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는 자꾸 느는데… 쉼터 들어가기 ‘바늘구멍’

[Cover Story] 학대받은 아이들이 머무는 곳, 쉼터 충남에 있는 한 아파트. 성(姓)이 다른 일곱 명의 아이들이 한집에 산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이대는 다양하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형제처럼 부대낀다. 이곳의 아침은 여느 가정처럼 분주하다. 아이들을 깨우고, 밥 먹이고, 씻기고, 학교를 보낸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워진 요즘 집 안은 더 복작인다. 일곱 아이를 돌보는 일은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보육교사가 맡는다. 아이들은 ‘학대피해아동쉼터’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학대 신고가 1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접수된 아동에게서 학대 피해가 강하게 의심될 경우 아동을 가정에서 즉각 분리하는 제도가 오는 3월 시행된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 아동이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의 후속 조치다. 하지만 가정으로부터 분리된 아이들이 머무르는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에 76곳에 불과하다. 최대 정원은 7명. 단순 계산으로도 600명을 채 돌보지 못한다. 2019년 기준 아동 학대 판단 건수가 3만건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아동 학대 3만건, 학대피해아동쉼터는 76곳 불과 중학생 하진이(가명)는 쉼터에 오기까지 몇 번이나 짐을 쌌다 풀기를 반복했다. 시작은 아버지의 구타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동생을 돌보지 않았다’ ‘대답 안 했다’는 말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아버지는 ‘훈육(訓育)’이라고 했다. 그러다 학대 신고를 받아 출동한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들을 만났다. 하진이는 학대 가해자인 아버지를 떠나 이혼 후 별거 중인 어머니와 살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으면서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쉼터에 오게 됐다. 입소 당시 진행한 종합심리검사에서 하진이는 ‘자살해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더나은미래 ×현대차정몽구재단 특별기획]학자 6인이 보내는 신년 메시지 삶이 너무 많이 흔들렸다. 예측은 빗나가고 기대는 무너지고 계획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무서운 경험을 거듭했다. 코로나 팬데믹의 시대. 무엇이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고 그럴듯한 전망을 내놓는 일들이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보다 근본적인 것, 어떤 일이 닥쳐도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절실하다. 또다시 예측이 빗나가고 기대가 무너지고 계획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도 더는 우리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이러스와 함께 시작된 2021년.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이 특별한 신년 기획을 준비했다. 최재천(생태학), 장대익(과학철학), 박미랑(범죄학), 오혜연(전산학), 허태균(심리학), 정석(도시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탐구하는 6인의 교수를 차례로 만나 코로나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물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학자들은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공통 키워드는 ‘연결’이었다. 누군가는 생존 전략으로서의 연결을 말했고, 누군가는 양극화와 불균형을 바로잡는 연결에 대해 설명했다. 6인의 메시지를 지면에 담아 전한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뜻밖의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절묘하게 떠올랐다. 여기에는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모두 담겼다. 감염은 물리적 연결을 통해 이뤄지고, 이로 발생한 위기는 연결을 통한 연대와 협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류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면, 서로 연결돼 있지 않았다면, 감염병을 겪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팬데믹을 극복하는 힘은 연결을

“코로나 백신, 공공재 보급해야 팬데믹 끝낼 수 있다”

[Cover Story]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말은 코로나19에 딱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백신이 개발되면서 전 세계가 코로나 종식 희망에 들떠 있지만, 전문가들은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티에리 코펜스(53)도 그중 한 사람이다. 벨기에 출신으로 20년 이상 레바논·아이티 등 전 세계 구호 현장에서 일한 그는 “국제 보건 역사를 보면 치료제가 있어도 가격이나 보급망 문제로 수십·수백만명이 죽는 일이 흔했다”면서 “만들어진 의약품이 적정한 가격으로 모두에게 보급되는 체계가 있어야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도 전문가들의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WTO(세계무역기구)다. WTO는 지난 10월부터 “의약품 보급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한시적으로 면제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WHO(세계보건기구)도 이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WTO는 코로나19 의약품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두고 각국 정부의 의견을 묻고 있다. 100여 나라가 찬성했지만, ‘K방역’을 수출해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던 우리 정부는 두 달이 넘도록 묵묵부답이다. 지난 3일 서울 역삼동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에서 만난 코펜스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보급을 위해서는 특허 면제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대 제약 회사가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전권을 갖게 되면, 계속해서 소외된 사람들이 나오고 결국 팬데믹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는 공공재로 봐야”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도 팬데믹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는

일상의 변화를 만듭니다

슬기로운 비영리 생활 무직 청년들을 모아 ‘회사 놀이’를 하는 사람들, 여성 인권 NGO를 운영하는 뷰티 유튜버, 꽃을 가꾸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수상한 정원사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상한 비영리’가 나타났다. 전통적인 비영리단체들을 떠올려보면 금세 비교가 된다. 숭고한 정신, 대단한 사명감. 그런 게 뭔지 이들은 잘 모른다. “좋은 일 합시다” 하고 호소하거나 선동하는 법도 없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 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풀어내는 방식부터 기존 비영리단체들과는 딴판이다. 인권, 환경, 여성, 아동,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만 거대담론은 잘 다루지 않는다. 제도나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는 주변과 이웃의 일상을 소소하게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다. 일종의 ‘생활밀착형 비영리단체’라 할 수 있다. 이런 단체들을 공식적으로 ‘비영리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공익활동을 하는 신생 비영리단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청년 무직자들에게 소속감을 채워주고자 ‘니트생활자’라는 단체를 만든 박은미·전성신 대표. 구독자 70만명을 가진 유튜버로서 다양한 여성 인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WNC’의 김혜원 대표. 식물을 키우고 밭을 가는 경험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꾀하는 ‘마인드풀가드너스’의 김민주·김현아 대표. 지난 23~24일 비영리스타트업 3팀 대표들을 각각 인터뷰했다. 백수가 어때서 “여섯 번째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각했어요. 다시는 조직 생활을 안 하고 싶다고요. 이유 없는 퇴사는 없잖아요. 회사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 불공정 계약으로 쫓겨나듯 나오기도 하죠.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저 취업할 의욕마저 사라진 부정적

발달장애인 ‘고용’하려고 비누를 만듭니다

[Cover Story] 착한 비누로 60억 매출, 노순호 ‘동구밭’ 대표 직원의 절발이 ‘발달장애인’ 천연 성분 고체 비누로 3년 만에 매출 60억원 달성 내년 목표 ‘보수적으로’ 100억 가장 중요한 건 망하지 않는 것 발달장애인 직원을 고용해 천연 고체 비누를 생산하는 ‘동구밭’은 전형적인 사회적기업이다. 비누를 만들기 위해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비누를 만드는 회사다. 동구밭에 관한 반가운 소문을 들었다. 매출 50억원을 달성했다는 소식이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경기도 하남에 큰 공장을 샀다, 대기업들의 납품 요청이 줄을 잇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노순호(29) 동구밭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이냐 물었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다 맞는데 하나는 틀렸다”고 말했다. “50억이 아니라 60억 찍을 것 같아요.” 2015년 1월 설립된 동구밭은 원래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도시 농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제조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건 2017년. 비누를 만든 지 3년 만에 매출 60억원을 달성한 셈이다. 일반 기업에선 상식적인 일일 수 있지만, 사회적기업에선 보기 드문 성장 곡선이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약속도 잘 지켜지고 있다. 전체 직원 53명 가운데 절반이 발달장애인 직원이다. 지금까지 입사한 발달장애인 중 중도 퇴사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지난 10일 노순호 대표를 만났다. 농축과 숙성 과정을 거쳐 완성된 동그랗고 단단한 비누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만약 동구밭이 망한다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경쟁에 밀려서? 품질이 떨어져서? 아니에요. 발달장애인 문제에 더는 관심을 갖지 않을 때, 그 시점이 바로 우리의 내리막길일 겁니다.

식용견에서 반려견으로… 자유 향한 첫 외출

[Cover Story] 개농장 구조견 해외 입양 가던 날 국제동물보호단체 HSI 17번째 임무 ‘해미 개농장의 식용견을 구출하라’ 견사 나가면 죽는다 인식, 겁먹은 개들 흥분한 대형견 달래고 꺼내느라 ‘진땀’ 지난달 22일 오전 7시, 충남 서산 해미면. 노랗게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5t 화물차 세 대가 나란히 들어왔다. 차량 측면에는 ‘특수무진동트럭’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날 수송 임무는 좀 특별했다. 작전명은 ‘해미 개농장 폐쇄’. 화물칸에 개 110마리를 실어 인천국제공항으로 보내야 하는 임무였다. 이날 현장 구조는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이 주도했다. 이들은 한국의 식용견 농장에서 구출한 개를 미국·캐나다 등으로 해외 입양 보내는 구호 활동을 펼친다. 이번이 17번째다. 현장에는 HSI코리아 활동가를 비롯해 지난 10월 1일 입국해 2주간 자가 격리를 마친 미국 활동가 3명이 함께했다. 죽음 문턱을 넘다 마땅한 표지판도 없는 골목에 들어서자 묵직한 오물 냄새가 밀려왔다. 농장 규모는 820㎡(약 250평) 남짓. 대부분의 개는 철창으로 바닥을 만들어 공중에 띄운 ‘뜬장’에 갇혀 있었고, 목줄 채워진 개들이 곳곳에 있었다. 견종은 다양했다. 식용견이나 투견으로 팔려간다는 도사견을 비롯해 진도 믹스견, 골든레트리버, 셰퍼드, 포메라니안도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눈빛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일정은 빠듯했다. 이날 작업을 총괄한 아담 파라스칸돌라 HSI 이사는 “밤 비행기를 타려면 오후 1시에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인천국제공항까지 이동하고 세관을 거쳐 탑승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의 애타는 마음과 달리 개들은 견사에서 나오는 걸 두려워했다. 그간 밖으로

2030세대 절반 환경 문제 민감한 ‘에코워리어’

MZ세대 ‘플라스틱 쓰레기’ 인식조사 20~39세 남녀 505명 조사했더니… 평소 외출할 때 텀블러 소지 43.6% 플라스틱 세척 후 분리 배출 54.6% 과대·이중 포장 상품 살 때 ‘스트레스’ 가격 비싸도 친환경 제품에 지갑 열어 대학생 최서연(23)씨는 얼마 전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한 달에 10번 이상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나름 VIP 고객이었지만, 식사 때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걸 견디기 어려웠다. 최씨는 “평소 환경문제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올해 코로나19 이후 매일 분리 배출할 일회용품이 쌓이다 보니 조금은 무서워졌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는 얘기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하루 평균 약 848t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급증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는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일어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와 완화를 오갈 때마다 폐기물 배출량도 출렁였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21.1% 늘었고, 확산세가 잦아든 4월은 8.9%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재확산이 시작된 6월에는 다시 25.1%나 치솟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코로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플라스틱 피로감’은 환경에 관심 많은 소수집단만이 겪는 현상일까. 더나은미래는 지난 14일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20~39세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10명 중 9명은 플라스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2030세대의 절반은 환경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이른바 ‘에코워리어(Eco-warrior)’였다. 응답자 48% “제품 구입 시 플라스틱

“아름다운 미래는 끝났다… 웰컴 투 디스토피아!”

[Cover Story] ‘디스토피아 빌런’으로 돌아온 정경선 HGI 의장 정경선(34)은 전기면도기를 못 찾아서 수염을 깎지 못했다고 했다. 까칠하게 자란 수염 때문인지 인상이 좀 변한 것 같았다. 예전과 느낌이 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더니 “가르마를 바꿔서 그런가” 하며 웃었다. “한쪽으로만 가르마를 타면 탈모가 올 수도 있다고 해서 얼마 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르마를 바꿨다”며 딴소리를 늘어놓는다. 현대가(家)의 일원인 정경선은 그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선하고 스마트한 재벌 3세’ 이미지로 그려졌다. 지난 2012년 비영리단체인 ‘루트임팩트’를 만들 때부터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4년에는 임팩트투자사 ‘HGI’를 설립해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셜벤처들에 투자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 2017년 오픈한 혁신가들의 공간 ‘헤이그라운드’도 그의 작품이다. 지상 8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에는 60곳이 넘는 소셜벤처가 입주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런 선한 이미지가 이제 지겨워진 걸까. 지난달 21일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정경선은 작심한 사람처럼 ‘센’ 이야기를 쏟아냈다. “8년 전 루트임팩트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세상에 수많은 사회문제가 존재하지만 우리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모든 게 해결되는 날이 오리라 믿었어요. 참 순진했죠.” 가르마만 바뀐 게 아니었다. 정경선이 딴사람이 돼서 돌아왔다. 체인지메이커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 입으로 암흑의 시대 ‘디스토피아(dystopia)’를 선언했다. “네, 맞아요. 세상은 망했어요. 성장과 번영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암울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거예요. 웰컴 투 디스토피아!” 디스토피아 빌런 ―충격 받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갑자기 세계관이 뒤집힌 이유가 뭔가요. “인류에게 남은

수해로 터전 잃은지 한 달,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지…

[Cover Story] 구례 어느 농장주의 이야기 나는 김정현입니다.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고 전남 구례 양정마을에서 소를 키우고 있어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60두나 되는 소를 키우고 있었어요. 양정마을에서 소를 가장 많이 키우는 농가가 우리 집이었습니다. 그날, 끔찍한 물난리가 나기 전까지는요. 지난달 8일 새벽, 아버지와 나는 폭우로 불어나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근심에 잠겨 있었어요. 생전 처음 겪는 사나운 비에 우리 농장 근처에 있는 둑이 넘치기 직전이었어요. 섬진강댐과 주암댐을 방류한다는 안내문자가 왔고, 잠시 후 둑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아버지와 함께 농장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물이 무릎까지 들어와 있었어요. 소를 대피시키려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물은 허리까지 차올랐어요. 이러다 사람이 죽겠다 싶어 도망치듯 농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이미 축사 지붕이 물에 잠겨 있었어요. 우리 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키우던 소 100두가 죽거나 유실됐어요. 어떤 놈은 지붕에 올라가 죽어 있었고, 어떤 놈은 축사 기둥 사이에 머리가 끼인 채 매달려 죽어 있었어요. 슬펐느냐고요?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요. 여기저기 엉겨 있는 사체들을 확인하고 처리했던 닷새간의 기억. 그게 또렷하지가 않아요. 억지로 정신을 차린 건 살아남은 소 때문이에요. 임신한 소가 있었는데 물난리 겪고 바로 조산을 했어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가망이 없어 보였죠.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허약해요. 다른 소들도 상태가 안 좋아요. 물에 빠졌다가 폐렴을 얻은 소도 있고, 외상이 심한 소도 있어요. 마을에서는 지금도 하루 두세 마리씩 소가 죽어나가고 있어요.

코로나19 아이들을 다시 일터로 내몰다

[Cover Story] 퇴보 위기 놓인 아동 인권 아이만은 여덟 살이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살고 있다. 아이만의 하루는 소 떼를 들판에 끌고 나가면서 시작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연필을 쥐었던 손에는 나무 막대가 들렸다. 이른 아침부터 건초를 찾아 가축들을 먹이는 게 일이다. 일터엔 그늘이 없다. 그렇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를 보낸다. 올해 3월 아프리카에서도 확산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아이만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학교가 폐쇄됐고, 학생들은 갈 곳을 잃었다. 가정에서 학업을 이어갈 여건은 되지 않았다. 4월에 접어들면서 상점들도 문을 닫고, 어른들의 일자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생계를 위해 온 가족이 뛰어들어야 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초등학교 3학년 소년의 꿈이 코로나19로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아동들이 다시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대부분 빈곤 인구가 많은 인도와 아프리카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6월 유니세프와 공동으로 발표한 ‘COVID-19가 아동 노동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 현장에 보내진 아동은 1억52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절반은 5~11세 아이들로 파악됐다. ILO는 빈곤율이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아동 노동 인구는 최소 0.7%포인트 증가한다는 연구를 근거로,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오던 아동 노동 인구가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증가할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대유행은 수년간의 발전을 역전시킬 뿐만 아니라 아동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 아이들, 살기 위해 광산·농장으로… 현지 상황은 연구 보고서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재웅

착한, 선도하는, 연결하는 ‘선’한 기업이 사랑받을 것

경영학과 교수 3인이 말하는 ‘사회가치경영’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사무실에 하나 둘 배달되는 우편물이 있다. 기업들이 매년 여름쯤 발간하는 ‘지속가능성보고서’다. 지난 1년간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성과를 소개하는 책자다. 기업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지,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협력사와 공정하게 거래했는지, 어떤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는지 등을 각자의 방식으로 자세히 담아낸다. 현재 국내 기업 수백곳이 이런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보고서들을 연도순으로 놓고 살펴보면 기업들의 경영 방식이 점점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기업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회가치경영’의 흐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치경영의 개념이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구체적 실천 전략이나 방법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경영학과 교수 여섯 명이 모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 전략'(클라우드나인)이라는 책을 펴낸 이유다. 1년 가까이 함께 토론하고 정리하며 만든 책이다. 저자로 참여한 김재구·이정현(이상 명지대)· 이무원(연세대) 교수를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인터뷰했다. 셋은 경영학계의 소문난 ‘절친’이기도 하다. “사회가치경영을 하는 기업은 ‘선’한 기업이에요. 세 가지 의미의 ‘선’이죠. 착한(善) 기업, 먼저(先) 실행하는 기업, 이해관계자들을 연결(線)하는 기업.” 책 출간 뒤풀이 비슷하게 시작된 만남은 금세 열띤 토론으로 번졌다. 기업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사회가치경영에 관심 갖는 국내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김재구=SK,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선도하고 있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해요. 미국 주요 기업 CEO들의

로컬은 현상이다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지역에 청년 모이고, 자본 뒤따라 소상공인? 이젠 로컬크리에이터! 성공 핵심 ‘지역 정체성’에 달려 한때는 하숙촌을 이루며 번화했지만 세월이 지나 쇠퇴해버린 충남 공주의 구도심. 이곳으로 다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옛 가옥을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고 근처 식당과 카페, 세탁소, 사진관이 연결되면서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처럼 관광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주 구도심의 ‘마을호텔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들은 일명 ‘로컬크리에이터’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지역의 유산에 비스니스 모델을 결합해 죽어있던 마을을 되살려냈다. ‘로컬’이 뜨고 있다. 지역으로 청년들이 모이고, 자본이 흐르기 시작했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전국 각지에 등장하면서 ‘로컬 신(local scene)’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들의 모토는 간단하다.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하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강원 양양은 불과 5년 만에 서핑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 해 70만명에 달한다. 양양 해변을 2030세대들로 가득 채우기까지는 박준규 서피비치 대표의 역할이 컸다. 서피비치는 40년간 출입이 통제됐던 군사제한구역을 서핑 전용 해변으로 탈바꿈시킨 로컬 스타트업이다. 강원에서 나고 자란 박 대표는 지난 2015년 체험 중심의 서핑 강습을 시작으로 F&B(식음료) 사업, 광고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동해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부산에서 직장 생활할 때 우연히 강릉으로 출장 올 일이 있었는데, 너무 현대화가 안 돼 있는 거예요. 즐길 거리가 없는 옛날 느낌의 바다랄까…. ‘놀 땐 확실하게 노는’ 젊은 층을 잡으려면 그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