기 ▲씻기 ▲정리하기 ▲청소하기 ▲안전하게 살기 ▲재미있게 지내기 등 7개 챕터로 구성돼 있다. 시설을 나와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네 명의 발달장애인이 경험에서 우러난 깨알 같은 조언을 전한다. 소소한 소통 지음, 소소한소통, 1만7000원       낯선 이웃 난민을 주제로 한 기획 기사로 ‘국제엠네스티 언론상’을 받은 ‘한겨레21’ 기자가 난민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오해와 차별, 혐오를 조명했다. 난민이 국내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율을 높인다는 근거없는 믿음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땅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도 실었다. 이재호 지음, 이데아, 1만7000원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성소수자에게 남녀 구분 체계가 지배적인 일터는 지옥이다. 먹고살기 위해선 성 정체성을 숨기는 ‘패싱(passing)’이 불가피하다.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삶을 피하려면, 가상의 이성 애인과의

[모두의법] “종교 활동 금지도 박해” 난민 심사 일관성 유지해주길

로마 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 대상이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도시의 수호신을 경배하지 않아 기존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신앙을 숨겼다면 위해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로마 지하 카타콤에서 몰래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난민 소송에서 법원은 초기 로마제국 기독교인들의 사례를 예로 들며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 활동의 자유’도 포함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제시한 바 있다. “초기 로마제국의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종교 생활을 했다면 사자 밥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로마제국이 기독교인을 박해하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종교를 숨기지 않은 기독교인이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한국 법원에서도 ‘종교 활동에 대한 자유’의 침해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난민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운 결정이다. 작년 한 해만 1만6000명이 넘는 난민 신청자가 있었지만, 50여 명만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이 1%도 되지 않는 셈이다. 법원에서 난민 신청자의 승소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건에서의 원고는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 국적 난민 신청자였다. 법원은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배교 행위’로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과, 십자가를 착용하는 등의 공개적인 종교적 표현과 전도 행위 등도 정부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학살 피해 도망친 지 2년…로힝야족, 교육으로 ‘희망의 불씨’ 살린다

[로힝야 난민촌 이야기] 난민 100만명 육박, 여성·아동이 78%…성폭력·아동실종 등 치안 ‘빨간불’ 굿네이버스, 난민 캠프 지원사업…아동기초학습·여성직업교육 진행 아나르(40·가명)씨는 앞만 보고 내달렸다. 폭격 진동음으로 몸이 흔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2017년 8월 25일. 동이 틀 무렵 미얀마 인딘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과 경찰들은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벌였다. 학살 피해 생존자들은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우리는 평화, 정의, 그리고 미얀마 국적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학살 사건으로 약 9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됐다. 당시 급하게 꾸려진 난민 캠프는 재난 상황만큼이나 열악했다. 구호 물품을 받으려고 몰린 인파에 여성과 아이들이 압사당했고, 성폭력과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매년 우기가 찾아오면 토양 침식, 홍수, 산사태가 일어났다. 이들을 돕기 위해 국제구호단체들이 급파됐다. 현재 유엔을 비롯한 30여 국제구호단체가 주거, 식량, 안전, 교육, 의료 등 분야별로 난민 지원 사업을 나눠 맡고 있다.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난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약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난민촌 10명 중 8명이 여성·아동…안전 문제 심각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머무는 로힝야족은 지난 7월 기준 91만2373명이다. 세계 최대 규모다. 대부분의 난민은 중부 쿠투팔롱(Kutupalong) 인근에 조성된 캠프 1~22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남부 나야파라(Nayapara) 주변에도 5개의 캠프가 있는데, 이곳에도 12만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난민 캠프는 임시 거처다. 10㎡ 남짓한 움막에 4~8명의 한 가족이 산다. 전기는 공급되지 않는다.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식수를 길어오고 땔감도 구해와야 한다. 구호

노르웨이난민협의회 “UN 소속 선진국, 분쟁지역 구호비 3분의 1도 안 내”

“국제연합(UN) 소속 국가들이 국제 구호활동 지원금을 충격적일 정도로 크게 줄이고 있다.” 국제구호 전문 비영리단체 노르웨이난민협의회(NRC)가 17일 UN의 구호활동 축소 흐름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NRC는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상반기 UN 소속 국가들이 구호기관에 전달한 지원금은 필요 금액의 27% 수준에 불과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달성한 35%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구호활동에 필요한 비용은 260억 달러(약 30조5400억 원)다. 하지만 올해 1~6월 UN 소속 국가들이 내놓은 지원금은 70억 달러(약 8조2236억 원)에 불과하다. 구호활동에 필요한 비용은 매년 UN을 비롯한 국제구호단체들이 세계 분쟁 상황을 검토해 산정한다. 국제구호 분야에서는 분쟁 피해 상황이나 필요한 지원 규모를 UN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를 상징적인 수치로 여긴다. NRC는 “UN의 지원금 감축으로 분쟁지역 주민들이 고통 속에 방치되어 있다”며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대신 굶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고, 약만 먹으면 치료 가능한 단순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밝혔다. NRC 조사에 따르면, 현재 지원금이 가장 부족한 나라는 아이티(필요액의 16.3% 확보)다. 이어 카메룬(19.7%), 콩고(24.9%) 등도 지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NRC 측은 “도움의 손길이 가장 절실한 지역에 대한 지원금이 제일 부족하다”며 “시리아에 대한 지원금은 씨가 마를 지경”이라고 말했다. 얀 에겔란 NRC 사무총장은 “국제 사회에 돈이 부족하다거나 분쟁 피해자들을 제대로 돕기 어렵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구호활동에 필요한 돈은 전 세계 군비 지출의 1%에 불과하며, 구호활동 지원금이 줄어드는 것은 부자 나라들이 자국 이익만 생각하는 정책만

[공변이 사는 法] ‘로힝야 학살 보고서’ 만드는 김기남 변호사…”훗날 국제재판 자료로 쓰이길”

[공변이 사는 法] 김기남 변호사 “로힝야 학살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2년이 됐습니다. 문제 해결은커녕 난민을 향한 또 다른 갈등만 생겼죠. 더 늦기 전에 학살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피해 생존자 320명 정도 만났어요. 1년에 네 번 정도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를 오가면서 증언과 자료를 모았죠. 생존자 증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합니다. 가끔 그분들 말씀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말이에요.” 김기남(42) 변호사는 ‘로힝야 학살 기록사업’의 선봉에 있다. 지난 2017년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학살 사건 이후 9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UN은 사망자만 100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3년간 국제분쟁 전문 비영리단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이하 아디) 소속으로 활동하며 피해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모아 마을 단위의 학살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로힝야 사건에 대해 마을별로 기록사업을 벌이는 건 세계적으로도 처음 이뤄지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8개 마을에 대한 학살 보고서를 완성했고, 올해 20개 마을을 목표로 추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7년 8월’ 로힝야 비극의 시작…”증거 소멸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김기남 변호사에 따르면, 2017년 8월말 로힝야 집단학살은 마치 군사작전 펼치듯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의 로힝야 집단 거주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25일. 시작은 인딘과 쿠텐콱 마을이었다. 군인을 태운 트럭이 마을에 몰려왔고,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다음 날인 26일에는 돈팩, 27일에는 춧핀에 총알이 쏟아졌다. 사흘 뒤 뚤라똘리에서는 단 하루 만에 약 400명의 주민이 학살됐다. 김

[공변이 사는 法] 난민법 숨은 공로자…”누구도 대비 못할 상황에서 목소리 내도록 돕는 게 내 역할”

[공변이 사는 法] 황필규 변호사 나이 오십줄에 접어든 중년의 변호사는 마치 소년 같았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51) 변호사는 “공익 분야는 무한대 시장이라서 할 일도 많고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우리나라 공익변호사 1세대로 꼽힌다. 공익변호사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2005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하자마자 공감에 합류해 15년을 보냈다. 당시 공감은 연수원 한 기수 선배 4명이 모여 만든 국내 최초의 공익변호사 단체였다. 공익소송 불모지인 한국에서 국제인권, 난민 활동 영역을 개척해 온 그를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공감 사무실에서 만났다. ◇운명처럼 마주한 ‘난민’, 인생 궤적이 바뀌다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난민은 생소한 개념이었죠. 처음 난민 소송을 시작한 2005년만 해도 관련 판결문이 달랑 두 개밖에 없었으니까요.” 황필규 변호사의 첫 공익 소송은 난민 사건이다. 그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본국에 돌아갈 수 없는 9명의 활동가를 운명처럼 만났다. 난민 신청을 한 건 2000년. 정부는 5년이 지나서야 심사를 시작해 불허 결정을 냈고, 이에 대한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됐다. 2006년 1심 승소,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 확정을 받아낸 건 2008년이다. 변호사가 대리한 난민 사건에서 승소한 첫 사례였다. 이후 국회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난민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리기 시작했고, 여론도 집중됐다. 덩달아 그도 바빠졌다. 지난 2013년 아시아 최초로 시행된 난민법 제정의 숨은 공로자도 황 변호사다. “지난해 예멘 난민 이슈로 한 차례 시끄러웠죠. 난민 활동은 그저 난민을 많이 인정하자는 게 아니에요.

[정연주의 우리 옆집 난민] 작은 소음에도 폭격 공포 느끼는 마야… 전쟁의 상흔은 깊습니다.

[정연주의 우리 옆집 난민]  빛나는 졸업장과 예쁜 꽃다발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선 열네 살 소녀 마야(가명). 사진 속의 마야는 그 어느 때보다 눈이 빛나고 볼이 상기되어 있습니다. 4남매의 맏이로서 아픈 엄마를 도와 집안 살림과 어린 동생들 돌보는 일을 감당하는 마야는 얼마 전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자신보다 어린 학급 친구들과 생활해야 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마야네 가족은 시리아에서 왔습니다. 시리아는 내전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파괴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이지요. 마야 역시 고향 마을에서 수업을 받던 도중, 학교 건물이 폭격을 맞아 도망쳐야 했습니다. 자동차 정비사였던 아빠가 한국에 출장 간 사이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귀국하면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어느 쪽에 강제로 징집을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편 군대에 소속되더라도 다른 편에서 마야 가족에게 보복을 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야의 집이 폭격을 맞아 부서져 버립니다. 마야네 가족들은 외갓집으로 도망갔죠. 다행히 2013년 레바논의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마야와 엄마, 남동생은 아빠가 있는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온 뒤로는 두 명의 동생이 태어나 대식구가 되었지요. 마야 가족들은 언제 폭격당할지 모르는 공포 대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야 가족에겐 고민이 있습니다. 피란길에 이어진 폭격과 총격들로 인해 아직도 마야와 남동생은 자그마한 소리에도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지난해 마야는 치과 치료를 받다가 치료 기계 소음이 폭격처럼 느껴져 공황 상태가 찾아왔고,

[정연주의 우리 옆집 난민] “이거” “네” 밖에 몰라도… 주와드의 유치원 생활은 행복하겠지요?

[정연주의 우리 옆집 난민] “엄마! 나 유치원 가서 친구들이랑 어떻게 놀지? 애들은 내 말 못 알아듣고, 나는 애들 말을 못 알아듣는데….” 2016년생 주와드는 요새 날마다 엄마에게 묻습니다. 주와드는 올해 충주 대림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원래 서울 장한평 인근에서 생활해왔던 주와드네는 지난해 아빠가 충주의 대형 폐차장에 일자리를 얻으며 이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얼마 전 주와드네가 새로 이사한 집을 방문했습니다. 주와드는 우리에게 형 하디의 유치원 졸업 앨범을 한참 보여줬습니다. “이거” “네” 주와드는 두 단어만으로 열심히 형 사진을 설명했습니다. 통통한 볼살이 붙은 얼굴이 세상 진지해서 모두 한참을 웃었습니다. 유치원 생활에 대한 기대와 흥분, 걱정으로 가득 찬 주와드는 형의 모습이 꽤 자랑스러웠나 봅니다. 주와드의 형 하디는 아랍 이주민 자녀가 많이 다니는 서울 군자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 구성원 중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 구사합니다. 충주에서도 하디는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형이 즐겁게 유치원 생활을 하는 동안 늘 집에만 있어야 했던 주와드도 드디어 유치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주와드도 형 하디처럼 잘 해내겠지요? 주와드네가 이런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쳤습니다. 주와드의 아빠는 시리아 내전 상황에서 강제 군대 징집을 피해 아내와 어린 하디를 데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난민 신청 후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고 살던 중, 막내 주와드가 태어났습니다. 주와드의 아빠는 “네 명의 아내, 자녀만 20여 명을 둔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다”면서 “소중한 두 아이에게 누구보다

사회적가치 대두된 한 해…젠더·환경 이슈도 뜨거웠다

‘사회적경제’ ‘사회적 가치’ ‘사회적 책임’…. 올해는 ‘사회적’이란 단어에 유독 힘이 실린 한 해였다. 환경, 난민, 젠더 이슈 등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국내에서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더나은미래는 2018년 마지막 지면인 12월호를 발행하며 올해 공익 분야를 관통한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편집자 주  ① 文 정부, 사회적경제에 전년 대비 20% 확대 투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의지는 예산에도 반영됐다. 올해 정부 9개 부처가 사회적경제 지원에 투입한 총예산은 지난해 1783억원보다 20.9% 증가한 2157억원. 이 밖에도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2월), 사회적경제 인재양성 종합계획(7월) 등 다양한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며 사회적경제 성장에 힘을 실어줬다. ☞관련기사 : 정부 사회적경제 펀드 예산 ‘올해 2157억원’ ② ‘공익법인 회계기준’ 시행 올해부터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도입됐다. 법인마다 제각각이던 재무제표가 표준화됨에 따라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이 제고되고 기부 문화도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공익법인 회계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도 활발히 열렸다. 다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해 신설된 공익법인이거나 총자산가액 합계액이 20억원 이하인 경우에는 적용을 유예했다.   ③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사회적 가치’ 강화 올해부터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안전·환경 ▲상생·협력 ▲윤리경영 등 사회적 가치 평가 지표가 반영된다. ‘인권경영’도 챙겨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8월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을 배포하며 인권경영체계 구축을 촉구한 것. 기관들은 사회적 가치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사회적 가치’라는 새로운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관련기사

재판부 “난민 인정 안 돼도 목숨 위태로우면 ‘인도적 체류’ 허가하라” 첫 판결

‘난민 불인정’ 판결을 받은 외국인이 자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로써 정부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인도적 체류를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게 됐다. 지난 16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시리아 국적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인도적 체류를 허가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A씨는 지난 2016년 단기방문(C-3) 체류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와 “시리아는 현재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매우 위험하고, 귀국하면 정부군에 징집돼 죽을 수도 있다“며 난민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이에 A씨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하진 않았다. 다만 귀국할 경우 생명의 위험이 있으므로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난민법상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고문 등 비인도적 처우나 처벌 등으로 인해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내리는 처분이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 한국에 1년 거주할 수 있고 매년 재심사를 거쳐 체류 기간을 1년씩 연장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정부 당국의 기존 입장과 대조돼 관심이 쏠린다. 법무부는 그간 난민 신청자가 인도적 체류 허가를 신청할 권리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재판부는 “인도적 체류 허가는 외국인의 출입국 및 체류 관리와 관련한 법 집행으로 공권력의 행사임이 분명하다“며 “허가 여부에 따라 외국인의 법률관계에 변동이 생긴다는 점이 명백하므로 A씨에게 이를 구할 신청권이 있다“는 판단했다. 한편, 이번 판결은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으나 ‘불인정’된 예멘인들의

“난민에 대한 편견 거두고… 법·질서 교육해 바른 정착 도와야”

정연주 희망의마을센터 센터장 인터뷰 지난달 제주도에서 지내던 예멘 난민 신청자 23명이 출도(出島) 허가를 받았다. 국내 난민법에 따라 원하는 지역에서 지낼 수 있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것. 언론은 이른바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로 이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SNS도 뜨거웠다. “국내 난민은 모두 돈을 벌러 온 가짜 난민” “이슬람 난민이 범죄를 저지르고 종교를 퍼뜨릴 것” 등의 루머가 확산되면서, 중동권 국가에 생소한 국민의 불안이 극에 달했다. 난민은 정말 두려움의 대상일까. 2013년부터 서울 동대문 인근에서 이슬람 국가 출신 난민과 이주민을 만나 온 정연주(50) 희망의마을센터장은 “난민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며 “낯설지만 서로 이해한다면 얼마든지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집트·튀니지 등 중동권 국가에서 30년간 선교사로 일했던 그는 뜻이 맞는 의사 2명과 함께 의료 지원부터 통역 지원, 한국어·아랍어 교육 등 국내 난민들의 생활 전반을 돕고 있다. “난민은 언제든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해요.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내전이나 군대 징집 등 외적 요건 때문에 고향을 떠났으니까요. 죽음을 피해서 온 셈이죠. 물과 전기, 가스도 없던 상황에서 한국에 오니까 그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격스럽다고들 합니다. 이런 진짜 난민들은 제대로 구별해서 바라봐 줘야죠.” 정연주 센터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난민’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진짜 난민과 가짜 난민은 확연히 다르지만 겉으로 봐선 구분하기 어렵고, 분별할 수 있는 전문가도 많지 않다. “진짜 난민들은 힘들게 얻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집도 아기자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