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더 나은 미래를 떠나며…

2012년 3월 편집장을 맡아 호기롭게 달린 지 6년이 됐습니다. ‘좋은 뜻’만 품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더나은미래라는 공익 섹션이 필요 없는 날이 되는 게 내 소원”이라는 이야기도 자주 했습니다. 이제 그 짐을 내려놓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는데, 막상 닥쳐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돌이켜보니 감사할 일이 많았습니다. 팀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모두 ‘공익’이라는 재미없고 딱딱하고 관심 없는 이슈를 어떻게 하면 한 명한테라도 더 알릴까 고민하던 정예 부대였습니다. 이런 팀워크로 일하는 게 저에게는 더없이 큰 행복이었습니다. 공익 분야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맞지 않아도,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정말 가치 있는 일에 열정을 다해 헌신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강퍅했던 제 성격도 점점 더 따뜻해졌습니다. 2016년 2월 더나은미래는 리더십이 바뀌는 과정에서 존폐 위기도 겪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고난을 통해 저는 사회적으로 목소리가 약한, 억울한 사람들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편집장을 넘어 매체를 경영하는 간접 경험 또한 덤이었습니다. 그 사이 네 살이던 둘째 딸은 열 살이 되었습니다. 워킹맘으로서 일할 수 있고, 밥벌이할 수 있게 해준 더나은미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더나은미래를 통해 부족하지만 아주 조금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기사 잘 봤다”는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고, 기사 덕분에 도움받은 사람과 제도를 접했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기사로 더러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끼친 적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등산보다 힘든 精算(정산)

한 페이스북 친구가 ‘사업보다 정산이 더 어렵다’는 글을 올리자, 댓글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다녀온 산악인 엄홍길님이 ‘어느 때가 가장 힘드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정산’이라고 하셨단다ㅠㅠ”라는 글부터 “기업이 공동모금회처럼 변해간다” “모두가 공감하는데 바뀌지 않는 이유는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 “적정 수준의 행정이 투입되고 사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불신사회라서 그렇다. 관급공사에서 디폴트가 ‘을’을 사기꾼으로 생각하고 시작하니…” “행자부 회계지침부터 뜯어고치고 쓸데없이 서류 늘리는 공무원들 없게 정산매뉴얼 만들어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정산 어렵게 하면 사업을 철회할 정도로 압박할 필요가 있다”까지.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다른 한편에선 기획재정부의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e나라도움)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한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e나라도움 때문에 사업 못하겠다는 단체도 있어, 입찰 응모단체 구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분명 기재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조금의 투명한 검증이 가능해진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이건 무슨 말일까. 신용카드를 통해 모든 지출을 검증하겠다는 것인데, 입찰 과정에서 이미 1차 서류심사 2차 PT와 면접을 통해 뽑아놓고, 사후엔 ‘사업 담당 기관을 못 믿겠으니 모든 통장 내역을 공무원인 우리가 들여다보겠다’는 식이다. 복지와 문화예술 등 올해 e나라도움이 시작된 현장에선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 때문에 겪는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방산비리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차장급 직원이 처남 회사에 200억원어치 용역을 몰아준 뒤 잠적한 사건이 또 발생한 걸 보면, 정부의 고충도 이해할 만하다.하지만 이런 비리사건은 만국 공통으로 생긴다. 다른 점은 사후 처리다. 이 같은 사건이 생기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통제와 규제의 강도를 점점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공동체·연대의식’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

친구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과로사라고 했다. 황망한 마음에, 대학 졸업 20년 만에 동기들 대부분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꽤 이름난 IT기업에 다녔건만, 상가는 썰렁했다. “요즘엔 회사 동료들이 자기 부서 외엔 거의 챙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대학교수인 한 친구는 “요즘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청년들 셋 중 하나는 혼자 먹는다”며 “대학 내의 공동체가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대학생들이 외고나 자사고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으며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10년 동안 거의 왕래가 없었던 친구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주말 내내 몇 시간 동안 상가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이. ‘젊은 시절의 경험을 공유한 공동체’인 우리의 정체성과 소속감은 상상보다 훨씬 컸다. 친구가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동기들 위로가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고. 일찌감치 경쟁에 노출된 채, 공동체와 연대의식을 배우지 못한 딸아이가 걱정된다. “사냥하러 간다”던 인천 초등생 살해범, “시끄럽다”며 아파트 외벽 작업 중인 밧줄을 끊어버린 사건 등 이런 사례는 더 나올 것이다. 어른인 우리의 책무는 분명하다. 이곳을 살 만한 공동체로 만들어줘야 한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기부도 버튼 하나로

‘강릉 산불로 인해 부모님 집이 불타버렸어요. 따뜻한 잠자리를 되찾게 도와주세요.’만약 페이스북에 이런 모금함을 열 수 있다면 어떨까. 미국에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3월부터 개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모금할 수 있도록 기부버튼 범위를 확장했다. 기부버튼은 2015년 비영리단체가 페이스북에서 펀드레이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능으로, 지난해 75만곳 이상이 참여했다. 비영리단체만 허용됐던 이 기능이 개인에게도 열린 것이다. 교육, 의료, 위기 완화, 개인 비상사태, 애완동물 의료 등 6개 항목이 허용된다. 미국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다.  이뿐 아니다. ‘고펀드미(Gofundme)’ 같은 곳은 이미 개인 펀드레이징 시대를 열었다. 자신이 캠페인 페이지를 열고, 이를 가족 및 친구와 공유하고, 사후 피드백까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만난 네트워크포굿(Network for Good) 관계자는 “우리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캐피털원, 기업 임직원 기부 등 개인 소액 모금을 해당 비영리단체에 배분해주는 전문 기관”이라며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직접 펀드레이징을 하는 등 앞으로 개인 기부 시대가 점점 커질 것”이라고 했다. ‘사기를 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도 됐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은 플랫폼만 제공할 뿐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규제나 모니터링은 없다고 한다. “도와 달라”는 말에 10달러를 내고 사기를 당해도 그건 개인 몫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신뢰 사회여서일까. 아직 사기 사건이 생긴 경우는 없지만, 개인 모금 활성화와 규제를 둘러싼 논의도 이뤄진다고 했다. SNS가 만들어낸 기부 트렌드다. 이 때문에 SNS 시대에 맞게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콘텐츠에 대한 스터디도 활발하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멀게만 느껴졌던 기후변화 문제, 눈앞에

“제주도 용머리해안에 방문객 출입 통제 일수가 연간 200일이나 됩니다.” 지난 14~15일, 기후변화센터의 ‘기후변화 리더십아카데미 16기’ 회원들과 함께 제주도청을 방문했을 때 환경국장이 해준 말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몰디브 해안만 수몰 위기에 처해 있는 줄 알았는데, 제주도의 해수면 또한 상승 폭이 컸다.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은 “기후변화가 시리아 전쟁과 연관돼 있다”고 했다. 2010년 러시아 폭염 현상→심각한 가뭄 발생→우크라이나·러시아 등 밀 생산량 대폭 감소→밀 수출 중단→밀 가격 폭등→시리아 정치·경제 불안→IS 등장→유럽 난민 문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기후변화는 농업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한반도 기후가 너무 따뜻해지면서 농사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데도 연속 4년째 풍년인데, 그동안 4년 연속 풍년은 한 번도 없었다”며 “쌀이 남아돌아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이번 지면의 기획 특집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나서는 다양한 NGO와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멀게만 느껴졌던 기후변화 문제가 미세먼지를 만나, 태풍급 이슈로 부각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인 암묵적 태도는 ‘선진국보다 앞장서 할 필요 있나’였다. 천연가스 세금이 석탄에 부과된 세금보다 1.6배 더 높다는 점만 봐도, 우리 정부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환경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생수를 사먹는다는 건 상상 속 이야기였는데 현실이 됐다. 공기를 사서 들이마셔야 한다는 것, 상상하고 싶지 않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기부·사회공헌도 ‘진짜’ 잘해야 하는 시대

후배 남편은 책도 펴낸 셰프다. 나누고 싶다는 뜻을 품더니, 기어이 동료 셰프 20명을 모았나 보다. 나에게 SOS를 청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요리 재료를 사들고 가서 보육원 아이들 맛있는 걸 해먹이고 싶은데, 어떻게 연락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봉사할 보육원 찾기에 나섰다. 수도권인지 지역인지, 보육원 아이들 규모는 몇 명인지, 해당 보육원이 열정이 있는지…. 여기저기 묻고 부탁해서 다행히 연결시켜줬는데, ‘더나은미래’ 편집장으로 지닌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일반 개인이 알아보기엔 참 힘든 구조라고 생각됐다. 지난주에 만난 한 기업 홍보 책임자는 자선 콘서트 때문에 겪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회장님은 자선 콘서트를 많이, 자주 열어서 나눔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데, 표가 안 팔려 실무자들이 온갖 고생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고생스레 모은 기부금을 받은 단체는 홍보조차 도와주지 않고 기부금 사용에 대한 피드백도 아예 없다고 했다. 밖에서 보면 기부나 사회공헌은 참 멋진 일이다. 하지만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드러내놓고 말 못 할 사연이 참 많다. 기업 사회공헌 기금 중 일부가 준조세요, 민원 해결형 후원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비영리 혹은 복지기관에선 기부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료화로 인해, 실제 원하는 진짜 임팩트를 내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눈먼 돈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지금까지는 ‘목적이 좋으니, 과정에서 약간 부족함이 있어도 참아주자’는 온정주의가 컸다. 최순실 사태는 이 분위기를 바꿀 것 같다. 기업마다 기부금 집행 과정의 절차적 투명성을 챙기려 노력한다. 사업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장기기증과 건강보험, 밥벌이의 관료화

얼마 전, 장기기증과 관련된 속 터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 장기기증 서약자는 123만명. 성인 인구의 2.5%다(미국은 48%, 영국은 35% 정도로 높다). 장기기증 수치만 올라가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재정 1조2000억원이 줄어든다고 했다. 왜 그럴까. 건강보험재정 지출 2순위는 만성신부전증인데, 가장 좋은 치료법은 신장이식이다. 한데 장기 이식이 활성화 안 돼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에선 정부가 장기기증 서약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매년 5억원가량의 예산을 쓴다. 20년 넘게 반복된 패턴이다. 예산 5억원을 쓰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민간단체에 보조금 식으로 쪼개서 나눠주는 방식이다. 어림잡아 20조원을 쓰고도 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면 퇴근해 괜히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다. 공무원인 남편을 몰아붙이며, “정부는 규제만 하지 말고, 문제해결에 집중하면 안 되냐”는 식이다. ‘옵트 아웃(opt-out)’ 방식이라도 시도해볼 순 없었을까. 운전면허증을 발급할 때 ‘장기기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주고, 거기에 체크하도록 해 체크하지 않으면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형태 말이다. 아마 누군가는 이런 의견을 냈을 지도 모르고, 시도했다가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뭔가를 해보려 하다 잘못되면 된통 책임지는 게 공무원 일상이다 보니, 어느새 정부는 ‘효율’보다 ‘공정’만 우선시하는 공룡이 됐는지도 모른다. 신년 들어 임팩트 투자, 소셜벤처 등 사회문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을 많이 만나다 보니, 더더욱 속이 상한다. 400조원 정부 예산 중 0.1%만이라도 과감하게 ‘미친 듯한’ 도전에 쓰이면 안 될까. 해결해야 할 목표만 주고, 그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등 어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변화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극복이 우선

주말에 읽은 책 ‘오리지널스’에는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힌 ‘와비파커’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인 애덤 그랜트(와튼스쿨 최연소 종신교수)는 2009년 창업자 중 한 명의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내 인생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고백한다. 와튼스쿨 MBA에서 함께 공부한 청년 4명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학자금 대출에 신음하던 처지여서, 잃어버리거나 부러진 안경을 새로 장만하지 못했다. 어느 날 이런 의문을 품었다. “최첨단 기술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아이폰만큼 비싸지?” 알고보니, 안경업계의 거대 공룡인 룩소티카가 시장의 80%를 장악하며 한 해 70억달러(8조원)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들은 신발 기업 ‘자포스’가 온라인으로 신발을 판매하는 걸 지켜보면서, 안경 산업에도 이를 시도해보기로 결심한다. 주변에선 모두 핀잔을 줬다. “안경은 직접 써보고 사지, 누가 인터넷으로 구매하겠냐”라고. 하지만 와비파커는 현재 연매출 1억달러(1177억원), 시가총액이 10억달러(1조1177억원)에 달한다. 소비자가 미리 안경테를 써보도록 5일 무료 체험 배송 서비스를 실시했다. 매장에서 500달러에 팔리는 안경을, 안경테와 렌즈를 합쳐 90달러(10만원)에 판매하고, 안경 하나가 팔리면 또 하나는 개발도상국에 기부한다. 저자는 “독창성의 가장 큰 특성은 현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결심”이라고 한다. 실제 조직에서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하면 단계마다 어려움에 부딪힌다. 불확실성에 직면하면, 우리는 직관적으로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생소한 개념이 실패할 이유부터 찾는다고 한다. 평가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뜻이다. 책에서 가장 공감한 대목은 이것이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독창성을 보여준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창출해낸 사람들이었다.”   질도 중요하지만 양을 늘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정직·투명·신뢰…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

‘촛불정국’ 이후와 2017년 전망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전경련은 해체될 것인지, 기업 사회공헌은 어떤 변화가 생길지, 비영리단체의 모금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이 대표적이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좋은 일인데’라며 웬만하면 문제 삼지 않았던 기존 공익분야 관행이 더 이상 통용되진 않을 것이다. 당장 미르·K스포츠재단으로 인해 공익법인에 대한 불신이 한껏 높아져, 기부단체의 투명성이나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를 눈여겨보는 기부자들이 많아질 전망이다. 여기에 한국가이드스타가 오는 2월 공익법인에 대한 공시자료를 바탕으로 별표를 매기는 평가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투명성이 결여돼 이번 평가에서 제외된 단체를 보니, 고유목적사업비를 0원으로 표기한 단체가 57곳, 일반관리비 0원은 1111곳, 직원 수 0명은 448곳, 인건비 0원은 609곳이었다. 공익법인들이 왜 이런 공시자료를 국세청에 올렸는지, 기부자들의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2016년 기업 사회공헌이 위축된 것은 불경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민들의 ‘사회공헌 학습효과’가 더 정확한 이유일지 모른다. 사회공헌을 잘하는 기업으로 칭송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 파동으로 곤욕을 치른 A사의 사례에서 보듯, 회사의 리스크를 사회공헌으로 무마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SNS를 통해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퍼지는 부정적인 이슈에 사후대응하기란 불가능하다. 폴크스바겐 연비조작 스캔들로 2주 만에 주가가 30% 이상 하락했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이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진짜 CSR(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는 건 결코 착해서가 아니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전경련이 앞장서 거둬들인 800억 기부금은 지금까지 기업 사회공헌의 관행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 장면이다. 만약 밝혀지지 않았다면, 전경련 홈페이지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공익 비영리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한 때

미르·K스포츠재단이라는 공익 비영리 재단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이달 1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 원혜영 의원을 비롯, 비영리 전공 교수, 변호사, 회계사, NPO 대표 등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6 국제 기부문화 선진화 콘퍼런스’ 중 한 세션인 정책토론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해외 측 연사로 참여한 이들은 호주와 일본의 NPO 전문가들. 특히 호주의 국세청과 자선·비영리위원회(ACNC·Australian Charities and Not for Profit Commission)’ 사례는 큰 주목을 끌었다. “호주도 예전에는 한국과 똑같았다. 비영리 단체 등록을 부처별로 하고, 규제도 제각각이었다. 2012년에 비영리 단체를 통합·관리하는 위원회(ACNC)를 설립하는 개혁을 20년 만에 이뤄냈다.”(데이비드 로케, 호주 ACNC 차관보) 호주의 예전 사례는 어쩌면 우리나라와 판박이처럼 똑같은지 놀라울 정도였다. 설립은 까다롭고, 사후 관리는 대충함으로써 비영리 생태계가 ‘독버섯’이 자라기 쉬운 환경이 되어버린 것 말이다. 최순실씨의 사례야 겉으로 드러났기에 망정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비영리 공익법인을 앞세워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사례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 없다. 손원익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R&D센터장에 따르면 당장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 “국세청도 행정 효율성이라는 게 있다. 영리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도 1% 될까 말까 한다. 비영리 섹터는 규모가 작아 오히려 행정 인력 낭비라고 생각해 별 관심이 없다.” 호주 국세청은 어떨까. 로드 워크 호주 국세청 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와 좀 달랐다.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국세청에서 비영리 단체를 위한 콜센터를 운영하며, 비영리 단체 설립부터 세금 감면 혜택 정보를 제공한다. 직원이 직접 NPO로 가서 일하는

기업 사회공헌과 NPO 파트너십, 선순환 되려면

최근 NPO 친구들이 많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불이 났다. ‘구글 임팩트 챌린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구글이 시작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인데, 국내 비영리단체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선발해, 한 단체당 5억원씩 최대 30억원의 지원금과 1년 이상의 멘토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 진행과정이 어떨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과 지난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시행해온 프로젝트 과정을 보면, 한국 기업과 참 많이 다른 NPO 접근방식이 있다. 우선 구글이라는 기업이 낸 사회공헌 기금 30억원의 성격이다. 한국 기업은 대부분 이 돈을 ‘우리 회사 돈’이라고 생각해, 기금의 사용처에 대한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쥐려고 한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하는 단계마다 개입하고, NPO와의 파트너십 과정에서도 삐걱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 기부금이긴 한데, ‘꼬리표가 붙은’ 기부금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의 경우 오로지 사회문제 해결이나 공익적 목적으로 쓰이는, ‘꼬리표 뗀’ 기부금이 많다. 구글의 이 기금 또한 그렇다. 예전에 만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재단(아멕스 재단) 티머시 제이 매클리몬 이사장이 들려준 사회공헌도 그랬다. 3년 동안 사람들에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수천 개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아서, 이를 실행할 비영리단체와 타 기업을 연결해주는 사회공헌 프로젝트에 수백 억 달러의 지원금을 내놓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NPO 분야의 리더를 키우는 일이 시급함을 알고, 지금은 NPO 차세대 리더를 대상으로 조직경영, 고객서비스, 마케팅 등을 가르치는 아카데미 사업에 3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 매년 4000여명의 리더를 배출한다고 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공헌 현황은 겉으로 드러난 3조원이라는 액수에 비해

저성장 시대, 기업과 NPO의 윈윈전략

여기저기서 다들 아우성이다. 장기 불황과 저성장 시기로 접어들면서, 올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대폭 축소됐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D기업의 경우, 파트너단체와 하던 8억원 규모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을 5분의 1 규모로 삭감할 정도다. 기업과 함께 사업을 하던 비영리단체들 또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업후원뿐 아니라 개인후원 증가율도 꺾이고 있다. 소수의 대형 글로벌 비영리단체의 경우 매년 TV나 온라인, 모바일 광고 등에 사용되는 금액이 수십 억원에 달하지만, 예전만큼 광고효과가 크지 않다고 한다. 기부금 총액이 연 20~30%씩 증가해왔던 월드비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등 대형 비영리단체 또한 기부금 증가율이 정체이거나 소폭 증가하는데 그치고 있다. 가끔 필자에게 ‘비영리단체의 미래가 어찌될지’ 혹은 ‘이제 한국에서 기부금 성장은 포화상태인지 아닌지’ 등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를 예언하긴 힘들지만, 아직 성장 여력은 남아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왜냐 하면, 아직 한국에선 흔히 말하는 ‘제3섹터’(정부와 기업이 아닌)의 생태계 자체가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그만큼 가능성도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섹터에서 외연 확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달려있다. 최근 ‘더나은미래 포럼’에 초청한 어완 뷜프(Erman Vilfeu) 네슬레코리아 대표와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솔직히 감동을 받았다. 연매출 888억스위스프랑(108조원)을 지닌 회사 네슬레의 150년 성장 비결을 알 것 같았다. 한국 기업에서 배워야 할 게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해관계자 소통’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 직후 커피가격이 폭락하면서, 브라질 투자은행이 네슬레를 찾아왔어요. 네슬레의 커피 산업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 물었죠.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