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철 안양 성문고 교사 “성문고 3학년 8반 학생이 되면 페루의 루쓰를 후원하지요”

아이들 1000원씩 나머지는 교사가…선배 졸업하면 후배가 또 이어 나누는 법 배우고 입시에도 도움 지난 9일 졸업식, 학생들은 평생 못 잊을 선물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이 전날 밤잠을 설치며 만들었다는 동영상이었다. 반장선거, 단합대회, 체육대회, 수능 D-50 파티, 수능 전날 격려 행사까지, ‘고3’으로 살아온 지난 한 해가 차례차례 화면 위로 흘러갔다. 그중에는 경기도 안양시 성문고 3학년 8반 학생들만 가진 특별한 추억도 있었다. 바로 페루에 있는 여자아이 루쓰(14)를 후원한 일이었다. 이규철(44·사진) 성문고 교사가 제자들과 함께 루쓰를 후원한 것은 이달로 만 2년째다. 반 아이들이 1000원을 내면 이 교사가 나머지를 채워 매달 페루로 보내고 있다. “매년 제가 맡는 반 아이들이 같은 아이를 후원하는 거죠. 선배들이 졸업하고 나면 후배들이 이어서 후원하는 식으로요. 졸업한 선배들이 학교에 찾아오면 다 같이 루쓰 이야기로 꽃을 피워요. 선후배가 ‘나눔’이란 한 테마로 묶이는 거죠.” 이 교사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처음 후원을 시작한 건 재작년. 가수 션과 탤런트 정혜영 부부가 쓴 ‘오늘 더 사랑해’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좋은 일이니 반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어, 조심스럽게 후원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엔 매점 가서 과자 하나, 음료수 하나만 사도 1000원이니 큰돈은 아니었지요. 그래도 학생들이 제 호주머니를 털어 후원하는 거니까 망설여졌어요.” 이 교사의 걱정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그는 반 아이들과 상의해서 제3세계 국가에 사는 여자아이를 후원하기로 했다. 학생들 가운데 매달 돈을 걷을 ‘나눔 도우미’도 정했다. 그렇게

“오늘도 무대에 오릅니다 상처받은 영혼 치유하려고요”

가톨릭 문화기획 IMD 어린시절 누나 잃었던 현요안 신부… 슬럼프 빠져 괴로웠던 배우 우기홍씨 아파 본 사람들이 만든 연극 ‘바보 추기경’… “평범함 속 위대한 사랑 깨달았으면…” “영혼을 고치는 의사가 되라는 것이 누나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쉽진 않지만 평생을 걸고 노력해야죠.”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해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제주교구 중문성당의 현요안(41) 주임 신부를 만났다. 조용한 성당 안에서가 아니라 젊은이들과 예술인들이 오가는 홍대 인근의 한 극장 안에서였다. 그가 지도신부로 있는 공연기획사 ‘가톨릭 문화기획 IMD’의 새 작품이 이곳에서 지난달부터 공연 중이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큰 누나가 하느님 곁으로 갔어요. 공부도 잘하고,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작은 누나도 잘 챙기던 참 착한 누나였는데 1월 1일 설날에 백혈병으로 쓰러져 3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누나가 죽기 전에 가족들 한명 한명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제게도 세 가지를 남겼습니다. 하나가 부모의 가슴에 묻히는 자신과 장애가 있는 작은 누나를 대신해 ‘세 배’로 효도하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평생 책을 놓지 말고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유언이 영혼을 고치는 의사, 성직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누나의 장애를 고쳐주고 싶었던, 그래서 정형외과 의사가 꿈이었던 소년은 그때부터 성직자의 꿈을 마음에 품었다고 한다. 신학교 시절 연극부 활동도 했던 ‘끼’ 많은 현 신부는 2008년 가톨릭 창작 뮤지컬 ‘이마고데이(Imago Dei·하느님의 모상)’를 제작, 기획하면서 ‘가톨릭 문화기획 IMD’를 세웠다.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려면 가슴에 다가가야 하거든요. 위로, 치유, 회복은 머리로

[Cover story] 귀화자 10만명 시대

“우린 외국인 아닌 한국인… 이젠 가슴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다문화라는 말이 되려 꼬리표처럼 느껴져… 한국인 情으로 품어주세요” 투표해봤느냐는 질문에 “당연한 걸 왜 묻는 거지?” 이민 2·3세에 대한 고민 필요… 학교에서 ‘다문화’로 불리면 아이들 소외감·큰상처 받아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수가 지난달 24일 기준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귀화자 10만 명 시대, 귀화 한국인들은 ‘다문화사회’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귀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가야금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 인사동 전통찻집에 귀화 한국인 네 사람이 찾았다. “여기 유자차 둘, 매실차 하나, 녹차 하나 주세요.” 유창한 한국말로 주문하는 모습이 내 집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귀화한 지 최소 3년에서 13년이 된,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국인들’이다. KBS ‘러브 인 아시아’의 고정패널이자 다문화가정 네트워크 ‘물방울 나눔회’의 사무총장인 필리핀 출신 이쟈스민(34)씨, 세종대 교양학부 부교수이자 ‘독도 문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일본 출신 호사카 유지(54)씨, 여자축구단인 고양 대교눈높이 캥거루스의 수석코치 겸 골키퍼 코치인 타지키스탄 출신 신의손(50)씨,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컴퓨터 디스플레이 연구원으로 일하는 러시아 출신 사베리에프 블라디미르(56)씨는 전통차를 홀짝이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에 왜 귀화했느냐고요? 축구하려고요. 옛날에는 외국인 골키퍼는 경기에 못 나간다는 규정이 있었거든요.”(신의손) “독도 관련 연구를 하려면 일본보다 한국이 좋았어요. 직접적인 동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너무 멋져 보였던 거고요.”(호사카 유지) “한국은 컴퓨터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기에 최고의 나라니까요.”(사베리에프 블라디미르)

“역사적 사실에 초점 맞춘 여행 청년들 인생의 전환점 되길 기대해”

그랜드투어 저자 송동훈 각 도시 이야기 담은 ‘그랜드투어’ 여행의 화려함보다 역사에 주목, 선진국의 역사적 사실 알면 現대한민국 방향도 알 수 있어… 1937년 여름,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유럽 여행길에 오른 존F 케네디는 책으로는 알 수 없었던 유럽의 생생한 현장을 경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행보는 심상치 않았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변화에 침묵했다.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유럽을 주제로 하버드대학교 학사 졸업논문을 썼고 이 논문을 보완한 책 ‘영국은 왜 잠자고 있었는가’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항상 잘난 형 때문에 기죽어 있던 존F 케네디가 역사의 중심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케네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선 여행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청소년과 젊은이가 많다. 18세기 유럽 귀족의 자녀들은 대학교육까지 포기하고 가정교사를 대동해 6~7년씩 여행하기도 했다. 일명 ‘그랜드투어’다. 우리나라에도 ‘그랜드투어’라는 이름으로 나온 여행서가 있다. 이탈리아·프랑스·영국 이야기를 담은 〈그랜드투어 서유럽 편〉과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를 담은 〈그랜드투어 동유럽 편〉이다. 하지만 저자 송동훈(41)씨는 과거 유럽 귀족이 했던 ‘그랜드투어’의 화려함이 아닌 그들이 여행을 통해 배우고자 했던 역사적 사실에 주목했다. 송씨는 그 이유를 “지난 200~300년간 세상을 이끌었던 나라의 역사를 알면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에는 여행한 도시의 풍경묘사나 감상보다는 각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로마의 대귀족이면서도 ‘귀족 중심의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라고 앞장서서 외쳤던 그라쿠스 형제 이야기를 꺼내며 “현재 한국

“분쟁지역 청소년이 자립할 기틀 마련이 목표”

‘권홍헤어아카데미’ 권홍 원장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권홍헤어살롱’에 들어서자 ‘권홍헤어와 함께하는 기아대책’ 벽보가 한눈에 들어왔다. 벽보에는 권홍(46) 원장이 후원하는 저개발국 아이 5명을 비롯해 직원들이 후원하는 아이들 26명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 있었다. 권 원장은 “사진을 보고 관심을 갖는 고객과 직원들에게는 후원을 권유하는데, 동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뿌듯해했다. 미용실뿐만 아니라 미용교육기관 ‘권홍헤어아카데미’로 유명한 권홍 원장은 봉사와 나눔에 열정적이다. 권홍헤어 직원들과 아카데미 학생들의 지각벌금을 모아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과 미혼모시설 ‘여성의집’ 등에서 지속적인 미용봉사도 했다. 미용교육에 뜻이 있는 북한이탈청소년에게는 무료로 미용교육을 해주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은 미용실 직원으로 채용했다. 권 원장은 “실력도 좋았지만 북한이탈주민 신분이 알려지면 아이가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 직원으로 채용했다”며 “형편이 어렵거나 공부에 뜻이 없지만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는 친구들을 가르치는 것이 ‘미용교육가’로서 나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해서다. 권 원장은 구두수선하는 아버지와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와 함께 목포 달동네에 살았다. 친구들이 모두 좋은 대학에 가고 권 원장만 연이어 대학입시에 실패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형은 “미용기술을 배워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당시 미용실은 권 원장에게 ‘의자 두 개 달랑 놓고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화투 치는 곳’이었지만, “유학을 가서 한국 최고의 미용사가 되어 보라”는 형의 말에 의지가 생겼다. 보조미용사로 1년 일해 비행기표를 마련하고, 일본에서 4년, 영국에서 3년간 미용기술을

도시의 지속가능성? 이상적인 큰 그림 가지고 접근해야

건축가 김석철 교수 인터뷰 도시·농촌의 효과적 융합이 우선 지역단위 문화시설 확충 필요해… 억지 개발보다 좋은 기획부터… 2011년 현재 한국의 도시화율은 90%를 넘는다. 전체 인구 중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이 90%를 넘는다는 뜻이다. 1960년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도시화’라는 개념을 떠올려야 한다. 농촌과 지방에 거주하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1차 산업이 2·3차 산업으로 대체되었다. 기자는 ‘도시화’라는 화두를 통해 한국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위해 김석철(67) 교수를 만났다. 김수근과 김중업에게 사사하고, 29살이 되던 해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작성했고, 39살이 되던 해 예술의 전당 국제 현상에 당선되는 등 15차례에 걸쳐 국내외의 도시 설계에 참여했던 그라면 적절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지난 19일, 가회동에 있는 사무실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요즘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에너지 절감이나 환경 정화 같은 것들을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다음 세대도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다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소박한 바람 정도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에너지를 절감하고 대기를 정화하는 것은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이상적인 도시가 무엇인가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이것에 접근해가는 것이 지속발전이 가능한 도시가 아닐까.” ―이상적인 도시란 무엇인가? “서울이 인구 천만 명을 유지하면서 전기자동차를 운행한다고 해서 발전한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툴루즈는 인구 50만명 정도의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가 시애틀과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약사 선덕님씨

‘착한카드’는 나눔의 출발점… “작게나마 도움 된다면 행복”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을 나서니 멀리 남산을 등지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보였다. 남산 아래 첫 동네라는 용산 ‘해방촌’의 모습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 6·25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다시 온 피란민들과 북한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이주민들이 모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에 오랫동안 주변 이웃을 돌보며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10년 넘게 결손가정 아이들과 독거노인을 돕고, 약사였던 경력을 살려 노숙인을 위한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선덕님(56·사진)씨다. 2004년부터는 아예 해방촌성당에서 사회복지 관련된 일을 전부 도맡아서 하고 있다. “1997년 지인이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의 책을 선물했어요. ‘내 이웃을 버려둘 것인가’라는 그분의 말씀이 무척이나 와 닿았습니다.” 종교가 없던 선씨는 천주교 교리 공부를 시작했고, 이웃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약국을 운영하느라 바빠 시간을 따로 내기는 어려웠다. 그때 운명처럼 뇌지주막이 파열되고 하던 약국을 접어야 했다. 건강은 다시 회복했지만, 그녀는 약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성당에서 하는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몇 년 동안 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모시고 찾았던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봉사활동자를 찾는다고 했다. 요셉의원은 주변의 노숙인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료진료를 하는 곳이다. 선씨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의원의 정신에 감동받아 2000년부터 10년 동안 그곳에서 약사로 봉사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나눔 실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부님의 권유로 2001년에는 쪽방촌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 교육, 사회적 성장 밑거름”

인터뷰_ 어린이문화예술학교 김숙희 대표 국제장애어린이축제는 장애 아동에게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場)을 제공하고, 비장애 아동에게는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난 2003년 시작됐다. 매년 가을 이틀 동안 열리는 이 축제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부모들 사이에 ‘좋은 행사’라는 입소문이 퍼지기까지 행사의 주최 단체인 ‘어린이문화예술학교’의 공이 컸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이 중요한 이유와 그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0일 어린이문화예술학교의 김숙희(58·사진)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문화예술을 통한 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예를 들어 연극 수업에서 아이들은 엄마 역할을 하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선생님 연기를 하며 선생님의 입장이 돼본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계획했던 이유도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 ‘직접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함께 즐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극을 비롯한 예술이 아이들의 이해력과 판단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사회의 공통적인 사고와 가치관도 가르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같은 메시지를 담은 문화예술 교육을 받은 사람들끼리는 ‘공유사고’가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한 사회의 ‘문화’라는 것이다. 예술교육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다른 문화를 무시하는 것은 나쁘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그것은 한 사회가 공유하는 공유사고이자 문화가 되는 셈이다. 문화예술 교육의 시작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람의 시청각을

복지사 처우 높이고 보조금 격차 낮춰야

충남지역 사회복지사하루 동행 취재 충남 사회복지관 보조금 다른 지역에 비해 낮아 ‘중간관리자’급 인력 부족 5명의 업무 혼자 도맡기도 “제 대학 동기들이 전국에서 사회복지사를 하고 있는데 충남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급여가 제일 낮더라고요.” 충남지역 A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이길상(가명·28) 사회복지사는 씁쓸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오전 10시, 이씨는 막 사회복지관에서 쓰는 승합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던 참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며 ‘지방 사회복지사의 하루’를 체험해보기로 한 기자 역시 차에 올랐다. 승합차는 눈 덮인 논밭 사이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농촌 지역에 위치한 A복지관 주변에는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이 많이 산다.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어 세 가정만 방문해도 오전 한나절이 훌쩍 간다. 이씨가 일하는 충남지역 사회복지사들의 급여는 전국에서도 낮은 수준이다. 사회복지사의 급여는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규모에 달려 있는데, 충남지역의 지자체 보조금이 타 지역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의 신용규 사무총장은 “현재 충남지역 사회복지관에서 받는 보조금은 서울의 2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3년째 동결됐던 서울 지역 사회복지사들의 임금이 올해 8%나 올랐지만 충남지역 사회복지사들에게는 아직 먼 얘기다. 올해로 3년차 사회복지사인 이씨가 한 달에 받는 월급은 160만원 정도. 세전 연봉으로 따져도 20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나마 이씨가 있는 복지관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올해 충남지역 다른 사회복지관 가운데는 월급이 연체되거나 삭감된 곳도 몇 군데 있다. 승합차가 논둑길에 멈춰 섰다. 슬레이트 지붕 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달려나왔다. “아이고 선상님. 며칠 전에 모터펌프가 얼어서 갈았슈. 모터값이 22만원에 수리비가 10만원이라 카대. 내

[Cover story] “하루에 한 번씩 착한카드 사용 이게 바로 나눔이죠”

변정수의 ‘착한카드로 실천하는 하루 1가지 착한 일’ 대한민국 국민의 1%가 참여해 매일 커피 한 잔 착한카드 사용하면, 일년에 270억원이 기부되는 효과 “정말 포인트가 다 기부돼요? 신용카드를 정말 많이 쓰는데, 포인트를 써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하도 쓰지 않아서 소멸한 적도 많고요. 그런데 굳이 뭔가 비용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쉽고 편하게 기부할 수 있다니 너무 좋지 뭐예요. 제가 그래서 인터뷰하겠다고 한 거예요.” ‘착한카드를 발급만 해도 연회비와 포인트가 기부된다’는 설명에 배우 변정수(37)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변씨는 지난 2003년 3월,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9년째 나눔 활동 중이다. 2년 전부터는 남편 류용운(44)씨와 두 딸 채원(14), 정원(4)과 함께 온 가족이 함께 국내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온 가족이 함께 나눔 활동을 펼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평소 TV 드라마에서 봐왔던 대로 큰 목소리, 다소 빠른 말투, 시원시원한 성격의 변씨는 나눔 활동도 화끈했다. “6년 전부터 해외봉사를 꾸준히 해왔어요. 그때마다 때로는 마음이 아파서, 때로는 정이 들어서, 직접 밥을 해준 적도 있고, 함께 물을 나르기도, 벽돌을 나르기도 했죠. 그러면서 ‘이렇게 한 번 찾아가 도와주는 것 말고 계속해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맘(Mom) 프로젝트’를 굿네이버스와 함께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인 ‘맘(Mom)’은 영어로 ‘엄마(mom)’를 뜻하기도 하고, 우리말의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두 아이의 엄마다 보니, 엄마의 마음이 어떤 건지 조금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조금씩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남의

공간·환경 데이터 시각화 시민 인식 변화시키는 ‘소리통’

민세희 한국 최초 테드 펠로우(TED Fellow) 지난달 2011 테드 펠로(TED Fellow)가 발표됐다. 테드 펠로는 공유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퍼뜨리고자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비영리 단체 ‘테드(TED)’에서 매년 선발하는 혁신가를 말한다. 매년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20명씩 선발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을 기회를 제공한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나 캠페인 등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 자원이나 네트워크를 얻는 셈이다. 이번에 발표된 20명의 펠로 명단에는 당당히 ‘KOREA’ 다섯 글자가 자리잡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랜덤웍스의 대표인 민세희(35)씨가 바로 그 한국인 테드 펠로 1호의 주인공이다. 처음 듣는 이름에 ‘데이터 시각화(data-visualization)’라는 활동 분야도 생소하다. ‘아직 한국에서도 유명하지 않은데 오히려 세계로부터 ‘혁신가’로 인정받은 이유’가 더욱 궁금해졌다. “제가 사실 디자인도 공부하고 유학도 경험했거든요. 어찌 보면 혜택을 누린 사람에 속하는 편인데, 그래서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 그녀에게서 혁신가의 모습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MIT 내 센서블 시티(SENSEable City) 연구소에서 도시계획 관련 연구와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었어요. 그중 2009년도에 브라질 재개발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지역 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에 문제의식을 품게 됐죠. 지역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인데,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목소리가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지역 주민 개개인도 지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거고요. 그게 출발점이 된 거 같아요. 공간과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시각화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출발점요.” 그렇게 랜덤웍스(randomwalks)라는 미디어 스튜디오를 시작했다. ‘도시,

벽돌·창살까지 문화재로 보는 시선 “관광지 조성 아닌 후대 위한 복원에 힘써야 합니다”

박나래 건축문화재 복원가 인도·터키… 세계 벽지 찾아,폐가·민가 실측자료 제작…구축한 자료 유네스코에 제출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파리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문화재가 훼손되었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문화재가 아프다고 이야기하죠. 숭례문이 불탈 때 저도 그 말을 이해했습니다.” 지난 1일 잠시 한국에 방문한 박나래(37)씨를 만났다. 나래씨는 1887년에 설립된 이래로 프랑스에 하나뿐인 건축문화유적 복원 전문 교육기관인 에꼴 드 샤이오(Ecole de Chaillot)의 유일한 한국인 졸업생이다. 프랑스에서는 에꼴 드 샤이오를 졸업한 건축가들에게만 프랑스의 문화재를 복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공부를 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건축 문화재 복원을 가르치면서 역사와 도시, 건축 모든 것을 공부하게 합니다. 건축 문화재 하나를 복원하려면 그 건축이 가지는 건축적인 의미 외에도 그 문화재가 놓인 도시에 대한 분석, 당시의 역사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해서 복원을 한다면 그 복원작업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프랑스에서는 문화재를 보여주기 위해서 복원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복원하죠. 그래서 아주 안 좋은 상황이 아니면 차라리 복원을 하지 않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기자의 말에 나래씨는 한국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예전에 한 성당의 복원에 대한 자문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었습니다. 당시 성당 복원을 맡고 있던 분이 얘기했던 건 성당 벽돌이 낡아 보이니 새 벽돌로 교체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벽돌 자체가 당시의 역사적이고 건축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문화재라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의 문화재